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요즘 유난히 AI가 대체할 직업들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예전에는 단순반복적인 직업들이 대체되고, 창의력이 요구되는 직업들이 살아남을 것이라 다들 예측을 하곤 했죠. 하지만 현실의 AI는 머리 감겨주는 기계를 개발하는 대신, 우리를 위해 그림을 그리고 창의력을 스스로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럼 과연 퍼포먼스 마케터는 3년, 5년 그리고 10년 뒤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이 고민은 퍼포먼스 마케팅 커리어를 시작한 지 3년차에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캠페인을 구글 애즈 에디터로 키워드, 광고를 업로드하고 키워드 bid(경매값)를 수동으로 조절하는게 당연했어요. 자동화나 머신러닝은 이미 존재했지만, 본격적으로 사람보다 머신러닝이 더 나은 성과를 낸다는 것을 체감한 건 2021년 쯤이었습니다. 럭셔리 패션 중에서 광고비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회사 중 한 곳에서 있었기 때문에, 이 변화에 최전선에서 여러 제품을 사용했습니다. 머신러닝이 2시간마다 데이터를 읽고, 입찰가를 알아서 조정하는 걸 보며 ‘얘가 내 일을 다 하면, 나는 뭘 해야 하지?’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매니저 레벨이 되고 나서 이 불안은 조금 줄었습니다. 매니저 레벨 이전에는 기술을 얼마나 잘 이해하느냐가 강점이었지만, 승진 이후에는 비즈니스의 맥락을 이해하고, 사람들과 소통을 하며, 데이터를 바탕으로 전략을 세우는 능력이 제 역할이 됐습니다. 그래서 자동화는 주니어 레벨의 채용 규모를 줄이는 데만 영향을 미쳤고, 내 커리어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줄 알았죠. 그러던 어느 날, ChatGPT가 등장했습니다.
이 무시무시한 기능의 등장으로 패닉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ChatGPT에 마치 제 뇌를 외주 준 것 같았어요. 데이터도 잘 분석하고, 전략적 결정의 방향도 잘 결정하더라고요. 그때 이건 진짜 내 일자리를 대체할 수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집 고치기 유튜브 채널들을 보면서 꿈꿔왔던, 타일공의 꿈을 드디어 이룰 순간인가라는 고민도 했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AI에 대해 이것저것 공부하고, 사용도 많이 해본 상태에서 지금은 AI가 제 직업을 대체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다만, 이건 모든 마케터들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많은 대형 에이전시들은 인도 같은 노동력이 저비용 국가로 인력을 아웃소싱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에이전시들의 결과물은 형편없어졌고, 신뢰도는 하락했습니다.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는 어차피 내 계정이 이러한 저숙련 노동자에게 외주를 준 다는 것을 안 이상, 에이전시들을 거의 무료나 다름없는 AI 모델로 대체할 것입니다. 따라서 AI 개발자와 퍼포먼스 마케터가 협업하는 소규모 인하우스 팀이 대형 에이전시를 대체하게 될 것입니다.
요즘만큼 퍼포먼스 마케터들 간의 실력 차이가 극명하게 느껴지는 시대는 없었습니다. 누구는 아직도 수동 입찰을 고수하고, 누구는 AI로 에이전트를 만들어서 계정 운영부터 리포팅까지 다 자동화 합니다. 전자 퍼포먼스 마케터들은 서서히 후자로 대체될 것입니다. 더이상 구시대의 베스트 프랙티스에 집착하면서 AI를 업무에 적용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상황은 당연히 저에게도 적용되는데요. 정말 지금이 아니면 늦었다는 느낌으로 공부를 해야지 5년, 10년 뒤에도 살아 남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발행하는 뉴스레터에는 AI FAFO라는 코너를 포함하려고 합니다. FAFO는 Fxxk Around & Find Out의 약자인데요. 직접 시도를 해보면서 망쳐도 보면서 배운다는 뜻이죠. AI 시대는 완벽한 튜토리얼을 기다리면 이미 늦습니다. AI를 가장 잘 사용하는 방법은 직접 부딪혀보고 내 아이디어를 실현해보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채용 결정권자인 어른으로서 정말 말하기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LLM들이 신입보다 똑똑하기 때문에 신입을 채용할 필요가 없어질 것입니다. 원래 신입들은 잡일을 조금씩 덜어주면서 일을 천천히 배워나가며 점점 중요한 일을 맡게 되는데, 이제 잡일을 LLM들이 다 해줄 수 있기 때문에 교육할 시간을 굳이 들여가며 신입들을 채용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제 입장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정말 많이 고민해봤는데, 정답은 취업 준비생 하나하나가 ‘사업가’의 마인드로 취업준비를 하는 수 밖에 없을 것 같아요. 이것에 대해서는 추후 뉴스레터에서 다뤄보겠습니다.
퍼포먼스 마케터가 누굽니까? 기업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온라인에서 측정이 되는 광고 상품을 운영하는 사람이잖아요. 처음에 ChatGPT가 등장했을 때 가장 큰 광고 플랫폼인 구글이 망할거라는 소문이 파다했습니다. 사람들이 구글 대신 ChatGPT에 검색을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구글 검색 광고도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죠. 그럼 구글 광고를 담당하는 퍼포먼스 마케터들도 사라지겠죠. 하지만 얼마전에 OpenAI에서 광고 상품 개발자를 채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말은 ChatGPT에 광고를 운영할 수 있는 플랫폼이 곧 출시될 것이고, 이 말은 이 광고를 운영할 퍼포먼스 마케터들의 수요도 있을 것이라는 말이 됩니다.
퍼포먼스 마케팅을 하면서 시대마다 메인으로 쓰는 플랫폼은 바꼈지만 (예를 들어 Snap에는 요즘 아무도 광고를 하지 않지만 TikTok에는 큰 광고비를 투자하죠) 항상 이 광고를 운영하는 사람은 존재했습니다. 앞으로 이 광고를 운영하는 사람의 수는 줄겠지만, AI 플랫폼을 잘 활용하는 퍼포먼스 마케터가 더 귀해지고 시장에서 중요한 대접을 받을 것이라 예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