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eJin Han Nov 10. 2017

커리어 브랜딩 12

직장생활 : 책임감은 어디로 갔니?

책임감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보니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고민이다. 직장에서 책임과 권한이 물론 가장 최종 결정권자에게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직원에게 책임감이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난 대표가 아니니, 모르겠다’는 정신은 요즘 말로 ‘노답’ 이다. 혹시 책임과 권한이 상사에게 있다는 것이 무책임 하라는 말로 들린 사람이 없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윗사람의 책임은 비록 자신이 그 일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 결정을 한 것에 대한 책임이다. 그만큼 결정은 신중한 것이고, 그래서 결정은 무겁기 마련이다. 


실무자 선에서의 책임은 일에 대한 퀄리티와 일에서 사고가 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프로페셔널리즘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먼저 실무자의 일에 대한 퀄리티와 사고가 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처음에는 감이 잘 안 온다. 어차피 그것을 체크하는 것도 최종 담당자의 몫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 날이 온다. 왜냐하면 자신이 전달한 모든 보고에 오케이 사인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은 그렇지 않다.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실무자다. 실무자만큼 그 일의 모든 과정과 리스크를 아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그 실무자가 모든 사항을 체크하지 않고, 그 모든 책임을 상사에게 넘긴다면 그 일의 결과물은 좋지 않다. 


또한 퀄리티의 문제가 있다. 일을 하다 보면 잘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데, 그 상한선이 어디까지인지 잘 모를 때가 있다. 왜냐하면 일이 하나씩 떨어지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일은 꼭 한번에 터진다. 일도 마찬가지다. 꼭 일이 몰려서 한꺼번에 온다. 그렇다면 우선순위와 퀄리티를 결정해야한다. 모든 일에 같은 무게감을 둔다면, 정말 내가 그 일만하다가 밤새는 일이 수도 없이 많아진다. 그래서 고민이다. 퀄리티를 높이려면 내 몸과 정신이 피폐해진다. 그렇다고 퀄리티를 낮출 수도 없고, 정말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닌 때가 온다. 


그럴 때는 상사에게 일을 되도록 제안을 해야 한다. 모든 일을 내가 다 끌고 갈 필요는 없다. 그리고 전문가에게 맡기거나, 사람을 일시적으로 충원하거나, 각자의 역할에서 그 사람의 영역을 최대한 존중하는 방향으로 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래서 그 책임감은 이 일을 제 시간에 최고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자신의 건강을 지키면서도 말이다. 그런데 현실은 늘 이런 이상적인 답변이 통하지 않아서 문제다. 그래도 찾으면 방법은 있다. 정말 말이 안 통하는 회사에서 내가 모든 일을 억지로 한들 성과는 나지 않는다. ‘일을 했으면 성과를 내라’는 책처럼 일을 하되 성과를 내는 것에는 책임이 따르고 그 책임은 나 혼자 지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책임을 지는 방식은 다양하고 그 길을 찾는 것이 실무자의 실력이자, 성과다. 


그런데 책임의 최전선은 갑과 을, 혹은 부서 간에도 발생한다. 혼자 일을 하고 끝나면 상관이 없는데 협업을 하다 보면 불협화음이 나올 때가 있다. 책임 전가의 이슈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부서 간에 서로 어떻게 하면 책임을 지지 않을 궁리를 하기 바쁜 모습을 종종 본다. 일을 잘 해서 성과를 내기보다 지역 이기주의처럼 부서 이기주의가 발동한다. 어차피 그 공로가 누구에게 가는가에 촉을 세우고 소득이 없다 싶으면 적당히 하면서 책임을 회피한다. 그러면 일은 산으로 가고 퀄리티는 땅으로 떨어지게 되어 있다. 그런데 책임을 서로 지지 않으려는 문화에는 열정을 갖고 일하려고 제안하고 설득하다가 그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를 감당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다. 괜히 오버해서 일했다가 결과물만 안 좋아지면 그 성과를 책임져야 하는 부서와 직원에게 할말이 없지 않은가! 그래서 적당히 하다가 ‘책임은 그대가 지라’는 결론을 맺게 된다. 


그때 해야 할 일은 주도하는 부서에 결정권을 맡기지만 적어도 그 분야의 전문가인 부서에서는 최선을 다해 자신의 몫을 해줘야 한다. 예를 들어, 기획하는 부서가 있고 실행하는 부서가 있을 때 기획하는 부서에서 모르는 실행단의 아이디어가 있을 수 있다. 그럴 땐 기획자에게 전달해주는 것이 좋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기획자는 내가 기획자인데 ‘무슨 그런 말도 안되는 기획이냐’고 한 소리 하기도 쉽고, 괜한 일 했다가 일만 많아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적당히 기획하는 부서에서 시키는 대로 일하기 바쁘다. 기획 부서의 책임은 기획을 제대로 하고, 실행단에서 어떠한 이슈가 없는지를 최대한 체크하는 것이다. 그리고 실행 부서는 실행의 측면에서 기획 부서가 알지 못하는 점을 알리고 기획에 반영할 수 있게끔 돕는 것이다. 이처럼 실무자의 책임은 서로가 서로에게 일로서 보답하는 것이다. 그것이 커리어를 발전시킨다. 다음에도 내가 놓친 점을 미리 알려주는 사람에게 손을 먼저 내미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의할 것이 있다. 바로 오지랖이다. 선을 넘어서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 참견 해야 할 것과 참견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정의감에 넘쳐 내가 참견하지 않아도 되는 일에 나서기도 한다. 내가 관여하고 있지 않는 일에 아이디어를 줄 수는 있지만, 아이디어를 넘어서 그 일에 개입을 하고 ‘콩 나라 팥 나라’ 하는 일이 있다. 특히나 직장 경험이 없을수록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당사자 혹은 그 팀의 사정과 그 결정을 한 사람의 정확한 의도를 안 후에 말해도 늦지 않다. 자칫하면 실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나간 말은 다시 되돌리기 힘들다. 그러니 오지랖의 경계선을 잘 구분할 줄 아는 것이 진정 지혜로운 사람이다.


예를 들어, 이런 경우다. 다른 부서에 일이 많아서 인턴을 야근시키는 팀장이있다고 하자. 그런데 옆에 부서 사람이 보기에 안타까운 거다. 팀장은 가고 야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인턴만 덩그러니 남아서 야근을 하고 있으니 마음이 짠하다. 그런데 사정을 듣고 보니 약속이 있다고 하고 그 부서 팀장이 그저 이상할 뿐이다. 본인은 퇴근해 놓고 인턴만 남겨두고 갔으니 말이다. 그래서 정의감에 넘친 직원이 타 부서 팀장에게 전화를 해서 인턴을 보내주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한다. 급기야 이야기를 하다가 언성이 높아지고 전화를 먼저 끊는 사태까지 벌어졌다고 생각해보자. 실제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하며 고개를 갸우뚱 할 수 있다. 그런데 세상만사 이보다 더 한일도 있다. 혹은 '뭐 그럴 수도 있지! 그 정도 제안도 못 받아 들이면 꼰대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팀장이 왜 그 인턴에게 그렇게 일을 시켰는지에 대해 알지 못한 상태라면 그 오지랖은 선을 넘은 것이다. 갑자기 남의 땅에 가서 ‘감 나라 배 나라’하는 모양새다. 


부서마다 사정이 있고, 그 팀장과 인턴과의 관계에서 벌어진 일이다. 마치 옆집 부부사이에 내가 껴서 훈수를 두는 것 이상의 것이다. 이처럼 오지랖은 책임과 다르다. 책임은 내 영역에서의 책임이다. 내 영역을 넘어선 일에 대한 과한 행동을 오지랖이라고 한다. 오지랖은 불쌍한 사람을 돕는데 에너지를 쓰면 좋을 것 같다. 괜히 회사에서 잘못된 책임감은 커리어의 오류와 오점을 남긴다.  


책임감의 수위를 정하는 일은 시간이 지날수록 난이도가 높아진다. 사건마다 경우가 다르고, 사람이 다르고, 상황이 다르다. 그래서 참 어렵다. 그러나 자신이 맡은 일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기 위해 책임을 지는 모습은 언제나 아름답다. 그사람의 듬직한 모습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그리워하기 때문이다.


CB-HAN HEE JIN

*본 콘텐츠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무단배포 및 복제를 금지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