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자동차를 보면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요즘 차는 다 비슷하지 않나요? 중국전기차와 거의 비슷합니다." 이 평가는 디자인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소비자의 눈이 무뎌졌기 때문도 아니다.
오히려 이 질문은 전동화 이후 자동차 산업의 구조적 변화를 정확히 짚고 있다. 자동차가 비슷해 보이는 이유는 단순하다. 새로운 전기차 전용 플랫폼 위에서, 유사한 신기술 적용으로 상품개발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은 분명 산업적으로 큰 진보다. 휠베이스 확장, 배터리 용량 가변, 다양한 차급 파생이 가능해졌고, 개발 효율과 속도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개선되었다.
그러나 이 플랫폼의 ‘확장성’은 동시에 새로운 문제를 만들었다.
같은 플랫폼에서 소형에서 대형 세단, SUV도 만들고 크로스오버 차량도 만든다.
차급은 늘어났지만, 차의 기본 프로파일(profile)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해졌다.
비슷한 캐빈 포지션, 닮아가는 실루엣
과거에는 차체 비례만으로도 브랜드와 세그먼트를 구분할 수 있었지만, 전기차 플랫폼 기반의 제품들은 차급은 달라도 ‘차의 인상’은 비슷해지는 역설에 빠져 있다.
이 변화는 브랜드 포지셔닝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전동화 이전에는 메인스트림 브랜드는 ‘합리성’, 프리미엄 브랜드는 ‘존재감과 위상’이라는 구분이 비교적 명확했다. 그러나 전기차 시대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메인스트림 브랜드도 충분히 조용하고 빠르다. 그리고 대용량의 배터리도 탑재한다.
실내 품질과 디지털 UX는 빠르게 상향 평준화되고 있다. 가죽도 사라지고 친환경 소재로 바뀌었다.
법규강화를 통한 ADAS와 인포테인먼트는 기본 사양이 되었다
그 결과, 프리미엄 브랜드가 기능과 사양으로 자신을 설명하기 어려워졌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프리미엄 브랜드가 대중 브랜드와 다른 언어로 말하지 못하는 순간, 소비자는 이렇게 묻기 시작한다. “이 가격 차이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프리미엄 브랜드는 자연스럽게 할인과 프로모션으로 자신을 설명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 메르세데스-벤츠의 전기차 디자인 전략은 중요한 사례다. 벤츠는 전동화 전환 과정에서 기존 내연기관 모델과 명확히 구분되는 전기차 전용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선택했다. 공기역학 효율을 극대화한 원-보우(one-bow) 실루엣과 유선형 차체는 기술적으로는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그러나 이 디자인 언어는 벤츠가 오랜 시간 축적해 온 브랜드 DNA와의 연결성이 약했다.
벤츠의 전통적인 디자인은 수직적 존재감, 명확한 비례, 안정감과 권위를 통해 “프리미엄의 기준”을 제시해 왔다. 하지만 EQ 라인업은 벤츠의 전기차라기보다는 전기차 트렌드에 맞춘 벤츠처럼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소비자는 이렇게 느낀다. “기술적으로는 좋은데, 이 차가 왜 벤츠여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는 품질의 문제가 아니다. 전동화 시대에 맞는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재정의하지 못한 결과다.
같은 전동화 환경에서도 결과가 다른 브랜드가 있다. 포르셰다.
포르셰는 전기차를 만들면서도 질문을 바꾸지 않았다.
우리는 여전히 스포츠카 브랜드인가?
전기차에서도 ‘포르셰다운 주행 감각’은 무엇인가?
타이칸은 빠른 전기차가 아니다. 스포츠 드라이빙의 헤리티지를 반영한 포르셰다. 기술은 바뀌었지만,
브랜드를 설명하는 문장은 유지되었다.
지금 자동차 산업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전기차 모델도, 더 높은 성능 수치도 아니다.
필요한 것은 이것이다.
이 브랜드는 전동화 시대에 어떤 존재인가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버렸는가
이 선택은 어떤 고객의 삶을 대변하는가
전기차 플랫폼은 공용화될 수 있다. 기술은 평준화될 수 있다. 그러나 브랜드의 선택 기준은 복제할 수 없다. 브랜드별 차별화인 아이덴티티를 적용해야 한다.
자동차가 비슷해 보인다는 말은 디자인 비판이 아니라 브랜드 평가다.
전동화 시대의 브랜드는 더 이상 사양과 숫자로 설명되지 않는다.
브랜드는 다시, “왜 이런 차를 만들었는가”라는 하나의 문장으로 콘셉트를 설명될 수 있어야 한다.
그 문장이 분명한 브랜드만이 각각 대중 및 프리미엄 브랜드 간의 의 경계가 흐려진 시대에도 명확하게 구분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