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블로그였다. 세계여행을 하며 여행기를 쓸 생각으로 블로그를 시작한 것이다. 블로그야 원한다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이것저것 썼다. 그렇기 때문에 실패고 자시고 할 게 없다. 그런데 브런치는 달랐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작가 신청을 통해 합격을 받아야 했다.
블로그를 하다가 브런치로 발길을 돌렸던 이유는 새로운 출발을 위해서였다. 이미 블로그엔 과거의 내가 가득했고, 현재의 내가 들어갈 자리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온통 여행기로 가득했던 블로그는 현재 일상을 살아가는 나의 이야기를 쓰기엔 너무 이질적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그래서 브런치라면 현재의 나를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브런치의 벽은 높았다.
처음 작가 등록을 할 땐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다. 17년 10월이었다. 당시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고 시간이 차고 넘쳤기 때문에 글이라도 쓰면 좋을 것 같아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이런 가벼운 마음가짐으론 브런치의 벽을 넘을 순 없었다. 당시에 나를 어떻게 소개했는지 어떤 글을 썼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지금과 비교해 본다면 아마도 마음가짐 자체부터가 다르지 않았을까.
처음 떨어졌을 땐 순순히 인정했다.
“그래 내가 너무 쉽게 본거였어. 조금 더 생각해 보고 제대로 써보자.”
그렇게 두 번째 작가 등록을 했다. 결과는 다시 탈락... 사실 두 번째 실패를 맛봤을 땐 조금 화가 났던 것 같다. “브런치에만 글 쓰란 법 있나 치사해서 안 쓴다 안 써.” 심통도 났던 것 같다. 그렇게 나의 브런치 작가 도전기는 막을 내렸다.
그 후로 브런치는 말끔히 잊었다. 그렇다고 글 쓰는 걸 멈추진 않았다. 쓰고 싶은 글이 있으면 한글파일에다 글을 썼다. 그리고 100일 글쓰기 챌린지, 온라인 글쓰기 챌린지 같이 온라인으로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자신이 쓴 글을 공유하는 것도 했다. 그렇게 나의 글쓰기는 계속되고 있었다. 그렇게 지인들과 함께 글쓰기를 하며 서로의 글을 읽고 피드백을 해주는 게 재미있었다. 더 나아가 내 글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브런치가 떠올랐다. 하지만 도전하지 않았다. 또다시 떨어질까 무서웠기 때문이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섣불리 다시 도전할 수가 없었다. 지금껏 합격이나 성공 같은 것들은 나의 이야기이기보단 다른 사람 이야기 일 때가 많았기 때문에 이런 경험들이 나를 도전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다시 브런치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19년 10월이었다. 계기는 은행 경비원으로서의 삶을 글로 써보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조금은 지질하고 멋도 없는 그런 일상적인 이야기지만 지금 이게 나이기 때문에 이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꾸밈없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내가 나로서 가장 나답게 글을 쓸 수 있는 주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은행 경비원으로 돈 벌고 글쓰기로 자아실현한다는 말이 너무 나를 대변해 주는 말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지금 가장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것, 지금 가장 많이 고민하는,
내 속을 가장 썩이고 있는 문제가 바로 내가 써야 하는 글이다”
정여울 작가님은 글의 테마를 발견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을 이렇게 말했다. 내가 가장 고민하고 있는 것, 내 속을 썩이는 것 말이다.
이렇게 쓰고 싶은 글의 주제가 정해지고 나니 잊고 있었던 브런치가 다시 떠올랐다. 이번에는 붙을 수 있을까? 그동안 열심히 글을 써왔고 출판을 하기 위해 꾸준히 글도 써왔기에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조금 더 생겼다고 믿었다. 그래서 다시 도전해 보기로 했다. 조금은 두렵고 떨렸지만 해보기로 했다.
일단은 명확한 주제가 정해졌기 때문에 글을 쓰는 대 큰 무리는 없었다. 그동안 은행 경비원으로 일하며 느끼고 생각하고 격은 것들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몇 개의 글을 완성하고 다시 브런치 작가 등록을 했다. 오랜만에 브런치를 로그인했더니 아이디가 기억나지 않아 다시 새롭게 가입을 했다. 그렇게 세 번째 만에 난 브런치 작가가 될 수 있었을까?
3일 뒤 브런치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결과는 다시 탈락이었다. 기분이 상했을까? 화가 났을까? "이놈에 브런치 놈들" 하며 역정을 냈을까? 아니면 우울했을까? 사실 난 아무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덤덤했다. 이유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꼭 될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다만,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고 스스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엔 브런치에 붙었던 사람들의 후기를 열심히 찾아 읽기 시작했다. 분명히 브런치도 작가가 되는 기준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몇 개의 후기를 읽어 본 후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이들이 나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이다.
20년 5월 그동안 은행 경비원 글을 꽤 많이 썼다. 중간에 출판사와 출간에 관한 이야기도 했기 때문에 자신감도 더 생겼다.(출판사와는 결국 잘 되지 못했다.) 그래서 다시 네 번째 도전을 했다. 그 날은 사실 작가 등록을 할 생각이 없었는데 그냥 갑자기 해야만 할 것 같았다.
작가 소개는 짧고 명료하게 썼다. 그리고 앞으로 보여 줄 활동에 대해서 또한 짧고 확실히 썼다. 이번에 달랐던 점은 목차를 썼다. 그 전에는 한 번도 목차를 쓰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들을 목차를 정리하였다. 그리고 그 목차에 맞는 글 3가지를 첨부해 등록을 마쳤다. 이번에는 붙었을까? 사실 또 실패를 하더라도 난 다시 도전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에 메일을 받았다. 하지만 확인을 하지 못했다. 너무 바쁜 날이었기 때문에 집에 오자마자 뻗었다. (재난지원금 ㅂㄷㅂㄷ) 그리고 다음 날 퇴근을 하고 카페에 글을 쓰러 갔는데 아차!! 브런치!! 하고 생각이 나서 확인을 해보니 지금과는 다른 첫 문장이 있었다.
“축하합니다”
그렇다. 드디어 된 것이다. 순간 소리를 악!! 하고 질렀다. 그리고 주변에 사람들을 의식해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한 동안 기쁨을 누렸다.(우와 씨 와 대박 오오 이런 추임새를 쓰며) 그렇게 나의 브런치 작가 도전기는 마무리되었다. 지금껏 방구석에서만 글을 쓰며 묵혀뒀던 글들을 처음으로 세상에 내 보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세 번의 실패를 맛 본 후 얻은 결과였기에 감회가 남달랐다. 드디어 브런치의 벽을 넘어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론 또 다른 도전이 내 앞에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난 다시 넘을 것이다. 그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