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4기다!] - 10.
오늘 이전에 가장 최근 글 작성일을 보니 두 달 전이다. 내용을 살펴보니 정기 검사 때문에 병원에 갔을 때네.
이때 글 쓸 때도 스치듯이 스윽 언급하긴 했지만, 지난 4월과 5월을 돌이켜 보면 아마도 내 인생에서 가장 강력한 임팩트를 경험했던 때가 아니었나 싶다. 타임라인의 혼동이 오기도 하고, ‘아직 이만큼밖에 시간이 흐르지 않은 것인가’와 ‘벌써 이만큼이나 시간이 흐른 것인가’가 공존하는 이상한 기간. 그리고 그 기간 동안 가족들 사이에 엄청난 무언가가 공유되기도 했고.
오늘의 이 글은, 환자인 내가 보호자로서의 경험을 한 지난 2개월을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하는 글이다.
4월 12일.
5월에 있을 강의 자료를 넘겨야 하는 마감일이어서 자료 마무리에 한창이었던 점심시간 즈음 어머니께서 전화를 하셨다.
아버지께서 몸이 안 좋아서 오전에 지역 병원 응급실에 함께 왔고, 지금 여러 검사들을 진행 중이라는 것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들은 터라 그때 내 반응은 “네?”밖에 없었던 것 같다. 어머니 역시 아버지께서 정확히 어디가 어떻게 아픈 것인지를 제대로 알지는 못하시다 보니 그 당시 내게 하실 수 있는 말씀은 위에서 이야기한 내용이 전부였고. 통화 말미에 “전화를 할까 말까 고민했었는데 일단 알고는 있으라고 전화한 거"라고 말씀하셨고, 나 역시도 혹시 변동 상황 생기면 바로 연락달라고 말씀드리고는 일단 통화를 종결하였다.
순간 머리가 좀 멍해지기는 했는데, 어머니께서 저렇게 담백하게 말씀하시는 거 보면 그렇게 큰 일은 아니겠다는 생각을 했다. 산란해지려는 정신을 붙들고자, 강의 자료 마무리에 다시 박차를 가하려는데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다시 걸려온 어머니 전화.
“아버지 지금 헬기 타고 안동 병원에 가셔야 한대."
수화기 너머로 전해져 오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어보니 어머니도 이제는 조금 당황하셔서 경황이 없으신 듯했다.
게다가 헬기에는 환자의 보호자가 탑승할 자리가 없어서 부모님 댁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병원을 어머니께서 직접 운전을 하고 가셔야 하는 상황.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아니고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가 싶고, 지금 뭘 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는 그 상황에 나는 어이없게도 어머니와의 짧은 통화를 끝낸 후 강의 자료를 붙들고 앉았다. 정신없는 그 상황 속에서 ‘일단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걸 먼저 하자’라며 내 뇌가 강력한 회피 기능을 발동시킨 것이다. 그렇지만 그 모든 것들이 제대로 될 리 만무하지. 어머니와 통화를 끝낸 지 정확히 2시간 후 나와 동생은 안동행 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병원에 도착하니 대략 저녁 7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우리의 도착 소식에 응급실에서 나오신 어머니는 한눈에 봐도 얼이 빠지신 느낌이었다. 중환자실로 올라가야 하는데 침상이 없어서 현재 응급중환자실에서 자리를 기다리고 계신다고 했다. 보호자 1명만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라 내가 먼저 들어갔는데 한눈에 보기에도 아버지의 상태는 많이 심각해 보였다. 침상에 누워 계신 아버지를 보며 묘한 기시감이 들었었는데, 당시에는 연결 짓지 못했었는데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응급실에 계셨던 아버지의 피부색이 돌아가신 직후 뵈었던 할머니의 피부색과 같았다. 사실 응급실에서 처치를 받고 계셨던 아버지의 상황이 승압제 3개를 동시에 써도 올라가지 않고 체온마저 떨어지고 있었으니 그야말로 생과 사의 경계에 계시긴 했던 것 같다. 그래도 의식까지 완전히 흐려지신 상태는 아니었어서 나를 알아보시기도 하고 감기 걸린 건 어떻냐고 물어보시기도 하시는데 그게 또 그렇게 마음이 짠했다. 내가 아무리 중한 환자라고 해도 지금은 아버지 상태가 더 중 해 보이는 것을. 지금 누가 누굴 걱정하고 있는 겁니까 아버지.
곧 중환자실로 올라가실 것 같아서 오래 있진 못하고 얼른 동생과 교대했는데, 동생이 들어가자마자 중환자실로 이동한다는 연락이 왔다. 동생은 아버지와 함께 먼저 출발하고 나는 어머니를 모시고 동생이 알려준 대로 중환자실 앞으로 갔다. 일반 병실도 마찬가지지만 중환자실에 환자가 들어가고 나니 가족들은 더 이상 병원에서 할 것이 없었다. 간호사의 질문에 답을 하고, 몇 가지 써야 할 서류들을 작성한 후 면회 가능 시간과 병원 생활 중 필요한 물품에 대한 안내를 받고 나니 그날 우리 가족이 병원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없었다. 아버지께서 갑자기 왜 저 지경이 되신 건지에 대한 것은 내일 담당 의사를 만나서 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귀갓길에 올랐다.
밤 9시가 넘어 집에 도착했다. 저녁을 먹지 못한 어머니와 우리 남매는 얼른 라면이라도 끓여 먹자며 대충 손만 씻고 얼른 식사 준비를 했다. 나를 포함해서 모두 배가 고픈 것 같지는 않았지만 서로가 서로를 챙기는 차원에서 먹기를 권유하였고 그렇게 다들 조금씩 먹고 있었다.
몇 젓가락 먹었나 싶은 시점에 어머니 휴대폰이 울렸다.
병원이다.
목소리에 친절함이 가득 묻어나는 간호사 선생님은 아버지의 현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간략히 전해줬다. 통화 말미에 "아버님께 섬망 증상이 나타나면 환자 안전을 위해서 부득이하게 손발 구속을 할 수도 있다"라는 말과 함께 궁금한 점 있으면 언제든 중환자실로 전화 달라는 친절한 안내를 끝으로 통화는 종료되었다. 그리고 이 통화 종료 후 어머니는 감정적으로 급격히 무너지셨다. 너희 아버지 어쩌면 좋냐고 울부짖는 어머니의 모습. 한평생 침착한 어머니를 보아왔던 나에게 어머니의 무너짐을 보는 것은 무척 생경한 모습이었다. 그때 생각했다. 아. 지금부터는 내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어머니를 지켜야겠구나. 나 역시도 혹시 찾아올지도 모를 아버지의 부재가 무섭긴 했지만 지금은 그런 감정을 내보일 때가 아니라 어머니께서 안정하실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내가 해야 할 단 하나의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고 나니 그다음 내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간호사는 그냥 필요한 안내를 한 것이고, 지금 아버지가 어떻게 되신 것이 아니니 미리부터 너무 나쁜 결과를 생각하지 말자"며 어머니를 위로하고 다독이는 것이었다. 동생도 나와 완벽히 같은 생각을 했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 나의 이야기에 동조하며 어머니를 다독이는 것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어떻게 잤는지도 모를 밤이 지나고 세 명은 아침 일찍 병원으로 향했다. 담당 의사로부터 들은 아버지의 병명은 패혈성 쇼크. 패혈증이 진행되어 쇼크 상태까지 가신 거라고 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상황은 훨씬 심각했고, 그 와중에 종격동에 무언가 보이는 것이 있는데 이건 일단 지금 현재 아버지의 상태가 괜찮아지고 나면 그때 다시 이야기하자는 말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휘몰아치는 상황들에 숨 쉬는 것도 힘들었었다.
아버지야 어차피 의료진들이 집중 케어를 하고 있으니 밖에 있는 가족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는데 어머니의 경우 나와 동생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더 무너질 수도, 일상생활을 해나가실 수도 있는 문제였다. 아버지께서 상태가 호전되어 퇴원하실 때까지 어머니를 혼자 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남매의 의견이 일치했다. 상대적으로 시간 여유가 있는 내가 어머니와 며칠 동안 함께 있으면, 지역을 옮겨 재택근무가 가능한 동생이 회사에 상황을 이야기하고 아버지 퇴원 때까지 아예 부모님 댁으로 내려와 지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내가 어머니와 좀 더 시간을 보낼 수도 있었지만 나 역시 환자라는 점을 잊지 않은 동생은 본인이 할 수 있는 최대한 빠른 시점에 상황을 정리하였고, "지금은 누나의 건강을 잘 지키는 것이 어머니와 내가 덜 힘들 수 있는 길임을 잊지 말라"는 당부까지 들은 후에야 동생에게 어머니를 맡기고 상경할 수 있었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련의 상황 속에서 내가 더 힘들었던 것은 '어머니 앞에서 힘든 티를 내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환자와는 또 다른 의미에서의 당사자인 어머니를 잘 지키기 위해서는 내가 평상심을 유지하면서 어머니를 불안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힘든 나의 감정을 속에서 잘 다스리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했다.
이런 상황들을 겪고 나니 '환자의 보호자'가 겪을 수밖에 없는 여러 마음의 어려움들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되었다. 처음 병을 진단받은 후부터 나는 줄곧 '환자'였기에 환자가 겪는 어려움에만 집중했고, 병을 직접 겪고 있는 나에게만 집중하느라 중병을 겪고 있는 딸을, 그리고 누나를 바라보고 있는 부모님과 동생의 입장에 대하여 단 한 번도 고려해보지 않았다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환자는 그저 자신의 상황에만 집중하면 되지만 보호자는 환자는 물론 주변의 상황들까지 돌아보는 것뿐만 아니라 그 와중에 본인의 마음도 알아서 잘 다스려야 하는 여러 유형의 어려움 앞에 놓이게 된다는 것을 이번에 겪고 나서야 명확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동안 내가 환자라는 점을 내세워, 벼슬 아닌 벼슬처럼 누리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환자가 환자로서 힘든 점이 있다면 보호자는 당연히 보호자로서 힘든 점이 있는 건데, 그 부분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해본 적이 없다는 것에 대하여 스스로에게 놀랍기도 하고 일면 부끄럽기도 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고 나니 그다음에 내가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가족들이 나를 보며 걱정하지 않도록 내가 내 건강을 열심히 잘 챙기며 지낼 것.
적어도 가족들이 '쟤 저렇게 건강 관리 소홀히 하면 안 될 텐데'라는 생각을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보호자가 가지는 수많은 어려움 중 하나를 없애주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역시 사람은, 무슨 일이든 겪어봐야 깨닫게 되는 것 같다. 겪기 전에 미리 알고 행할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텐데 그게 도통 잘 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알아서 정말 다행이지 않은가. 어쩌면 평생 모르고 살면서 내가 환자인 것이 무슨 큰 벼슬하는 것처럼 지낼 수도 있었는데 '응~ 그거 아니야~"를 아주 확실히 체득할 수 있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