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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희미 Oct 09. 2022

『New York 2140』리뷰

기후 변화와 해수면 상승, 만약 뉴욕이 베니스처럼 물에 잠긴다면?


화성 3부작으로 유명한 킴 스탠리 로빈슨(Kim Stanley Robinson)이 2017년 출간한 『New York 2140』은 직관적인 제목 그대로 2140년 뉴욕을 배경으로 하는 공상과학(SF) 소설이다. 다 아는 사실이겠지만 SF에는 다양한 하위 장르가 있다. <스타 워즈> 같은 스페이스 오페라, 아서 클라크의 『신의 망치』처럼 철저히 과학에 기반한 하드 SF, 세계 또는 문명의 종말 이후를 다루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현대문명을 부정하고 과거 산업혁명기(특히 빅토리아조)의 연장으로서 미래를 바라보는 스팀펑크 등등. 『New York 2140』은 개중 하드 SF에 속한다. 외계인도 안 나오고 아이언맨도 없다. 그냥 굉장히 현실적이다. 세계가 망하긴 했는데 종말이라 부를 만큼 폭삭 망하진 않았다. 만약 누가 나한테 이 책을 소개해 달라고 하면 이렇게 말하겠다. “기후 변화 때문에 뉴욕이 베니스가 됐구요, 사람들은 원래 살던 대로 살아요. Life just goes on.”


소설은 총 613페이지로 상당히 긴 분량이며 2022년 현재 국내 번역본은 없다. 환경/기후 문제 또는 생태학적 비평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한 번쯤은 들어 봤을 법한 나름 유명한 책이고 2018년 휴고상 후보작이었다. 나는 석사과정 도중에 이 책을 한 차례 완독했다가 뉴욕 테마 북리뷰 기획 포스팅을 하기 위해 이번에 다시 읽었다. 처분한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데 집에 책이 없길래 이 고환율 시기에 직구를 감행했다.


독서를 하다 보면 다양한 책들을 만나게 된다. 나의 경험상 보통 책에는 다음과 같은 종류가 있다.


(1) 앉은 자리에서 곧장 다 읽어 버리는 또는 읽어 버리고 싶은 책

(2) 읽히는 책

(3) 안 읽히는 책

(4) 안 읽히는데 읽어야 하는 책

(5) 이런 책이 존재한다는 사실 때문에 세상에 회의감이 느껴지는 책


석사과정 공부할 때 이 책은 (4)였다. 그 시절의 심리적 압박감이 사라진 지금 다시 읽으면 감회가 좀 새롭지 않을까 싶었는데 착각이었다. 그냥 나한텐 잘 안 읽히는 책이었고, 또 길기도 무진장 길어서 괴로웠다. 흥미로운 구석이 없었던 건 아닌데 소설로서 재미가 있었냐면 모르겠다 진짜……. 좋은 점수를 주고 싶은 부분은 시의적절한 주제의식, 진부한 회의주의로 빠지기 쉬운 소재인데도 나름 낙관적인 미래상을 제시한 점, 가끔씩 사람 피식거리게 만드는 블랙유머, 다양성을 갖춘 인물 구성이다. 별로였던 부분은 산만한 내용 전개, 약한 드라마, 반복되는 사캐즘, 여성 인물에 대한 다소 불쾌한/도식적인 묘사, 과도한 컨텍스트였다. 몰입감 있는 독서보다는 피곤한 독서에 가까운 경험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리뷰하는 이유는 읽어 볼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단 뉴욕을 (작중 붙은 별명에 따르면) ‘슈퍼베니스(SuperVenice)’로 만들어 놓고 시작하니까 당연히 환경 문제가 전면에서 다루어지는데 사실 더 노골적이고 궁극적인 주제는 자본주의 비판이다. 읽다 보면 작가의 정치성향/사상이 정말 투명하게 보인다. 금융업 종사자라면 책 읽으면서 욕 먹는 기분이 들 수도 있겠다. 작가가 정치·생태·문화·경제 분야에 두루 지식이 많고 사전 조사도 철저히 했다는 건 알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소설(픽션)에 적절한 수준으로 녹여낸 것 같지 않다. 좀 과하다. 특히 금융 관련 내용들은 관련업계 종사자가 아니면 알아듣기 까다롭고 불필요할 정도로 길게 느껴지는 설명이 많다.


그래도 기본적인 설정 자체는 흥미롭다. 미래에 남극과 그린란드의 빙하가 녹아서 두 차례 급격한 해수면 상승(First Pulse & Second Pulse)이 발생한다. 세계 여기저기가 물에 잠기고 뉴욕도 예외는 아니다. 로어 맨해튼 지역은 대부분 침수된다.



[...] lower Manhattan is indeed much lower than upper Manhattan, like by about fifty vertical feet on average.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The floods inundated New York harbor and every other coastal city around the world, mainly in two big surges that shoved the ocean up fifty feet, and in the flooding lower Manhattan went under, and upper Manhattan did not. (p.34)

And so New York keeps on happening. The skyscrapers, the people, the what-have-yours. The new Jerusalem, in both its English and Jewish manifestations, the two ethnic dreams weirdly collapsing together and in the vibration of their interference pattern creating the city on the hill, the cirt on the island, the new Rome, the capital of the twentieth century, the capital of the world, the capital of capital, the unchallenged center of the planet, the diamond iceberg between rivers, the busiest, noisiest, fastest-growing, most advanced, most cosmopolitan, coolest, most desirable, mosr photogenic of cities, the sun ar the center of the wealth in the universe, the center of the universe, the spot where the Big Bang occurred. (p.35)


The truth is that the First Pulse was a profound shock, as how could it not be, raising sea level by 10 feet in 10 years. That was already enough to disrupt coastlines everywhere, also to grossly inconvenience all the major shipping ports around the world [...] Sure, people stopped burning carbon much faster than they thought they could before the First Pulse. Too late, of course. The global warming initiated before the first pulse was baked in by then and could not be stopped by anything the post-pulse people could do. (p.139)



소설 속 주연 인물들은 매디슨 애비뉴에 있는 MetLife 빌딩(Metropolitan Life Insurance Company Tower, 작중에서는 Co-op빌딩이라 실소유주는 건물 소유권을 가진 기업이고 거주자들은 각각 건물에 일정 지분을 소유한 주주다. 주주인 거주자들은 소유권 없이 거주권만 인정된다) 거주자들이다. 어느 날 31층-35층 사이에 걸친 farm floor 내부 비좁은 방에 3개월 정도 거주하던 프로그래머 두 사람(머트제프)이 실종된다. 일 잘하면서 조용히 살다가 모종의 이유로 자본주의에 반기를 들면서 어떤 ‘사고’를 쳤기 때문이다. 빌딩 거주자 대표 샬롯 암스트롱이 NYPD 조사관 젠에게 두 거주자의 실종을 알리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등장인물도 많고 각 인물에 따른 서브 플롯도 많아서 줄거리를 명확히 요약하기 어렵다. MetLife 빌딩 거주자들 중 하나인 아멜리아는 일종의 유튜버인데 비행선을 타고 날아다니면서 스트리밍 방송을 한다. 이 방송의 메인 콘텐츠는 기후 변화로 기존 서식지에 머물지 못하게 된 동(작중에서는 주로 동물)을 이주시키는 ‘Assisted Migration’이며 아멜리아가 북극곰을 이주시키는 어드벤처 서브 플롯이 분량을 제법 차지한다. (나한텐 이 서브 플롯이 그닥 재미가 없었다. 아멜리아가 노출 방송으로 인기를 끈다는 것도 현실적이긴 하지만 좀 눈살 찌푸려지는 설정이었다…. 아멜리아라는 이름부터 끊임없이 세계를 누비며 비행한다는 것까지 의도적으로 아멜리아 에어하트를 떠올리도록 한 인물인데, 이렇게 역사 속 위인에게 경의를 표한 인물을 창조해 놓고 꼭 성적 대상화를 해야 했나 싶었다. 이야기로서의 재미를 추구할 거라면 그냥 컨텍스트나 좀 줄이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Assisted Migration은 실제로 현재 세계 각국 관련기관에서 시행 중인 프로그램이다. 아래 링크는 미국 삼림청 산하 기후변화연구센터(CCRC)에서 제공하는 설명이다.


https://www.fs.usda.gov/ccrc/topics/assisted-migration


Assisted migration, human-assisted movement of species in response to climate change, is a general term that encompasses a variety of different potential actions, which have substantial differences in terms of risk, ecological implications, and policy considerations.



또다른 거주자 프랭클린은 WaterPrice라는 헤지펀드 회사에서 일하는 데이 트레이더(기관 투자자)다. 프랭클린의 전문 분야는 주택가격지수와 해수면 고도를 결합해 조간대 부동산 가치를 상정하는 것이다. 세계 곳곳이 물에 잠겼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부동산을 통해 부를 창출하길 원하고 자본도 지금 우리가 아는 방식대로 작동하고 있다. (프랭클린 파트가 나올 때마다 약간 짜증났는데, 금융업계에 문외한이라 지루한 건 둘째치고 이 인물 자체가 재수 없어서 별로 정이 안 갔다.) 그 외에도 빌딩 관리인 블레이드, 해저 보물찾기를 하는 어린애들(스테판과 로베르토), 도시의 역사에 정통한 현자 노인(헥스터 씨) 등등이 나와서 각자만의 사연을 늘어놓는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익명의 시민(the citizen)도 화자로 등장해 뉴욕의 문화와 역사를 줄줄 설명해 준다. (작중 배경 세계관이 흥미로운데도 이런 방식으로 컨텍스트를 설명해 주는 서술이 너무 길어지니까 상당히 피곤했다. 이 시민은 이야기 속의 사건들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지도 않기 때문에 말 그대로 설명만을 위해 설정된 화자다.)



사진 직접 찍음 / Kim Stanley Robinson, Orbit Books



뒤로 갈수록 인물들이 서로 관계를 맺고 사건들이 겹쳐지지만 진행이 정말 느리기 때문에 인내심이 필요하다. 문제는 그렇게 길게 진행된 일련의 사건들이 다소 허무하게 마무리된다는 점이다. 약간의 반전이 있으나 어느 정도 예측가능하며, 서스펜스로서의 긴장감은 거의 없다. 주요 사건들(이라고 부르기에는 다소 지엽적인 사건들)이 마무리된 뒤에도 뉴욕은 여전히 뉴욕이고 인물들의 관계에만 살짝 변화가 생긴다. 누군가는 성장하고, 누군가는 평온을 되찾고, 누군가는 사랑에 빠진다.


이 소설에서 기후 재난은 전제, 말 그대로 ‘이미 도래해 버린 사건’으로서 기능한다. 더 중요한 것은 전 지구적 현상이자 인류에게 공통 경험으로 각인된 기후 재난이 자본주의 체제에 어떤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발생시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자본은 계속해서 세계를 지배하고 재난 이후 오히려 더 가시적으로/노골적으로 첨예화된다. 로어 맨해튼은 문자 그대로 더 낮아지고lower 하늘 높이 솟아오른 마천루들은 낮은 지대의 재난으로부터 안전하다. ‘높은 곳’에 사는 사람들은 여전히 ‘아래’를 내려다본다. 자본가는 특권층으로서 기후 재난에 어떠한 영향도 받지 않으며 오히려 재난을 이용해 더 많은 부를 창출한다. (로빈슨은 SF라는 장르 자체의 사회비판적 성격을 아주 극한까지 활용했다.) 작중 주연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아래로부터의 전복’을 시도하지만 씁쓸하게도 전복은 일회적이며 견고한 질서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Why didn’t they take over the uptown towers?” Stefan asked the old man.
“They tried and it didn’t work.”
“So what?” Roberto said. “That was only one night! What if they kept trying every day?”
“It doesn’t occur to them.”
“Why not?”
“They call it hegemony.”
(p. 546)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인물들은 저마다 삶의 방향성을 찾는다. 저항하는 자들이 유의미한 작은 혁명을 이뤄 내고 개인적인 변화와 함께 삶을 지속해 나간다는 점에서는 낙관적인 전망이다. 그러나 세계는 여전히 유토피아가 아니며, 이 소설은 그 유토피아를 향해 일순 꿈틀한 태동과 더 나은 공동체를 향한 일보 전진을 묘사하고 있다. 아주아주 긴 지면을 할애해서.






나한테는 안 읽히는 책이었지만 평이 좋은 책이고 정말로 ‘그럴듯한’ 하나의 미래상을 제시한다. 이 책을 통해 독자는 뉴욕의 역사·문화·금융·정치 각 분야별로 다각적인 대량의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 읽다 보면 작가가 뉴욕이라는 도시에 얼마나 큰 애정을 지니고 있는지 체감된다. 또 책 속에는 기후 재난이 덮친 이후 도시 생활이 어떠한지 보여주는 흥미로운 아이디어들(지질학적으로 탁월함)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에 대한 인간적 고찰들이 들어 있다. 하지만 영 안 맞는다면 나처럼 굳이 고통받으며 꾸역꾸역 읽을 필요는 없다. 서사가 부실한 데 비해 정치색이 강해서 반감을 가지는 독자도 있을 것이고 독설에 가까울 만큼 젠체하고 설교적인 문체가 거슬릴 수도 있겠다. 킴 스탠리 로빈슨은 대표작인 화성 3부작이 휴고상도 받는 등 나름 SF계에서 이름이 알려진 작가인데(국내에는 1부만 번역 출간되었고 그나마도 절판됨) 국내에서는 별 인지도가 없는 듯하다. 『New York 2140』은 오디오북으로도 나와 있으니 관심이 있으면 찾아 들어 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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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27일자 뉴요커지 아티클 / 에디터 조슈아 로스만(Joshua Rothman)


https://www.newyorker.com/books/page-turner/kim-stanley-robinsons-latest-novel-imagines-life-in-an-underwater-new-y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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