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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다 Feb 03. 2022

과연 백인 남자도 그렇게 생각했을까

백인


지난주, 글로벌 디지털 마케팅 매니저로 이직한 지 2달 만에 구글 광고 플랫폼을 살펴볼 수 있었다. 에이전시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나에게 계정 권한을 주는 것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광고 플랫폼에 들어가서 캠페인 세팅이랑 퍼포먼스를 보고 나서야 왜 그랬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캠페인 세팅은 엉망이었고 퍼포먼스도 좋지 않았다. 지난 1년 동안 엉망으로 계정을 관리하고 돈을 낭비하고 있었다는 것을 10분 만에 알아낼 수 있었다.


처음에는 Audit을 준비하려 했다. Audit은 일종의 컨설팅 같은 작업으로 현재 광고 세팅이 뭐가 잘못했는지, 어떻게 하면 퍼포먼스를 개선할 수 있는지 알려주는 작업이다. 보통 클라이언트 측에서 비싼 돈을 내고 진행하는 작업이라 에이전시에 있을 때 몇 번 해본 적이 있는데, 반대로 클라이언트가 에이전시 Audit을 해준다니 웃길 노릇이었다. 그래도 나의 목표는 최적의 광고 세팅을 통해 퍼포먼스를 개선하는 것이니 군말 없이 하고 있었다. 그런데 에이전시가 가장 중요한 우리 브랜드 키워드를 타겟팅하지 않고 있어서 이 문제만 먼저 이메일을 보냈다. 


에이전시에서 온 답변은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다른 형태로 이 키워드를 타겟팅 하고 있으니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키워드의 종류에 대한 것은 내가 코멘토 세션에서 1주 차에 멘티들에게 가르치던 내용이다. 내가 돈 주고 에이전시를 교육해야 하나 싶어서 설명을 포기하고, 이거 외에도 문제가 많다고 어카운트 매니저 교체를 요청했다. 그리고 Audit 대신 내가 원하는 캠페인 구조는 어떻게 생겼는지 PPT 15장 분량의 전략을 짜서 보내줬다. Audit을 통해 실수를 일일이 지적하는 것보다 새로운 출발을 하는 것이 앞으로의 관계에 더 나을 것 같아서다.


이렇게 분노의 이메일을 보내고 친구와 대화를 나눴다. 그래도 1년이나 우리 계정을 맡아준 사람들인데 어카운트 매니저 교체를 요청한 것이 너무 한 걸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참고로 친구는 외과의사로 남초 중의 남초 환경에서 일한다. 상황을 쭉 들어보던 친구가 질문을 던졌다. 지금 네가 업무가 끝난 이후로도 일 생각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데 과연 백인 남자도 그렇게 생각했을까? 백인 남자라면 나는 오늘도 일을 열심히 했다, 멋진 나 하면서 편하게 잠자리에 들 것이라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고민을 조금 떨쳐버릴 수 있었다.


문제는 오늘 에이전시와의 워크샵에서 벌어졌다. 에이전시에서는 총 8명이 미팅에 참여했고, 우리 측에서는 나 혼자였다. 원래 내 보스가 참여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바쁜지 참여하지 못했다. 웃긴 건 프랑스 에이전시였는데 콜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백인 남자였던 것이다. 내가 전에 일하던 에이전시는 성비가 딱 5:5였는데, 오직 이 회사의 이 팀만 남자들로만 이뤄진 게 조금 이상하긴 했다. 대충 인사를 나누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러면 안 됐었는데 불편한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사과를 하면서 콜을 시작했다. 어제 이메일로 무례하게 굴어서 미안하다. 내가 생각했던 최적의 세팅과 너네의 세팅의 차이가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오늘 대화를 나누면서 앞으로 어떻게 일할지에 대해서 얘기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미 내가 최적의 캠페인 전략도 보내줬고, 캠페인 구조를 바꾸는 것은 어느 정도 동의가 됐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새로운 캠페인 구조를 보여주면서 앞으로 어떻게 일할 것인지를 논의하는 것으로 콜이 흘러갈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데 어제 내가 지적했던 실수를 또 끄집어내서 자기네들은 잘못이 없다고 우기기 시작했다. 그 구조는 트래픽을 더 끌어오기 위한 자동화 전략을 위한 최선이었다고 말했다. 내가 반박하려고 해도 지네들끼리 말을 돌리면서 내 말을 끊어먹기 시작했다. 백인 남자들은 마이크를 꼭 붙잡고 안 놔주는 게 습성이다. 그래서 나도 과감하게 하는 말을 끊어먹고 내 말을 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자동화 전략을 얘기하는데, 내 전 회사가 구글이 처음 그 서비스 출시했을 때 초반에 테스터로 참여했던 곳이다. 나한테 자동화를 가르치려고 들지 말라고 했다. 그러니 너 전 회사는 규모가 크고 어쩌고 하길래 또 말을 끊고 둘째, 그렇게 우리 브랜드 검색량이 불만이면 왜 우리 제품 키워드 다 리스트업 안 했냐고, 제품 키워드도 다 타겟팅 안 하면서 트래픽을 핑계 대지 말라고 했다. 그러니까 드디어 입을 닫더라.


그리고 에이전시의 계정 아래서 우리 계정을 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에이전시를 바꾸면 우리가 돈 주고 쌓은 데이터를 모두 잃을 뻔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새 계정을 만들어서 거기서 새로운 캠페인을 런칭했으면 한다고 했다. 그러더니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 Billing Detail이 있어서 안된다 -> Billing Entity만 MCC 간 공유 가능하다, 우리 캠페인 세팅을 잃는다 -> 구글 어카운트한테 연락하면 버튼 하나로 이전시켜준다, 그동안의 데이터를 잃는다 -> 어차피 지금 캠페인 구조로는 데이터를 클리어하게 볼 수 없다고 새로 론칭해도 상관없다고 하나하나 말을 끊으면서 팩트로 반박해 줬다. 그러니까 마지막에는 내 말을 듣고 비웃는 것이었다. 어려 보이는 동양인 여자가 할 말 없게 조목조목 팩트로 패주니 자존심이 상하고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대놓고 말했다. It's really unprofessional that you're laughing at me who is your client. (클라이언트가 하는 말을 비웃다니 너 참 언프로페셔널 하다.) 


검색광고의 기본조차 이해를 못 하고, 태도까지 안 좋으니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갈 필요가 없었다. 앞으로 이메일로 대화하자고 콜을 끝냈다. 그리고 그쪽 디렉터에게 전화해서 계약 종료를 통보했다. 그런 태도를 가진 사람과 일을 못하겠다고 했다. 본인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다는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그들은 오늘 돈 줄을 잃은 것이다. + 누가 보스인지 이해 못 하는 멍청함 때문에.


영국에서 일하면 이렇게 거만한 백인 남성들이랑 부딪힐 상황이 엄청 많다. 다행히 내가 내 업을 정말 잘하고 (I know my shit) 싸움할 때 영어 능력이 5배는 증폭되기 때문에 (셀링 선셋, 가십걸, 쉐임리스 이런 드라마들 보면서 영어 공부해서 그렇다. 슈슈슈슉슉슉 덤벼라) 이들과 기싸움에서 매번 이길 수 있다. 그런데 사회 초년생이나, 막 해외취업을 한 사람들에게 이런 문화는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앞으로 이런 해외에서 일하면서 생기는 에피소드를 카카오 뷰에서 연재하고자 한다. 아래 링크를 통해 친구 추가를 하면 글이 발행될 때마다 편하게 받아볼 수 있다. 


http://pf.kakao.com/_xnxaxmBb


앞으로 연봉 협상이나 쓴소리를 하게 될 상황에 처했을 때 다 같이 이 문장을 떠올렸으면 좋겠다. 과연 백인 남자도 그렇게 생각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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