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공간

by 희지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은 나를 강하게 한다.”

— 프리드리히 니체


“상처가 있는 곳으로 빛이 들어온다.”

— 파울로 코엘료


“군자는 그릇을 넓힌다.”

— 공자




모든 게 채워져 있는 상태는 넘칠 뿐이며

비워진 공간이 있어야 모든 걸 담을 수 있고

계속해서 넓어져야 빈공간이 생긴다.


난 이 빈공간이 위기, 결핍, 부족함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돈으로,

또 어떤 분에게는 사업 실패로,

다양한 곳에서 이런 빈공간이 생긴다.


그것을 어떻게 헤쳐 나가고 뛰어넘는지에 따라

운도 바뀌고 그릇도 넓어진다.


나의 빈공간은 시간이었다.


난 부족함이 없었다.

많은 사랑을 받고 컸고, 좋은 부모님 그늘에

돈 걱정도 크게 하지 않으며 편안하게 성장해왔다.


성격도 완만해서 대인관계도 좋았으며

딱히 욕심도 없어서 그냥 물 흐르듯 살았다.


대학생활도 집이 아닌 타지역에서 하다 보니

일찍부터 자취를 했고

자유로운 시간의 나날들이었다.


남편을 만난 지 2년 정도 되고 막 대학 졸업식을 앞둔 상태였다.

그때 아이가 찾아왔다.


하지만 그때도 지금도 변함없이

나를 아끼고 사랑해주시는 친정·시댁 부모님들 덕분에

문경이라는 새로운 곳에서 적응해가며 살게 되었다.


그때도 마냥 좋았다.

새로운 환경, 사랑하는 남편, 뱃속의 아이까지.

모든 게 설레었다.


그러다 아이가 태어나니 기쁨도 잠시,

이전과는 상상도 못할 24시간이 흘렀다.


가장 힘들었던 건 ‘시간’이었다.

나의 시간이, 너무 자유로웠던 시간이 사라졌다.

그때부터 나의 시간의 결핍이 시작되었다.


아이를 낳아 키우다 보니 둘째가 태어났고

시부모님의 장사업을 배워 나가다 보니

온전한 나의 시간이 없었다.


근데 오히려 그 빈공간이 나를 성숙하게 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더 절실하게 그 시간을 활용하게 되었고

책을 읽었고 또 읽었다.


그러다 장사업도 운전도 배달도 익숙해지면서

손은 움직이지만 귀가 놀고 있는 걸 깨달은 뒤엔

무조건 오디오북을 귀에 달고 다녔다.


책을 많이 읽다 보니

난 어느새 그 이전과는 상상도 못할 만큼 성장해 있음을

온몸으로 느꼈다.


‘아, 결국 그렇게 고민하고 힘들어했던 것이

오히려 나를 이렇게 성장할 수 있게 해주었구나.’


라고 느끼며 이제는 위기나 결핍, 부족함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것이 있음으로,

큰 위기가 올수록 큰 성장이 뒤따른다는 것을.

오히려 더욱 더 넓고 큰 사람이 된다는 것을.


이제는 나도 내가 궁금하다.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를.


시간에 쫓기는 사람이 아닌,

시간을 통제하고 다루는

‘시간 위에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오늘도 여전히,

그리고 계속해서

치열하게 시간 위에 있고자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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