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치료] 열네번째, 치유의 시간
사별 경험자를 위한 미술 치료
마지막 상담 시간이다.
처음 시작할 때는
무언가라도 기댈 곳이 필요했고
좋아질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있었다.
매주 갈 때마다
무겁지 않은 발걸음으로 생각했다.
'오늘은 또 어떤 이야기를 하게 될까?'
'오늘은 조금 더 나아질까?'
10주 차 정도에 들어서면서
점점 감정을 들여다보는 것이 두려웠다.
깊이 들여다볼수록 아팠다.
아주 깊은 곳에 있는
진짜 감정을 마주한 후
한동안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그렇게 주저앉아버렸다.
지난주 어느 날도 평소와 같이
아침에 일어나 요가를 하고
요거트를 챙겨 먹고
침대에 누워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책을 읽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기분이 좋았다.
솔솔 불어오는 바람에
햇살이 창문 너머로 들어오고
오롯이 방해받지 않는
안전하고 아늑한 내 방에서
지금 이 순간이 느껴졌다.
마치 여름방학
집에서 뒹굴대며
엄마가 잘라준 수박 한 조각을 먹고
다시 농땡이를 치는
익숙하고 편안한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 나서는
조금의 편안함이 찾아왔다.
오랫동안 어두운 공기를 느끼며
혼자 남겨진 기분 속에
나를 그냥 두었었다.
밝아지려고 억지로 노력하지는 안 았다.
오늘은 지난주 작품에 연결해서
'다른 세상' 속의 나를
표현해보기로 했다.
눈을 감고 생각했다.
처음 바닷속으로 떨어질 때
무섭고 두렵고
안간힘을 쓰며 발버둥을 쳤다.
다시 수면 위 세상으로 올라가려고 애를 썼다.
그럴수록 더 빠져 내려가고 있다는 걸 몰랐다.
기운이 빠져 그대로 있었다.
조금의 발버둥만 남았다.
그러다가 발이 땅에 닿았다.
'바닷속에도 땅이 있구나.'
여전히 무서운 어둠과 무거운 공기가
버거웠지만, 위로 올라가려고
더 이상 애쓰지 않았다.
그 바닷속 세상에 있어보기로 했다.
여전처럼
하지만 조금 더 나에게 집중하며
책을 읽고
밥을 먹고
그림을 그리고
산책을 했다.
모든 것이 새롭지만
물속의 먹먹함이 있지만
저항감에 느리게 움직이고 생각하지만
현재의 나에게 조금 더 집중할 수 있고
상처 받은 마음을 치유하는
엄마가 없는 세상에 적응하는 시간이다.
더 슬기롭고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시간이 느리게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