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 아마존과 영수증
하프커피 IR 마무리하고, 5월 말쯤 커스텀잇이라는 사업을 담당하게 되었다. 커스텀잇은 프리미엄 원물을 기반으로 한 어떤 F&B 브랜드이다. 여기서 프리미엄 원물이라 하는 것은 한우고, (회사는 한우를 직접 연구하고 육가공 공장까지 운영하고 있다), 어떤 서비스라는 것은… 새로운 BM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 상황이라는 의미에서의 어떤 서비스다.
회사가 한우 연구-소싱-가공에 강점을 갖고 있는 만큼, ‘한우’를 키워드로 한 어떤 것과, 이미 내가 회사에 합류하던 시점에 스테이크하우스 레스토랑과 정육점과 반찬가게가 결합된 그로서리를 압구정 가로수길에 론칭했기에, 이것들을 기반으로 BM을 잡아가야 했다. 가장 먼저 ‘한우’와 관련된 BM을 이것저것 서칭하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설로인/정육각/앵거스박 등 육류 스타트업, 쿠팡/컬리/오아이스 등 기존 대형 유통채널, 오늘회/랭킹닭컴/나물투데이 등 버티컬 서비스까지. 닥치는 대로 이것저것.
시장조사를 토대로 PR 자료를 써봤다. (아마존 PR 방법을 차용) 꽤 구체적으로 작성을 해보니 그럴듯한 몇 가지의 서비스가 나왔다. 그럴듯하다 그럴듯해. 하지만 역시 잘 모르겠다. 이 사업의 초기부터 발을 담갔던 여러 사람들의 생각이 제각각이다. 이게 맞다 저게 맞다. 오랜 시간 IR 업무를 하고, 스타트업신에 있었다 보니 이런 논쟁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잘 알고 있기에, (그리고 최근 하나둘씩 망해가는 서비스를 보며 서서히 확신까지) 이러다가는 나도 그 소용돌이에 곧 휘말릴 것 같았다.
BM, 사업성, 시장환경 등등. 머리를 다 비웠다. 그리고 가장 객관적으로, 고객의 수요가 어디에 있을지 생각해봤다. 두세 번 반복해서 읽었던 Working Backwards라는 아마존의 방법론. 우리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는 고객의 목소리를 한번 들어 보는 게 좋겠다 싶었다. 제각각의 상상의 ‘컨셉’으로부터 시작한 이 사업이, 실제로는 고객들에게 어떤 효용을 주고 있는지.
구매내역을 봤다. 포스에서 제공하는 가공된 자료 말고 있는 그대로를 보고 싶어서 그냥 쌩 영수증을 봤다. 약 한 달 치. 잘 팔리는 상품, 자주 오시는 단골고객, 정육과 반찬의 구매 조합, 사용하는 신용카드 종류, 구매빈도가 눈에 들어온다. 매장에 앉아서 가만히 고객들이 입장하고 상품을 고르고 결제하는 것을 지켜봤다. 뭔가가 보이는 것 같다.
(짧게 짧게 자주 써야지. 2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