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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meejong Jul 23. 2024

공든탑 무너뜨리기는 쉽다

다큐멘터리 '안티소셜 네트워크: 밈에서 대혼란까지'를 보고

2021년 1월 6일 트럼프 지지자들이 미국 국회의사당에 불법 점거 사건이 발생했다. 이 날은 2020년 대선 결과를 의회가 인증을 하는 날이었는데, 트럼프와 트럼프 지지자들이 이 인증을 방해하기 위해 일을 벌인 것이다. 그들은 대선 직후부터 대통령 선거에서 대규모 부정이 일어났으며 결과가 조작되었기 때문에 자신들이 진 것이라는 주장을 해왔다. 지지자들은 무장을 하고 국회의사당에 진입했는데 조사를 통해 총기, 석궁, 화학 스프레이, 소화기 등을 소지한 것이 밝혀졌으며, 이 시위로 인해 경찰을 비롯하여 사망자가 다수 발생하였다. 트럼프는 연설과 트위터 등을 통해 지지자들을 선동하였다. 


이 사건을 접하고 처음 들었던 생각은 민주주의라는 정치 제도와 시민들의 의식 수준이 진보하지 않고 후퇴할 수도 있구나 하는 것이었다. 나는 1988년생인데, 적어도 내 기억 이후로는 대한민국의 사회∙경제∙과학∙정치∙스포츠∙문화 등 내가 관심을 갖고 있거나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분야는 전반적으로 발전을 해왔다고 생각했다. 박근혜-최순실 사건을 겪긴 했지만, 국민들의 촛불집회를 통해 정권을 교체했기에 하나의 사건 정도로 멈출 수 있었다. 오히려 이 사건을 통해 민주주의라는 가치에 대한 사회적 성숙도가 높아진 나라에서는 삐뚤어진 놈 하나(?)가 사고를 쳐도 빠르게 다시 바로 잡는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물론 미국에서 살다 온 사람들이 말하기를 미국 사람들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엄청 무식하다고 하긴 했었지만, 그래도 세계 최강국이자 민주주의의 상징인 미국에서 어떻게 저런 일이 발생했는지 매우 놀랐다. 더군다나 약 4년이 지나 새로운 대선을 앞두고 있는 2024년 현재 그 일을 저질렀던 트럼프는 처벌을 받기는 커녕, 여전히 건재하며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다음 대통령이 될 것 같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비슷한 양상이 한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는데, 지금의 윤석열-김건희 부부가 하는 짓을 보면, 솔직히 탄핵을 당한 박근혜-최순실이 불쌍하게 느껴질 정도로 막장이다.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의 희생, 수많은 시행착오와 반성을 통해 축적되어 만들어진 한 사회의 총체적인 품질이 아주 빠르게 무너지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인다. 정치, 경제, 사법, 언론, 군사 등 여러 분야의 기득권이 서로 결탁하여 그들만의 이익을 추구하며 대중을 개 돼지 취급하는 것은, 바라는 일은 아니지만 오랜 역사에서 반복되어 온 어쩌면 자연스러운 모습이기에, 나는 그들을 탓하지 않는다. 그것보다는 일반 대중인 우리가 이들을 왜 제대로 견제하지 못했는지가 더 궁금하다.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갖는다고 하던데, 적어도 절차적 민주주의가 확보된 나라에서 우리는 왜 저품질의 리더를 뽑았으며, 공들여 만든 탑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똥손을 갖게 되었는지 말이다.


다큐멘터리 '안티소셜 네트워크: 밈에서 대혼란까지'는 '4chan'이라는 온라인 익명 커뮤니티에 대한 이야기다. 4chan은 일본 애니메이션과 만화를 좋아하는 오타쿠들의 게시판이였는데, 밈으로 불리는 자극적인 유머 게시글을 기반으로 급속하게 성장하였다. 그러다가 4chan은 사이언톨로지라는 사이비 종교에 대한 공격을 하게 되었는데, 온라인 해킹은 물론이고 전 세계 곳곳에서 오프라인 시위가 이어졌고, 결국 사이언톨로지에 큰 타격을 입혔다. 집단행동에 대한 효능감을 맛본 이후 그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집단행동을 이어 나갔다.


정치개입, 현실개입이 과도해지자 4chan의  운영자들은 몇 가지 조치를 취했는데, 사용자들은 이를 검열과 제한이라고 여기며 이를 피해 8chan이라는 새로운 커뮤니티를 만들어 이동하였다. 시간이 지나 이러한 커뮤니티들은 극우 성향을 띠게 되었는데, 반이민자∙반페미니즘∙반LGBTQ 와 관련된 게시글과 의견이 주로 올라오며, 정치적으로는 공화당과 트럼프를 지지하는 특성을 갖게 된다. 특히 QAnon 음모론이 여기서 발생하는데, 이 음모론은 민주당 정치인들이 아동성착취범에다가 인신매매를 한다는 내용이다.  


미국의 4chan 의 롤모델은 일본의 2ch이다. 이 일본의 2ch도 극우 성향의 커뮤니티인데, 혐한 콘텐츠가 주로 배포되는 것도 이곳이다. 한 사용자가 2008년 무차별 칼부림 사건을 일으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비슷하게 한국에도 일베로 대표되는 극우성향 커뮤니티들이 있는데, 이들 역시 기본적으로 반이민자∙반페미니즘∙반LGBTQ 를 취하고 있다. 일베는 세월호 참사 폭식 투쟁, 영화 변호인 평점 테러 등을 진행했으며, 2023년 발생한 신림동 칼부림 사건 피해자 또한 일베 사용자로 밝혀졌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2000년대 후반부터 주변에서 일베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 많은 아이들이 뜬금없이 키야키야 거린다거나, 땅크로 밀어버려야 된다거나, 말끝마다 노노 거리곤 했다. 그로부터 15년 정도 지난 지금, 그 당시부터 일베 등 극우성향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어느덧 20-30대가 되어 사회의 주류가 되어가고 있다. 투표성향이나 사회적 이슈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알 수 있듯이 70대 이상의 노년층을 제외하고 정치적으로 가장 극우화된 집단이 이 연령대의 남성들이다. 나는 이것이 이들이 오랜시간 극우 성향 커뮤니티에 노출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뾰족한 해답은 없다. 극우 성향의 게시판을 폐쇄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온라인 실명제를 도입하는 것 또한 현실성 없는 이야기다. 강제적으로 없앤다 한들 혐오 정서에 기반한 자극적인 자료들을 올리고 낄낄거리는 커뮤니티는 아마도 플랫폼을 바꿔가며 계속 만들어질 것이다. 자기 얼굴을 내놓고 하지 못할 말들이 익명성과 온라인 환경에 기대 빠르게 퍼져나가고 사람들을 전염시킨다. 안타깝게도 도파민 중독이라는 말이 유행인 것처럼 자극적인 것에 대한 노출과 선호는 계속 높아지고 있다. 시간을 두고 되돌아보고, 토론하며 숙의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가능할까? 사람은 못고친다고 하니 이미 극우 성향이 된 이들은 어쩔 수 없겠지만, 적어도 앞으로는 이런 사람들이 덜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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