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ditor 흰둥 Jan 10. 2020

#10. 청첩장 미션은 어려워

식장에 입장하기까지 한 달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앞자리 수가 바뀔 때마다 LTE급으로 흐르는 시간의 속도에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시간의 흐름은 ‘상대적’이라는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옳음을 몸소 느끼는 순간이었다.



핸드폰 속 스케줄 어플은 D-day까지 해야 할 일들로 빼곡했다.


그중에서 고난도는 “청첩장 돌리기.” 종이(청첩장) 접기의 가내 수공업을 마치고 나니 전달식이라는 엄청난 미션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겉보기에는 단순해 보이지만, 초대 명단을 선정하는 일부터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가에 대한 망설임이 항상 동반되었다.



무엇보다 청첩장의 완성은 심혈을 기울인 문구, 표지 디자인도 아닌 매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매너를 지키지 못해 서로 얼굴 붉히거나, 멀어지는 일들이 주변에 비일비재하다.


누군가에겐 청첩장이 고지서처럼 보였다는 우스개 소리가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고결한 초대장이 한순간에 청구서 종이 쪼가리로 전락해 버릴 수 있다. 나 역시 이러한 최악의 사례들을 듣거나 경험한 바 있어 매우 신중한 자세로 임했다.


한 예로 A라는 친구는 학교 졸업 후 연락이 끊긴 모든 동창생들에게 초대장을 날렸다. 나도 그중에 하나였다. 몇 년 만에 반 강제로 초대된 단톡 방에서 모바일 청첩장을 받아 당황스러웠던 경험이 있다.

또 B라는 친구는 바쁘다는 이유로 여러 번 약속을 파하고 결국 끝까지 청첩장을 전해주지 않아 친한 친구들에게 서운함을 안겼다. 더군다나 sns에 매일같이 올라오는 다른 사람들과의 청첩장 모임 사진, 데이트 사진은 실망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늘 받기만 하다가 주는 입장이 되어보니 또 다른 고충도 느낄 수 있었다. 어디까지 줘야만 하는지 혹여나 받지 못해 서운함을 느낄지, 아니면 부담감을 느낄지 애매모호한 관계들이 고민의 대상이 되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부담감, 불편함보다는 서운함이 추후 관계 회복에도 낫다고 본다.


또 공적인 관계로 묶인 탓에 초대하고 싶지 않지만 해야만 하는 상황도 발생했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는 계속 두 개의 상반된 마음이 충돌했다. 행복한 날, 불편한 사람과 마주하고 싶지 않은 마음과 동방예의지국 사람으로서 예의를 지키려는 마음. 결국 식 일주일 전까지 이 문제로 끙끙 앓다가 초대하지 않음으로 결론 내렸다.


나는 거리상 만남이 불가능한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서면 전달식을 완료했다. 식 한 달 반을 남짓 앞두고 해야 할 일도 태산이었지만 무엇보다 평일 저녁 시간을 쪼개서 만남을 가지니 체력도 바닥을 쳤다. 고난의 행군과도 같았다랄까. 물론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보낸 좋은 시간이었지만 고갈된 체력과 사람 거르기에 따른 스트레스는 강제 다이어트를 불러일으켰다. (결국은 긍정효과를 준 셈인가?)


어쨌든, 청첩장 돌리기 미션을 완수하고 나니 그제야 내가 지나치게 타인의 시선에 신경 썼음을 깨달았다. 나는 그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비치고 싶어서 과한 예의를 차리기도 했고, 겉보기와 달리 소심한 탓에 내적 스트레스를 겪기도 했다.


관계망에는 언제나 한계가 있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건 어쩌면 처음부터 불가능했던 거다. 누군가에게 부담을 안기는 것보다 차라리 서운함을 택했던 나의 청첩장 철칙도 누구는 옳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는 거처럼. 하지만 기본 매너를 갖춘다면 진심은 전달되지 않을까? 여전히 어렵긴 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09. 웨딩케어, 어디까지 해봤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