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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enect May 28. 2021

비로소 나의 도시, 제주

그리운 나의 서울

제주에 온 지 어느새 꽉 채운 7개월이 되었다.

급작스럽게 제주에서 살게 되었고 급하게 내려와 급하게 적응했다. 첫 시작부터 급작스러웠던 제주생활은 지내는 동안에도 폭풍 같은 날들이 이어졌다. 5개월이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나는 2번의 이사를 거쳤고 제주에 온 지 7개월이 지난 지금에서야 조금은 안정된 날들을 보내고 있다. 덕분에 많은 생각들을 하고 나를 더 들여다보고 돌봐주고 있는 중이다.




제주살이 7개월 차, 이제 내게 제주는 꽤나 익숙한 곳이고 이제서야 제주의 집이 내 집 같다는 생각이 든다.(물론 집주인은 따로 있다) 이번 달 초 업무로 인해 서울에 갔는데 서울이 달라져 있었다. 아니 서울을 마주한 내가 달라졌다. 왜 사람들이 서울이라는 이 화려한 도시를 떠나지 못하는지, 서울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서울이 얼마나 재밌는 도시인지가 눈에 들어왔다. 그동안은 그저 '서울이구나' 였다면 이번엔 내가 새로운 곳에 가서 관찰하듯 서울을 바라봤다. 슬프게도 난 이제 서울에서 제3자가 되었다.


이번 서울행은 일정이 길었다. 약 8일 정도 서울에 머물렀다. 첫 2-3일은 서울이 참 좋고 어반자카파의 '서울 밤' 노래만 주구장창 들으며 내적흥을 폭발시켰는데 딱 거기까지였다. 여행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가 어딜 가도 2-3일이 최대치인 것처럼. 서울은 내게 익숙한 도시여야 맞는데 고향으로 돌아간 게 아닌 여행하듯 다른 도시에 간 기분은 꽤나 색다르게 느껴졌다. 서울이 이제 나의 도시가 아니라니. 30년이 넘는 시간을 보낸 서울이 6개월 만에 낯선 도시가 된 건 지금 생각해도 이상하지만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구나 싶다.


어쨌든 이렇게 제주가 내 집, 나의 도시 같아지고 나니(사실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그리운 것들이 생겼다. 서울에서만 가질 수 있는 시간들.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들, 왁자지껄 수다를 떨기도 하고 서울의 거리를 걸으며 흥을 잔뜩 올리기도 하고. 함께 웃으며 그리고 또 함께 분노하고 울기도 하며 감정을 나누는 것. 시대가 좋아지고 문명이 발달해 물론 제주에서도 나의 좋은 사람들과 감정을 나눌 수 있고 안부를 묻고 하루를 공유할 수 있다. 특히 사람과 오래 붙어 있으면 금세 지쳐오는 내게는 더할 나위 없는 소통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부대낀다는 것이 가끔씩 그리워지는 요즘- 나의 밑바닥을 보여주고도 어느새 씨익 웃으며 또 부대끼는 그런 날들이 그립기도 하다.


혼자는 편하고 좋지만 재미는 여럿일 때 찾을 수 있다. 왜 그런 말이 있지 않나. 편하려면 혼자 살고 재미있으려면 결혼을 하라는. 난 재미보단 편함을 추구하는 사람이지만(과연) 그래도 가끔 그 재미들이 그리울 때가 있다. 다 먹지도 못할 만큼 바리바리 먹을 것을 사들고 돗자리를 펴고 앉아 하염없이 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한강을 보며 마음을 나누는 일, 아이스크림 하나씩 들고 달콤하게 즐기는 봄의 석촌호수 산책, 왁자지껄 시끄러운 가게에서 치열하게 먹는 매콤하고 맛있는 음식들. 그런 북적함이 그립기도 하다. 그런데 쓰다 보니 그저 코로나 전이 그리운 것 같기도.




모든 것에는 장단점이 있다. 제주도, 서울도 물론이다. 다른 도시도 또한. 그렇지만 내게 조금 더 맞는 도시를 찾을 순 있다.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것에선 떠나고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에 가까이 가면 된다. 내가 과연 제주에 언제까지 살게 될지는 미지수지만 7개월이 된 지금, 나는 조심스레 평생 제주에 살면 좋겠다고 바라본다. 아주 조심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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