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영화 <가여운 것들>의 주인공 엠마 스톤(극중 벨라 역)은 성인의 몸과 아이의 지능을 가진 미친 과학자의 실험체인데, 벨라는 현실에도 있다. (영화를 보고 나면 달라지지만, 예고편 속 벨라는 '덜 자란 어른'을 풍자하는 줄 알았다.)
앞만 보고 살다가는 신체 노화 속도를 정신적 성숙이 따라가질 못할 테고, 나를 바라보는 후배들과 학생들이 나를 점점 멀리할 것 같은 두려움이 몰아닥친다.
어느덧 나의 아이도 옳고 그름을 배우게 되고, '어른들은 왜 이런 행동을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하기 시작했으니 아이가 철이 들 날이 코앞이다. 철이 든다는 건 사리 분별을 하는 것인데, 수많은 덜 자란 어른들을 보며 아이는 피곤해질 것이다.
고작 나의 철든 사람 구별법은, 해장할 때 고기쌈냉면과 평양냉면 중에서 무엇을 선택하는가? 정도이다. 그 와중에 비빔냉면을 제안하는 자가 있었는데 그런 그가 궁금해지고 지금껏 같이 살고 있는 걸 보면 나의 구별법은 신뢰할 수 없다. 그래도 평양냉면을 행주를 삶은 국물이라고 선을 긋는 사람과는 친구를 하지 않는 편이다.
'가엾다'는 말은 발음부터 마음이 아플 만큼 안되고 처연하다. 누군가를 향한 가여움은 소중하지만, 나를 가엾다고 여기는 순간 스스로는 파괴된다. 가여워지지 않으려면, 영화 <가여운 것들>의 벨라처럼 탐색의 기운을 충전하고, 뻔한 편견들을 째려보며,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채워가는 일을 해야 하지만 이것은 덜익은 생곱창을 씹는 것만큼 어렵다.
때로는 혼자 애써봤자
'철들지 않은 쟤가 더 편히 살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조금씩 그들을 가여워 하기로 했다.
현실속 가여운 것들은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카페 출입문과 최대한 가까워 지기 위해 인도와 횡단보도를 가로질러 주차하는 카페인도 부족한 어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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