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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희미 Jul 31. 2022

더 페이버릿(2018) 리뷰: 출구 없는 토끼굴

영국 시대물 영화&드라마 리뷰(1) 스튜어트 왕조 시대


란티모스 감독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감성을 한 스푼 걷어낸 <더 페이버릿>은 전작인 <더 랍스터>, <킬링 디어>에 비해 덜 껄끄럽고 더 대중적이다. 18세기 영국, 화려한 궁전을 배경으로 세 여성의 욕망이 교차하면서 흥미진진한 권력 게임이 펼쳐진다. 올리비아 콜먼은 이 영화로 91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레이첼 바이스와 엠마 스톤의 연기도 결코 그에 뒤지지 않을 만큼 훌륭하다. 개봉 당시 후배와 함께 영화관에 방문해 즐겁게 감상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디즈니+에서 시청할 수 있다.



리뷰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의 출처: https://www.arthousemomo.co.kr/pages/board.php?bo_table=movie&wr_id=1441






‘영국 시대물 리뷰’라는 테마를 잡고 기획한 리뷰니까 시대에 관한 언급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적 배경부터 살펴보겠다. (영국사에 딱히 관심이 없다면 밑으로 내려서 영화 리뷰만 보셔도 된다) 서유럽의 섬나라 영국은 입헌군주제 연합왕국이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4개 구성국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영연방(커먼웰스)의 중심이다. 북아일랜드 이외의 아일랜드 전역은 영연방으로부터 탈퇴한 자유 독립국이다. 여기서 다루지는 않겠지만 아일랜드 독립에는 피로 얼룩진 긴 투쟁의 역사가 있다.


아마 갓 세이브 더 퀸, 이런 구호를 들어 봤을 것이다. 영국의 국가(歌)이자 영연방에서 두루 통용되는 왕실 찬양 노래 제목이다. 군주가 남자일 경우 퀸을 킹으로 바꿔 부르기도 한다. 영국 락밴드 섹스 피스톨즈가 같은 제목으로 체제 반항적인 곡(왕실 디스곡;)을 발표했다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내가 알기로 영국은 유럽의 수많은 군주제 국가들 중 여성의 왕위 계승권을 일관적으로 인정한 거의 유일한 국가다. (물론 여성의 권리를 중시해서 그랬다기보단 정치적인 이해관계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여왕이 그리 많지도 않았다) 살리카 법(Salic Law)에 따라 독일과 프랑스, 스페인 등은 여성의 왕위 계승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살리카 법에 관해 자세히 알고 싶다면 다음 링크를 참조하라:


https://www.britannica.com/topic/Salic-Law


<더 페이버릿>에 등장한 앤 여왕은 메리 1세(블러디 메리), 엘리자베스 1세, 빅토리아 여왕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여왕이다. 1603년 잉글랜드 왕국(현재의 잉글랜드+웨일스. 웨일스는 이때 이미 잉글랜드에 합병되어 있었다)의 군주 엘리자베스 1세가 자손을 남기지 않고 사망하자, 스코틀랜드의 왕이었던 제임스 6세가 왕위를 잇는다. 제임스 6세는 엘리자베스 1세의 먼 친척이었다. 그가 즉위하면서 헨리 7세 직계의 튜더 왕조가 끝난다. 스코틀랜드 왕이 잉글랜드의 왕이 되었으니 같은 왕의 통치를 받게 된 잉글랜드-스코틀랜드는 동군연합을 맺는다. 지리적으로 별개의 섬이었던 아일랜드는 아일랜드 왕국이라는 국가로 존재했지만, 오랫동안 잉글랜드 왕국 군주의 지배를 받은 종속국이었다.


그러므로 스코틀랜드의 왕이었던 제임스 6세는 잉글랜드의 왕 제임스 1세가 된 순간 오늘날의 영국 영토와 별반 다르지 않은 거대한 연합왕국을 통치하게 된 것이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제임스라는 이름을 가진 여섯 번째 왕이었지만, 잉글랜드에서는 제임스라는 이름을 가진 첫 번째 왕이었다. 보통 호칭을 ‘제임스 1세이자 6세’ 이런 식으로 병기해서 쓴다) 이렇게 스튜어트 왕조가 시작된다.


시간이 흘러흘러 앤의 아버지인 제임스 2세가 그 유명한 명예혁명으로 왕위를 박탈당하고 쫓겨난다. 이후 앤의 언니 메리 2세(제임스 2세의 장녀)와 그녀의 남편이자 네덜란드 공화국 국가원수(stadtholder)였던 윌리엄 3세가 공동즉위하여 의회가 내민 권리장전에 서명한다. 영국이 전제군주국에서 입헌군주국으로 발돋움한 역사적 순간이었다. 왕이 무소불위의 절대권력을 휘두르던 시대에서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시대로 바뀐 것이다.


영국 역사상 유일한 공동군주였던 메리 2세와 윌리엄 3세는 자식을 남기지 않고 사망했다. (메리 2세가 이른 나이에 천연두로 죽었고, 이후로 윌리엄 3세가 잉글랜드+스코틀랜드+아일랜드의 단일군주로 군림했다) 다음 왕위 계승권은 제임스 2세의 차녀였던 앤에게 넘어온다. 앤 역시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사망하면서 제임스 1세 직계인 스튜어트 왕조의 명맥이 끊긴다. 이후에는 독일계 하노버 왕조가 들어선다. 즉 앤은 스튜어트 왕조 최후의 군주다. 간략하게 정리하면:



앤은 윌리엄 3세가 죽은 1702년 왕위에 올랐다. 그로부터 5년 후인 1707년, 연합법(Act of Union)이 발효되면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동군연합을 넘어 그레이트브리튼 연합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으로 합병한다. 완전히 하나의 국가가 된 것이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있었다.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때문에 프랑스&스페인과 박터지게 싸우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무릇 외부의 적이 있을 땐 내부의 결속을 단단히 다져야 하는 법이다. (그렇다고 연합법이 양측 모두에게 환영받았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잉글랜드가 늘 그러듯 양아치처럼 굴었는데, 1705년에 외국인법(Aliens Act)이라는 걸 만들어서 동군연합국이던 스코틀랜드에 전방위 무역 압박을 가했다. 덕분에 스코틀랜드는 경제난에 시달리는 상황이었고, 연합법으로 얻을 수 있는 혜택이 절실했다. 양국이 합병된 후 스코틀랜드 의회는 폐지되었다.)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이야기는 너무 길고 복잡해서 여기에 다 쓸 수가 없다…. 이것저것 생략하고 대강 설명하자면 스페인과 프랑스가 편먹고 유럽의 패권을 장악해 보려 했는데, 영국 오스트리아 네덜란드는 그 꼴을 차마 볼 수 없었다. 그래서 두 세력 간의 전쟁이 일어났다. 이 전쟁의 불씨는 신대륙(미국)에 있는 영국과 프랑스 각의 식민지까지 번져서 앤 여왕 전쟁(Queen Anne's War)이라 불린 또다른 전쟁을 낳는다. 앤 여왕 전쟁은 1713년 위트레흐트 조약을 통해 표면적으로 종결되었지만 영/프 양측에 징글징글한 앙금을 남겼고, 이후 1744년에 조지 왕 전쟁(King George's War)이 벌어져 갈등이 재점화된다.


앤 여왕 집권기 당시 영국이 외부에서는 프랑스&스페인과 싸웠다면, 내부에서는 토리당(오늘날 보수당의 전신) 휘그당(오늘날 자유당의 전신) 양대 정당이 자기들끼리 죽자사자 치고받았다. 토리당과 휘그당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https://www.britannica.com/topic/Whig-Party-England


이 두 정당은 앤의 아버지 제임스 2세를 쫓아낼 때만 일시적으로 뭉쳤다. 역시나 외부에 공동의 적(하필이면 최고 권력자인 왕;)이 있으면 내부 분열이 극복된다. 일시 동맹이라는 현명한 판단 덕분에 왕권 제한에 성공하고 의회 자율성을 확보했지만, 공동의 적이 사라지고 나니 이들은 또 원래대로 내가 옳네 네가 옳네 갑론을박하기 시작했다. 휘그당은 전쟁을 지속해서 확고한 승리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생각했고, 토리당은 전쟁으로 인한 재정난과 민심 악화를 더 감당할 수 없으니 화친을 시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군주로서 앤은 어느 당의 손을 들어 주어야 나라가 더 나아질지 생각하느라 아주 머리가 아팠을 것이다. 앤의 오랜 친구인 사라 처칠(말버러 공작부인)은 강력한 휘그당 지지자였고, 사라의 남편인 존 처칠 장군(제 1대 말버러 공작)은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의 영웅이었다. (윈스턴 처칠의 조상이기도 하) 당연하게도 사라는 여왕과의 친분을 통해 휘그당에 힘을 실어 주려 했다. 그런데, 비록 말버러 공작 부부의 영향을 많이 받기는 했지만, 국교회(잉글랜드 성공회) 신자였던 앤의 정치 성향은 토리당에 가까웠다. (토리당원들은 거의 성공회 신자였고, 휘그Whig라는 당명은 스코틀랜드 속어로 장로교도들이라는 뜻이다) 나중에 사라 대신 앤의 총애를 받은 애비게일 마샴(마샴 남작부인)은 훗날 토리당 당수가 되는 로버트 할리(제 1대 옥스포드 백작)와 사촌지간이었다. 영화에서는 두 사람이 면식 없이 궁전에서 처음 만난 걸로 나온다. 로버트 할리는 원래 휘그당이었는데, 나중에 온건파 토리당으로 정치 노선을 변경하고 앤의 신뢰를 받았다. 위트레흐트 조약을 이끌어내서 앤 여왕 전쟁을 종식시킨 핵심 인물이다.


극중 총리(Prime Minister)로 등장하는 시드니 고돌핀(제 1대 고돌핀 백작)은 말버러 공작 부부의 정치적 측근이자 앤 여왕 내각의 재무장관(Lord Treasurer 또는 Lord High Treasurer)이었다. 고돌핀은 사실 노련한 정치인이라기보다 능력 좋은 재무/금융 전문가였다. 윌리엄 3세 치하에서도 재무장관으로 일했는데 도중에 사임했다가 앤이 즉위한 뒤 다시 재무장관으로 임명된다.


영화에서 고돌핀은 총리라고 불리는데 실제 직책은 재무장관이었다니 이게 뭔 소리지? → 이 시대의 재무장관(Lord Treasurer)이라는 직책은 오늘날의 재무부 1인자인 수석 재무관(First Lord of the Treasury)을 지칭하며 보통 영국 총리가 이 직책을 겸임한다. 재무부 업무를 실제로 통솔하는 재무장관(Chancellor of the Exchequer)은 공식적으로 제 2인자인 차석 재무관(Second Lord of the Treasury)이다. 참고로 영국 총리는 대대로 다우닝가 10번지에 살고, 재무장관은 옆집 11번지에 산다.


고돌핀은 토리당이었지만 앤 여왕 집권 후 말버러 공작과의 내밀한 친분 때문에 전쟁을 지지하고 휘그당의 편을 들어 주어서 토리당의 신뢰를 잃었다. 그러니까 할리는 휘그에서 토리로 간 인물이라면 고돌핀은 토리에서 휘그로 간 인물이다. 영화에서는 그 부분까지 다루진 않고 편의상 단순하게 할리(토리당) VS 고돌핀(휘그당) 이렇게 설정해 놓은 것 같다. (할리는 극중에서 계속 토리스럽게 말하는데, 자신의 세력을 야당(Opposition)이라 표현한다. 휘그당인 고돌핀이 총리니까 토리당이 야당인 상황인 것이다. 그러다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둘의 처지가 뒤바뀐다) 할리는 국무장관(Secretary of State)이었다가 나중에 고돌핀이 내쳐지자 재무장관=총리가 된다. 


여기까지가 <더 페이버릿>의 역사적 배경이다.






운명에 종속된 군주


왕과 귀족이 현존하는 영국은 전통적으로 계급이 가시화된 국가다. 태생에 따라 어떤 사람들은 남들보다 훨씬 더 귀하고 우월하다고, 특별한 존재라고 간주되었다. 그 정점에 왕실이 있다. 왕실의 핏줄을 타고났다면 결코 남과 같을 수 없다. 같아서도 안 된다. 더 아름다워야 하고 더 현명해야 하고 더 빛나야 한다. 통치자이자 지배자로서 그에 걸맞는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 이것은 막중한 의무다. 또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을 노리는 적들을 가려내고 한 발 앞서 대처해야 한다.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가장 높은 곳에 앉아 모든 권력과 사치를 누리지만, 군주의 삶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묵직한 왕관과 망토는 앤의 머리를 짓누르고 앤의 어깨를 처지게 한다. 과시적인 퍼프 소매와 패티코트로 부풀린 스커트는 위엄을 상징하지만 가뜩이나 불편한 거동을 더 불편하게 한다. 군주라는 지위 자체가 누구에게나 어마어마한 압박이다. 앤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여기에 17번이나 거듭된 자식의 죽음, 남편의 사망(앤의 부군 조지는 1708년 병으로 사망한다), 다리의 통풍 등 개인적 비극까지 겹쳐서 앤은 심각한 이중고를 겪는다. 이 영화 속 앤은 이미 삶의 에너지를 상당 부분 소진한 상태다. 본인이 직접 말하듯 너무 지쳐 버린 것이다.


하지만 지쳤다는 이유로 왕을 그만둘 수는 없다. 앤의 태생은 앤의 운명이다. 앤은 거기서 벗어날 수 없다. 나고 자란 궁전 밖의 세계도 모른다. 앤은 커다란 새장 속에 토끼들을 기르는데, 앤의 침실 창문에 설치된 창살들이 이 새장과 비슷하게 생겼다. 앤이 궁전에서 유일하게 안정을 느끼는 공간인 침실은 사실 앤을 가두고 있는 새장인 것이다. 새장에 갇힌 새나 동물들이 탈출하고 싶어하듯 앤도 벗어나고 싶어한다. 앤이 침실 창문을 열고 자살 소동을 벌이는 장면이 있다. 이것은 사라의 관심을 끌기 위한 어리광으로 묘사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 영혼의 비명이다. 앤은 무도회에서 춤추는 사람들을 질투하고 궁전의 창문 너머에서 아름다운 음색을 내는 음악가들도 질투하여 역정을 낸다. 모두 자신보다 비천한 존재들인데도 자신보다 자유로운 존재들이기 때문에. 


앤은 자기 다리로 걷기가 힘들어 목발이나 휠체어의 도움을 받는다. 궁전 내부의 지리조차 익숙하지 않아서 자기 침실로 가려면 누군가가 데려다 주어야 한다. 즉 앤은 지지대나 바퀴라는 보조 수단의 도움을 받아야만 나아갈 수 있고, 길잡이가 있어야만 방향을 선택할 수 있다. 앤의 오랜 친구이자 서로를 애칭으로 부를 만큼 각별한 사이였던 사라 처칠은 여왕의 정신적 지지대이자 정치적 길잡이를 자처한다.



기만 없는 냉정한 사랑


레이첼 바이스가 연기한 말버러 공작부인 사라 처칠은 정말 매력적인 인물이다. 그녀는 여왕을 이용하지만 결코 기만하지 않는다. 앤을 상대로 “당신 꼭 오소리 같아요” 라거나 “당신은 너무 예민해요”, “애처럼 굴지 마세요” 같은 직언을 서슴없이 남발한다. 물론 앤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빈말 전혀 안 하고 따박따박 독설을 퍼붓는 성격이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아니 그래도 여왕한테 너무 말을 심하게 하는 거 아니냐? 이래도 목 안 날아가나? 싶다. 오죽하면 앤도 “넌 너무 차갑고 못됐어” 라거나 “이 매정한 것!” 같은 소리를 한다.


그러나 사라가 정말 차갑고 못되고 매정하기만 했다면 앤이 사라를 계속 곁에 둘 이유도 없고 사랑할 이유도 없다. 사라와 앤은 아주 오랫동안 친구였다. 앤이 여왕이 되기 전부터. 그들 사이에는 둘만 아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고, 거쳐온 기나긴 시간들이 있다. 세월과 추억은 두 사람을 끈끈한 하나의 연대로 묶어 준다. 영화 속에서 앤은 반복적으로 ‘난 사라를 잘 알아’ 라고 말한다. 사라 역시 자꾸 옛날 얘기를 꺼내거나 둘만 아는 애칭을 부르는 등 자기가 앤을 누구보다 잘 안다는 사실을 과시한다. 심지어 두 사람은 성적으로도 긴밀한 관계다. 앤에게 사라의 존재는 갑갑한 새장 속 유일한 일탈이고, 계속해서 지리멸렬한 삶을 이어갈 수 있게 도와주는 길잡이이자 안식처다. (감정적 교감이든 성적 교감이든) 사라가 주는 위안만이 앤이 사는 낙인 것이다.


그러나 너무 많은 비극을 겪고 너무 많은 것을 상실한(대표적으로 17명이나 되는 죽은 자식들) 앤은 사라가 찔끔찔끔 주는 애정만 가지고는 만족할 수가 없다. 앤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자신을 다정하게 보살펴 주고 바쁘다면서 자신을 방치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 사라는 사라만의 방식대로 앤을 사랑한다. 분명 그 사랑은 진실된 것이지만, 앤도 그 사실을 알지만, 사라를 통해서는 결코 채울 수 없는 앤의 결핍이 있다. 앤은 그 결핍을 채우길 간절히 바란다. 기만이라도 좋으니까 누군가 자신을 보듬어 줬으면 하는 것이다. 앤을 기만하지 못하는 사라는 앤의 이런 욕망에 화답할 수가 없다.



기만하는 따스한 사랑


여왕과 공작부인이 등장했으니 이제 앨리스가 나올 차례다. 몰락귀족의 딸 애비게일은 자신이 원래 소속되어 있던 안락한 세계(귀족 사회)에서 땅굴 아래 이상한 나라(하층민 사회)로 추락한다. 이 이상한 나라에서 애비게일이 원래 알고 있던 상식은 붕괴한다. 당연한 듯 누렸던 권리는 사라진다. 애비게일은 원치도 않는 남자에게 팔려가고, 어찌저찌 팔려간 곳에서 빠져나와 새 일자리를 얻으러 가는 도중 마차에서 성추행을 당하고, 분변 섞인 흙에 얼굴을 처박는다. 간신히 하녀로 취직했지만 동료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그래도 힘없는 애비게일이 뭘 어쩌겠는가?


체스에서 가장 약하고 가장 머릿수 많은 기물(말)은 폰이다. 대부분의 폰은 그냥 폰인 상태로 죽는다. 계급 사회 약자인 하층민 대부분이 그 신분 그대로 죽듯이. 그러나 폰이 체스판 끝까지 나아가면 킹을 제외한 어떤 기물로도 변할 수 있다. 즉 폰은 애초에 신분이 가장 낮기 때문에 신분 상승을 욕망하고, 그 욕망을 실현시킬 잠재력과 추진력을 갖춘 기물이라는 것이다.


궁전이라는 체스판에 새로 들어온 애비게일은 아주 야심만만한 폰이다. 본래 귀족이었던 애비게일은 도저히 다른 하층민들처럼 계속해서 비참하게 살고 싶지 않다. 어떻게든 높으신 분들께 잘 보여서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살아야 한다. 그래서 여왕의 통풍을 치료했다는 빌미로 공작부인과 대화할 기회가 주어지자 자신의 불쌍한 사연을 팔아먹는다. 공작부인 사라는 이 사연을 듣고 동정심을 발휘해 가엾은 앨리스 애비게일을 자신의 직속 하녀로 삼아 준다.


하지만 애비게일은 여기에 만족하지 못한다. 하녀는 하녀일 뿐이고, 언제든지 내쳐질 수 있다. 마샴 남작이 자기를 좋아한다는데 신분 때문에 결혼도 못한다. 그래서 더 큰 권력과 더 큰 지위를 욕망한다. 여왕 앤은 이런 애비게일의 욕망을 실현시킬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하지만 어떻게 여왕을 꼬드겨서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할까? 서슬 퍼런 공작부인이 여왕의 총애를 한몸에 받고 있는데? 애비게일은 그들의 관계를 면밀 탐색해 자기가 끼어들 틈이 어디인지 알아낸다. 그 틈은 다름아닌 여왕의 결핍이다. 사라와 달리 애비게일은 앤이 듣기 좋은 말만 하고, 계속 아름답다고 칭찬하고, 죽은 아이들을 대신해 토끼를 기르는 앤의 사연에 공감해 주고, 앤이 원할 때 함께 시간을 보내 준다. 앤의 침실에서 목발을 짚은 앤과 함께 춤을 춘다.


사라나 애비게일이나 자신의 이득을 위해 앤을 이용하려는 건 똑같다. 그러나 애비게일은 “내가 여왕에게 뭔가 바라는 것이 있는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다”면서 교묘하게 앤을 기만한다. 이 전략이 잘 먹혀들었는지 앤은 실제로 사라에게 “애비게일은 너처럼 뭘 원하지 않아” 라고 말한다. 또 사라가 애비게일처럼 자신을 사랑해 주길 원했다고(I wish you could love me as she does) 고백한다.


그러나 기만하는 사랑은 진실한 사랑이 아니라고 믿는 사라는 그렇게 할 수도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 없다. 꼿꼿한 가지는 구부러질 줄 모른다. 결국 사라는 앤의 총애를 잃고 궁전에서 쫓겨난다. 애비게일이 권력 싸움에서 승리하고 여왕의 섭정 자리를 꿰찬 것이다. 사라가 쓰던 방도 애비게일의 차지가 되었다. 하지만 정말 애비게일이 승리했을까?


“세상에. 너 정말 네가 이긴 줄 아는구나.”

“아닌가요?”

“우리는 서로 아주 다른 게임을 했지.”(we were playing very different games.)


사라가 궁전을 떠나기 전 두 사람이 나눈 이 대화는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애비게일은 사라가 했던 마지막 말의 의미를 당장 깨닫지 못한다.



킹이 될 수 없는 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보자. 철저한 계급 사회에서 태생은 운명이라고 말했다. 왕은 왕으로 태어난다. 왕은 유일무이하며 특별하다. 어떤 폰도 킹이 될 수는 없다. 나이트, 룩, 비숍, 퀸, 어떤 기물도 킹보다 영향력 있지 않고 킹보다 강할 수 없다. 누구도 군주를 뛰어넘을 수 없다.


아무리 변덕스러워도, 아무리 정서가 불안정해도, 아무리 애처럼 굴고 예민해도 왕은 왕이다. 사라는 감히 자신이 모시는 군주를 업신여기 않는다. 뭐 오소리 같다느니 독설한 건 업신여긴 게 아니냐고 할 수 있는데, 사라가 앤에게 보여주는 솔직함은 궁극적으로 충성과 존경의 표현이다. 당신을 나의 군주로 인정하며 받들기에 간언하지 않고 아닌 건 아니라고 하겠다는 것이다.


사라는 앤의 앞에서 경거망동하지 않도록 조심하기도 한다. 독약을 먹었을 때 앤의 앞에서 토하거나 실수할까 봐 곧장 궁전 밖으로 나간다. 앤이 다친 얼굴을 무서워하니 레이스로 가리고 온다. 하지만 사라를 몰아내고 섭정이 된 애비게일은 술에 취한 채로 앤 앞에 나타나고, 속이 좋지 않다며 앤이 보는 앞에서 토하고, 앤의 소파에 널부러지기까지 한다. 앤이 자식처럼 생각하는 토끼 구둣발로 짓밟는다. 사라는 그 토끼들에 별 관심이 없었고 죽은 아이를 토끼로 대체한다는 병든 발상을 이해하거나 공감하지 못했다. 그러나 아마 단 한 번도 토끼들에게 폭력적으로 손대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약 사라가 토끼들을 깔보거나 해치거나 모욕했다면 앤은 사라를 그토록 사랑할 수 없었을 테니까. 새장에 갇힌 토끼들은 앤의 떠나보낸 자식이기도 하지만 자유를 박탈당한 앤 자신이기도 하다. 토끼를 건드린다는 것은 여왕의 역린을 건드리는 것이다. 앤의 일평생을 지켜본 사라가 이 사실을 몰랐을 리가 없다.


그러나 애비게일은 선을 넘고 여왕의 역린을 건드렸다. 숙적은 사라졌고 여왕의 총애를 받는 몸이 되었으니 더 이상 거리낄 게 없어졌다. 애초부터 앤을 사랑하지 않았기에 앤의 사연을 진심으로 동정하지도 않았다. 군주로서 앤이 감내했던 압박과 불행한 인간으로서 앤이 겪어 온 고통을 그닥 존중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애비게일은 언제나 그 누구의 편도 아닌 자신만의 편(I'm on my side. Always.) 이니까.


사라는 앤의 편이었고, 애비게일은 자기 자신의 편이었다. 그래서 애비게일은 사실 사라의 게임에 끼어들어 승리한 것이 아니라 사라의 게임을 억지로 종결시키고 자신만의 새로운 게임을 시작했을 뿐이다. 그 새로운 게임으로 킹(앤)이 옮겨 간 것이다. 약간 슬프지만 원래 남 생각을 조금이라도 하는 사람들은 철저하게 이기적인 사람들한테 밀려나곤 한다…. 지킬 게 있는 사람은 잃을 것 없는 사람이 눈뒤 까집고 달려들 때 버티지 못한다. 앤은 뒤늦게 애비게일의 게임이 자신을 위한 게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체스판 끝까지 전진해서 오만해진 폰 애비게일은 가장 강한 기물이 킹이라는 규칙마저 잊는다.


그래서 앤은 애비게일에게 그 규칙을 손수 다시 가르쳐 주기로 마음먹는다. 애비게일을 무릎 꿇게 하고 애비게일의 ‘서비스’를 받으면서, 애비게일에게 원하지 않는 일을 시키면서, 애비게일의 머리채를 휘어잡으면서, 폰이 결코 극복할 수 없는 킹의 태생을 깨우쳐 준다. 여왕의 섭정이라는 높은 자리까지 올라왔는데도 결국 저보다 더 높은 누군가에게 굴복해야만 하는 애비게일의 신세는 하녀 시절과 별반 다르지 않다. 게다가 자신을 굴복시키는 상대는 무슨 짓을 해도 절대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이다. 공작부인은 몰아낼 수 있었지만, 여왕을 몰아낼 수는 없지 않은가. 애비게일은 사실 처음부터 안락한 세계가 아니라 이상한 나라(계급 사회)에 있었고, 아무리 기어올라도 결코 이 기묘한 토끼굴로부터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이다. 클라이맥스에서 태생의 차이를 실감하며 변화하는 두 사람의 표정 대비가 정말 인상적이었다. 강렬하고 소름끼치고 무자비한, 그야말로 란티모스 감독다운 엔딩이다.






주연이 누구냐 따지는 게 무의미할 만큼 세 인물의 존재감이 팽팽한 작품이다. 삼각관계의 재미있는 점은 상황에 따라 언제나 누구 한 사람은 소외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앤과 사라의 끈끈한 우정에서는 애비게일이 소외되어 있고, 앤과 애비게일의 감정적 교류에서는 사라가 소외되어 있다. 이 이야기는 권력 투쟁이기도 하지만 소외되지 않으려는 인물들의 발악이기도 하다. 또 한편으로는 침범과 파괴에 대한 고찰이다. 애비게일이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 마침내 당도한 여왕의 침실은 앤이라는 한 인간의 가장 내밀한 공간이다. 애비게일은 그 성전을 침범하고 (토끼로 상징되는)앤의 영혼을 짓밟는다. 밖은 전시상황이며 전쟁에 참여한 국가들은 서로의 영역을 넘나들어 서로를 살해한다. 부패한 귀족들은 국민들에게 거둬들인 세금으로 쓸데없는 사치와 환락을 즐긴다. 자신들이 웃고 떠들고 오리 경주를 하는 동안 누군가는 사람답게 살아갈 권리를 빼앗기고 비참한 생활을 하면서 연명할 테지만, 그깟 하층민의 생계 따위는 알 바가 아니다. 고결함을 타고난 자들은 그렇지 못한 자들을 파멸시킬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리뷰는 심각하게 썼지만 이 리뷰를 쓰기 위해 다시 영화를 보면서 정말 많이 웃었다. 생각해 보니 영화관에서도 중간중간 웃었던 기억이 난다. 란티모스식 개그코드가 맞는다면 더 즐거울 것이고 안 맞아도 꼴불견인 것들을 작정하고 우습게 표현해 놔서 자꾸 웃게 된다. 내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는 호불호 안 갈리고 좋은 평을 들은 영화였다. 리뷰가 감상에 도움이 되셨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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