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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다 Feb 27. 2019

쳇바퀴를 도는 햄스터처럼 항상 불안하다면

런던에서 받는 첫 정신과 상담

런던에 도착한 이후로 온전한 고독에 자주 노출됐다. 취미도 없고 운동도 하지 않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요리를 하고 글을 쓰는 것 밖에 없었다. 5시 30분에 퇴근해서 자기 전 12시까지 잉여 시간에 서서히 파묻혀서 외로움을 견뎠다.

그렇게 런던에 온 지 2년이 다되어가는 시점에는 모든 것이 안정을 찾았다. 집에 가면 반갑게 맞아주는 친구들, 안정적인 직장, 새로 취미 붙인 수영, 주말마다 어울려주는 친구 등 꽤 든든한 기반을 다져왔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불안 장애가 찾아왔다.

나는 참을성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 이유 없이 불안하고, 신경이 곤두서 있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있다. 항상 낭떠러지에 서있는 기분으로 하루를 보내고, 잠을 잘 때조차 최소 다섯 번은 깨는 탓에 한시도 숨을 편하게 쉴 수가 없다. 하지만 가장 두려운 것은 주변 사람들의 행동들을 지나치게 관찰하고 예민하게 반응했던 것이다. 항상 집에 같이 가던 직장 동료가 먼저 퇴근했다는 이유로 인간관계가 다 무너져버리는 기분이 들었을 때 빨간 경고등이 들어왔다. 그리고 11월에 프리세션을 진행했던 클리닉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참고로 영국은 약을 제외한 대부분의 의료 서비스가 무상으로 제공되며, 정신과도 예외는 아니다. 다만 대부분의 진료는 스페셜리스트가 아닌 GP라는 제너럴 한 의사한테서 끝나고, GP가 소견을 보내줘야만 전문의를 볼 수 있다. 다만 정신의학과는 GP를 거치지 않고 바로 셀프 리퍼가 가능하다. 대부분의 NHS 서비스는 필요에 의해 무료 통역 서비스가 제공되지만 나는 요청하지 않았다. 내가 이용한 센터는 Back On Track이라는 센터인데, 보통 집, 직장, GP 근처의 센터만 이용 가능하므로 아래 링크에서 가까운 센터를 찾아서 전화로 예약을 하면 된다.

https://beta.nhs.uk/find-a-psychological-therapies-service/



11월의 전화 세션은 나의 상태를 확인하고 적절한 프로그램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자기 변화에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인 CBT와 전문의와 이야기를 나누는 테라피 세션, 두 가지 옵션이 주어졌다. 지금 단계에서 급진적으로 변화를 시행하면 무리일 것 같다는 생각을 전달했고, 상의 끝에 테라피 세션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오늘은 센터로의 첫 방문이었는데, 바로 상담을 진행하지는 않고 나에 대해 더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고 테라피 때 어떤 문제에 초점을 맞출지에 대해 의논하기로 했다.

가족, 직업, 친구, 사랑에 대한 질문을 차례차례 훑어가며 대화를 진행했다. 평소에는 굳이 꺼내지 않는 내 깊은 이야기를 무미건조하게 말하는 게 약간 낯설었다. 나의 상황이니까 얼마나 힘든지 굳이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입 밖으로 내뱉다 보니 객관화가 됐다. 누구나 이렇게 살지 않냐라는 말로는 담아지지 않는 일들이 작년에 꽤 많이 일어났더라.

질문이 모두 끝나고 테라피스트는 일단 도움을 청하러 와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선 내가 어린 시절 힘든 일이 있을 때 어른으로부터 적절한 정서적 지지를 받지 못해서 자기 안정/위로(self-soothing)를 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것 같다고 했다. 노력을 통해서 목표했던 모든 바를 성취했기 때문에 이제는 약간 속도를 줄여도 되는데 그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쳇바퀴를 도는 햄스터처럼 계속 달려서 불안이 오는 것이라 했다. 무엇인가 고장 난 게 아니라 그냥 방법을 모르는 것이다.

테라피는 총 12주의 세션으로 구성되어 있고, 나 같은 경우는 심각한 단계는 아니라 빠른 시일 내에 나아질 수 있을 거라 했다. 그리고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과정을 기록해놓고자 한다. 12주가 지나면 변화된 내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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