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는 때때로 익숙하지 않은 선택을 한다

퇴사 후, 안 해본 선택을 했다.

by heenect

적지 않은 나이에, 좋아하는 직장을 끝내 퇴사했다. 다음을 정하지 않은 채로.


의미 없는 루틴을 만들고 지키며 지내다 당장의 욕구를 해결하는 일상을 보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지 않은 건, 언제부터였을까?


난 내 마음을 잘 들여다보고 나와 잘 대화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당장의 욕구를 해결하는 한 달을 지내며 그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처음엔 내가 미래에 대한 답을 당장 할 수 없어서 그렇게 보낸 시간이, 돌이켜보니 다른 무엇보다도 나에게 집중하고, 내게 귀 기울이는, 오롯이 내게 집중한 시간이었다.

하고 싶은 것에 대해 꺼내지 않던 나는 나를 자꾸 미루던 나에게 토라져 있었던 것 같다. 근데 끊임없이 내게 하고 싶은 것을 묻고 그걸 하고 나니, 닫혀 있던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것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하나씩 꺼내 적기 시작하자 무수히 많은 ‘하고 싶은 것’이 쏟아졌다. 예전의 내가 그랬듯 지금의 나도 여전히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사람이었다. 이 사실에 나는 조금 안도했다.


하고 싶은 것들을 계속해서 꺼내고 나니 이제 문제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어느 하나를 꼽을 수가 없었다. 아니 하나씩 지워가면서 걸러내고 싶지 않았다. 하고 싶어 하는 이 마음이 얼마나 소중한 마음인지 알기에 다 살려두고 싶었다. 일을 할 때라면 절대 하지 않을 선택이었다.


끝내 나는 하나를 고르지 않기로 했다. 나는 어떤 성공을 목표하고 있지 않았으니까. 우선순위를 두거나 어떤 하나의 큰 목표를 두고 전체 로드맵을 짜서 전략적으로, 계획적으로 움직이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되면 분명 해보기도 전에 버려지는 것들이 나올 터였고, 그게 또 아쉬울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마음을 바꿨다. 기존에는 내 KPI가 무언가 하나의 액션을 했을 때, 얼마나 좋은 결과를 남겼냐였다면 이번에는 내가 써 내려간 하고 싶은 것을 몇 개나 해냈냐가 되었다.


해본 적 없던 일이었다. 마케터라 효율을 추구하고, 늘 기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나였기에 이런 선택은 꽤 긴 시간 이어져온 관습에 반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해보고 싶었다. 쭉 써둔 ‘하고 싶은 일’ 중에 왜인지 눈에 띄는 것, 지금 당장 마음이 가는 것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몇 년간 외면해 온 내 마음의 소리를 들어주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이제부터 ‘했다’에 집중하기로 했다. 전과는 달리 내게는 이제 결과보다 그냥 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