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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희미 Jul 23. 2022

헤어질 결심(2022) 리뷰: 악취 나는 로맨스


박찬욱 감독의 말을 빌리자면 ‘너무 심각한 영화가 아닌’ <헤어질 결심>은 형사와 범죄자가 사랑에 빠진다는 다소 진부한 설정의 로맨스를 담고 있다. 하지만 박찬욱 영화답게 등장인물들이 다 제정신이 아니다. 디테일과 상징이 그득그득한 영화라 결코 가볍게 볼 수 없었다. 박찬욱 감독의 필모그래피치고 선정성이나 폭력성 수위는 상당히 낮은 편이지만 역시나 그닥 대중적이라고 느껴지진 않았다. 아래 리뷰부터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다.


리뷰에 쓰인 모든 스틸컷의 출처: http://www.cgv.co.kr/movies/detail-view/still-cut.aspx?midx=85852#menu






시선과 경청, 착각의 바다로


부산, 가상의 공간 부소산에서 기도수라는 남자가 사망한 채 발견된다. 평소 암벽 등산을 즐기던 그는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다. 위험천만한 스릴을 즐긴 대가일까 아니면 타살일까. 형사 장해준은 이 사건을 주의 깊게 분석하고 타당한 결론을 내려야 한다. 곧 기도수의 아내 송서래가 남편이 사망했다는 연락을 받고 해준이 근무하는 경찰서로 찾아온다. “산에 가서 안 오면 걱정했어요. 마침내 죽을까 봐.” 중국인 서래가 구사하는 독특한 문어체 한국어는 해준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서래는 딸로 오인받을 만큼 남편에 비해 한참 어리다. 또한 서래의 몸에는 남편에 의한 학대 흔적이 남아 있다. 그래서 기도수와 서래의 결혼은 어딘지 미심쩍다. 왜 서래 같은 여자가 기도수 같은 남자와 결혼했을까? 서래는 그와 함께 살면서 행복했을까? 긍정적인 답을 도출하기 상당히 어려운 이 의문은 해준이 서래를 살인 용의자로 의심하게 만든다. 서래는 사랑해서 결혼했다기보다 어떤 불가피한 이해관계에 의해 결혼했을 것 같고, 가정 내 권력도 명백히 남편 쪽에 치우쳐 있었다. 가정 폭력에 곪고 곪다가 터진 여자가 남편을 살해하지 않았으리라는 보장이 있는가?


해준은 잠복 수사를 통해 서래의 일상생활을 세심히 주시하고 알리바이를 확인한 다음 용의선상에서 제외시킨다. 그런데 해준의 동료 수완이 뜻밖의 사실을 밝혀낸다. 서래가 중국에서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전적이 있다는 것이다. 수완은 수사를 지속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해준은 이미 서래의 알리바이가 입증되었다며 수완의 말을 듣지 않는다. 그러자 수완은 이 사건을 대하는 해준의 태도, 정확히는 서래를 대하는 태도가 이상하다고 느끼며 분개한다.


형사로서 해준은 서래를 유심히 관찰할 의무가 있다. 그녀의 진술을 듣고 신빙성을 검토할 의무도 있다. 즉, 해준은 서래를 똑바로 보고 서래의 말을 열심히 들어야 한다. 시선을 마주치고 경청해야 한다. 서래의 표정을 읽어내야 하고 서래가 선택한 단어와 문장을 제대로 해석하려 노력해야 한다. 그녀가 살인자인지 아닌지, 그녀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판독하기 위하여. 그러나 해준의 취조는 방향성을 잃고 표류한다. 그는 형사 대신 한 남자로서 서래에게 빠져들고 공감하고 동정한다. 그 결과 정말 봐야 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들어야 하는 것을 듣지 못한다.


언어도 부족한 낯선 땅에서 사람을 죽이고 알리바이를 조작하는 서래는 상당히 영리한 범죄자다. 그녀는 해준의 표류를 곧바로 감지한다. 잠복 수사라는 빌미로 서래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음하고 엿듣던 해준은 그녀가 던진 덫에 걸려든다. “그 친절한 형사의 심장을 가져다 주세요.” 서래는 이 한 마디를 통해 해준을 더 깊은 바다 속으로 침잠시킨다. 이 여자도 나와 같은 마음이구나, 하는 착각의 바다 속으로. 착각은 만족과 안심을 낳고 그 안심은 불면증에 시달리던 해준을 점점 더 쉽게 잠들도록(방심하도록) 한다. 하지만 서래가 해준을 정말로 사랑하게 되는 순간은 한참 뒤 그가 철저히 붕괴되었을 때다.


한 치 앞을 못 보는 남자


처음 해준이 부소산 사건 현장에 도착했을 때, 기도수의 시체는 눈을 부릅뜨고 있다. 더 이상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된 기도수의 눈 위로 그 실명을 조롱하듯 개미가 기어다닌다. 해준의 운명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해준은 안약의 도움을 받아야만 눈앞의 절벽, 모든 진실을 담고 있는 사건 현장을 선명하게 감지할 수 있다. 결함 있는 안구와 지속적으로 흐릿해지는 시야. 해준의 붕괴는 시작부터 예견되었다.


서래의 알리바이가 조작되었다는 진실을 깨달은 뒤 해준은 엄청난 자기혐오에 휩싸인다. 그는 형사면서 사건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했고(벽에 빼곡히 사건 현장 사진들을 붙여 놓은 채 ‘똑바로 보려고 노력’하던 형사였는데 말이다), 심지어 유력한 살인 용의자를 무죄라 단정지었다. 서래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혼자만의 착각에 빠져 철저히 이용당했다. 크기가 너무 부풀어오른 사랑은 해준의 삶을 압도하고 끝까지 비이성적인 결정을 내리게 한다. “저 폰은 바다에 버려요. 깊은 데 빠뜨려서, 아무도 못 찾게 해요.” 


해준은 서래와 절에서 데이트할 때 스스로를 ‘깨끗하다’고 표현했다. 대체 어떤 깨끗한 인간이 불륜을 하고 살인을 눈 감아 준단 말인가. 해준은 서래로 인해 오염되었다. 그의 사랑은 비웃음거리가 되었고 형사로서의 자부심도 땅바닥에 처박혔다. 해준의 삶은 말 그대로 붕괴했다. 관객이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교훈은 사랑 그거 참 위험하다는 것이다. 불가항력이라 밀어낼 수도 없는데 아차 하는 사이 눈과 귀를 멀게 하고 결국 사람 인생 말아먹는다.


1부는 해준의 사랑이 끝나고 두 사람이 헤어지면서 마무리된다. 여기까지만 봐도 이미 아이고 지독한 이야기였다 싶지만 박찬욱 감독은 아직 이 이야기를 끝낼 생각이 없다. 해준의 사랑이 끝난 그 순간 서래의 사랑이 시작된다. 1부에서는 해준이 서래와 헤어질 결심을 했다면, 2부에서는 서래가 해준과 헤어질 결심을 한다.



욕망을 거침없이 실현시키는 여자


서래의 사랑이 펼쳐지는 2부의 무대는 안개가 자욱한 가상의 도시 이포다. 서래는 복잡한 인물이지만, 서래가 어떤 일을 벌이기까지의 과정은 의외로 무척 단순하다. 우선 무언가를 욕망한다.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한다. 실행한다. 해준을 사랑하게 된 서래는 부산에서 해준이 그랬듯 배우자가 있는데도 해준만을 생각한다. 휴대폰에 녹음된 해준의 목소리를 반복해서 듣는다. 해준 역시 자신만을 생각해 주길 원한다.


어떤 상대를 사랑하게 되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상대도 자신을 사랑해 주길 바랄 것이다. 그러나 서래의 상황은 다소 곤란하다. 해준의 마음을 한 차례 이용했고 해준은 그 사실에 크게 상처받아 자신을 떠나갔다. 뒤늦게 서래가 해준을 사랑하게 되었다 한들, 이제 와서 두 사람이 예전처럼 마주앉아 초밥을 먹거나 함께 요리를 하거나 웃으며 절을 거닐 수 있을까? 과연 해준이 서래와 다시 한 번 사적으로 엮이려고 할까? 아닐 확률이 높다. 서래가 해준과 어떻게든 재차 관계 맺을 유일한 방법은 형사인 그의 사건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두 번째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서래의 재혼한 남편 임호신이 죽는다. 그저 길에서 스쳐 지나가는 지인이 아니라 형사와 용의자로서, 해준과 서래는 진정한 재회를 한다. 마침내.


해준은 두 번째 살인 사건이 절대 우연일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하지만 왜 이 사건이 벌어져야만 했는지는 모른다. 서래가 자신을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모르니까. 결국 당신 지금 뭐하는 거냐,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냐, 서래에게 따져 물을 수밖에 없다. “내가 그렇게 만만합니까?” 해준은 서래가 또다시 자신을 이용해 범죄를 은폐하려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왜 그녀의 두 번째 살인은 하필 해준이 이포에 왔을 때 일어났을까. 서래가 누울 자리를 보고 발 뻗었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서래는 대체 어디까지 해준을 우습고 비참하게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걸까? 그러나 서래의 생각은 다르다. 이 살인은 그를 이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의 시선을 끌어당기기 위한 것이다.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을 돌아봐 달라고 간청하는 행위가 그렇게까지 잘못된 일인가? 그렇게 화를 낼 일인가? 심지어 나는 당신이 무서워할까 봐 사건 현장의 피까지 열심히 닦아 놨는데. 임호신을 죽인 이유도 당신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는데.


서래는 로맨스의 주인공이면서 동시에 스릴러의 주인공이다. ‘누군가를 위해서’ 서슴없이 살인할 수 있는 서래는 ‘어떤 경우에도’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는 사회통념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 사회통념을 따르는 대중이 서래를 이해하기도 어렵다. 흔히 지나치게 사랑하면 상대에게 매달리느라 쪽팔리는 흑역사 한두 가지씩 쌓는다고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남의 관심을 끌려고 살인까지 저지르진 않는다. 그런 반사회적 극단주의자에게 사랑받으면 보나마나 인생이 아주 피곤해질 것이다. 서래에게 사랑받는 해준처럼. 놀랍게도 해준 또한 여전히 서래를 사랑한다. 관객인 나는 이쯤 되니 서래가 너무 무섭고 진저리처지는데, 해준은 서래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는 걸 알면서 피하지 않는다. 서래가 부르니까 쪼르르 달려가 같이 호미산 등산까지 한다. 서래는 호미산 절벽에서 해준을 껴안은 뒤 첫 번째 사건을 재수사해서 붕괴 이전으로 돌아가라(=나를 사랑하는 바람에 망친 당신 삶을 바로잡아라)고 말하지만 해준은 붕괴로부터 벗어날 의지도 기력도 없다. 아직 서래를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은 이미 너무 크게 오염되어서 다시 깨끗해지긴 그른 것 같기 때문에, 그냥 서래와 키스나 하는 것이다.


게다가 사실 서래의 극단적인 사랑 표현 방식(살인)은 해준의 취향을 아주 제대로 저격한다. 해준은 폭력과 살인이 있어야 행복한 형사니까. 이포에서 벌어진 두 번째 살인 사건은 부산에서 벌어진 첫 번째 사건처럼 해준의 정적이고 단조롭던 삶에 다이내믹한 리듬을 더해 준다. 솔직히 이 둘은 정말 천생연분이라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호미산 시퀀스를 보면서 ‘와… 이거 진짜 사도마조히즘적 러브스토리다….’ 싶어 소름이 쭈뼛 돋았다.)


서래는 해준이 아직 자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확신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서래의 진정한 욕망은 해준에게 유일무이한 사랑으로 남는 것이다. 해준이 늘 생각하고 집착하는, 잠깐 잊더라도 꿈 속에서 되살아나는 특별한 대상이 되는 것이다. 해준이 두 번째 살인 사건을 둘러싼 진상을 (또 한 발짝 늦게) 파악했을 무렵 서래는 바로 이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바다로 거침없이 달려간다.



영원한 미결 사건


서래에게 어중간한 타협은 없다. 한번 마음먹은 일은 반드시 해낸다. 욕망을 실현시키기로 마음먹었다면 그 욕망이 아무리 극단적이라도, 아무리 변태적이라도, 아무리 이기적이라도 실현되어야만 한다. 해준의 이포경찰서 동료인 연수는 서래가 바닷속 깊이 던져 버린 휴대폰을 기적적으로 입수하고 데이터를 복구한다. 연수로부터 서래의 휴대폰을 전달받은 해준은 문자 내역을 확인한 뒤 임호신이 어떤 녹음 파일을 빌미로 서래를 협박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서래에게 전화를 걸어 그 녹음 파일이 대체 무엇이냐고 묻자 나에게 사랑한다고 했던 당신 목소리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해준이 내가 언제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했냐고 되받아치자 서래는 웃는다.


그야 우스울 수밖에. 이 대목에서 드러난 해준의 자기방어는 유아적이고 찌질하다. 부산에서 서래와 함께 지낼 때, 아직 서래에게 이용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때, 해준은 누가 봐도 사랑에 휘둘리는 남자처럼 행동했다. 그리고 마침내 서래가 자신을 이용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해준은 당신으로 인해 내가 붕괴되었다고 고백했다. 즉 당신은 나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무너뜨릴 수 있을 만큼 나에게 큰 의미를 갖는 존재였다는 것이다. ‘붕괴’의 뜻을 아는 사람에게 이 고백이 어떻게 ‘당신을 사랑해요’로 들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부산에서 해준은 분명히 서래를 사랑했고 스스로도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서래로 인해 붕괴했기에, 너무 큰 상처를 받았기에 서래의 존재는 해준에게 트라우마로 남았다. 만약 이포에서 두 사람이 다시 만나지 않았다면 해준은 차츰차츰 자신의 머릿속에서 서래라는 인물을 입맛대로 왜곡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 여자를 사랑했던 게 아니라 그 여자가 너무 독하고 똑똑해서 나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그 여자에게 빠져든 건 그녀가 거부할 수 없는 팜므 파탈이었기 때문이다. 설령 애틋한 감정이 있었다 해도 한순간의 실수였다. 사랑이라 소리내 발음하지 않았으니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이런 유치한 논리라도 내세워야 갈기갈기 찢어진 자존심을 한 조각이나마 챙길 수 있다. 그러나 그 알량한 자존심을 잃지 못해 끝까지 뻗대면서도, 해준은 결코 서래를 사랑한 적 없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사랑한다는 말 안 했어요’라고는 얘기할 수 있지만 ‘사랑한 적 없어요’는 안 되는 것이다. 서래를 상처입힐 테니까. 내뱉는 순간 거짓말이라는 걸 스스로 깨달을 테니까. 더 비참해질 테니까.


1부에서 해준의 눈과 귀는 형사가 응당 지녀야 하는 객관성을 유지하지 못했다. 해준은 서래를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봤고, 서래의 말도 자기가 듣고 싶은 대로 들었다. 그 결과 서래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착각에 빠졌다. 착각의 대가는 끔찍한 붕괴였다. 그래서 해준은 두 번째 사건에서 최대한 객관적으로, 철저한 형사의 관점으로 서래를 대하려 노력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노력 때문에 해준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해준은 또다시 서래를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보며 의심하고 서래의 말을 오해한다. 서래는 전처럼 자신을 이용하려 할 뿐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새로운 착각에 빠졌기 때문이다. 해준은 끝까지 한 치 앞을 보지 못하는 눈먼 남자다. 해안도로에 차를 세우고 또 한 번 눈 속에 안약을 넣은 뒤에야 서래를 붙잡으러 뛰어갈 수 있다. “바다에서 건진 전화, 그거 다시 버려요. 더 깊은 바다에 버려요.” 서래가 마지막으로 남긴 이 녹음 파일을 들은 후에야 자신이 또 착각에 빠져 있었음을 깨달을 수 있다. 두 번째 착각의 대가는 훨씬 더 파괴적인 붕괴다. 1부에서 해준의 삶이 단순히 무너졌다면 2부에서 해준의 삶은 아예 상실된다. 그의 삶은 더 이상 그의 것이 아니라 서래에게 귀속된 것, 서래의 것이다.



비록 엄청나게 섬뜩하긴 해도 <헤어질 결심>은 시종일관 사랑의 본질을 말하고 있는 로맨스 영화다. 사랑이 뭘까? 이 영화는 이렇게 대답한다. 사랑이란 하나의 대상에 극도로 집중한 나머지 그 외의 모든 것으로부터 눈 돌리는 맹목이다. 선택적 난청으로 원래는 잘만 들리던 세계의 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것이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결정을 하면서 그 결정을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위험한 절벽 끝으로 홀린 듯이 걸어가거나 옥상 가장자리로 스스로를 내몬 뒤 기어이 한 발짝을 더 내딛어 추락하는 것이다. 상대를 손에 넣기 위해서라면 어떤 짓이든 불사하는 것이다. 극단, 사랑은 극단이다.


이 영화가 불륜 미화냐 아니냐 논란이 있다는데 미화라고 표현하기엔 서래와 해준의 사랑이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두 사람의 사랑에는 절간의 향 냄새나 식욕을 돋게 하는 요리 냄새, 산 속의 흙 냄새 같은 안온한 기운도 살풋 풍기지만 곰팡내와 강렬한 피비린내, 바닷물의 스산한 비린내도 동시에 일렁거린다. 사랑을 사랑이라 부르길 꺼리는 비겁함과 상대에게 다음 기회를 허락하지 않는 이기심이 뒤엉킨 관계. 별로 다가가고 싶지 않은, 악취가 나는 사랑이다. 서래는 자신의 욕망대로 해준의 영원한 미결 사건이 되었다. 그에게 평생 아물지 않고 지워지지 않는 지독한 상처로 남았다. 해준은 남은 인생 내내 그 상처의 고통을 곱씹으며 살아가야 한다. 오로지 안개처럼 흐릿한, 붙잡으려 해도 붙잡을 수 없는 서래만을 생각하면서.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있다. 항상 예쁘고 반짝거리고 해피 엔딩을 맞는 사랑만 있는 건 아니다. 망한 사랑도 있고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끔찍한 사랑도 있고 이런 악취 풍기는 사랑도 있다. 내 취향이 아닌 것과 별개로 <헤어질 결심>은 수작이라 생각한다. 재미도 있었다. 좋았냐 나빴냐 묻는다면 좋았다. 하지만 이렇게 파괴적이고 비장하고 극단적인 사랑을 하고 싶지는 않다. 난 나름 가슴 아픈 새드 엔딩도 좋아하고 망한 사랑도 좋아하는 사람인데 이 둘의 이야기는 감당하기 힘들었다…. 어째선지 서래와 해준 둘 모두에게 별다른 공감이 느껴지지 않았고 그냥 둘 다 절대 엮이기 싫은 인간들로만 보였다….


대중이 원하는 로맨스는 아마 보고 있으면 나도 저런 사랑을 한 번쯤 해 보고 싶게 만드는, 선망 의식을 자극하는, 약간은 작위적이고 반짝거리는 환상으로만 가득 찬 그런 로맨스일 것이다. <헤어질 결심>은 정반대의 로맨스를 보여준다. 환상이 있긴 한데 습기 차고 퀴퀴한 환상이다. 보통 사람들이 선호하는 과일은 향긋하고 단맛이 나는 것들이지만 나는 어째 두리안이 더 끌리더라… 먹다 보니 그 악취도 중독되더라… 하는 분들께 이 영화를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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