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나에게 이 순간이 올 거라고 상상해 왔지만 막상 식장 문 앞에 서니 기분이 묘했다.
어떠한 단어로 설명하기 힘든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버진로드 위의 행진은 순삭이었다. 몇 걸음 걷지 않으니 어느새 신랑과 아빠의 바통 터치가 이뤄지고 있었다.
하나밖에 없는 귀한(?) 외동딸 보내는 길이 아쉽지 않으신지... 아빠는 너무나 쿨하게 나를 그에게 보내고 무대 위를 내려가셨다.
나의 베일이 뒤로 넘겨지는 영화 같은(?) 순간도 눈 깜빡할 사이에 끝났다. 이 한 장면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고민하고, 논의하고, 상상해왔는데 빛의 속도로 지나갔다.
나중에 들어보니, 아빠와의 행진은 빠른 배속 감기 수준이었다고 했다. 마치 아빠가 나를 끌고 가는 모습처럼 보였다고. (아빠 역시 긴장된 마음이 걸음 속도로 표현되었던 걸까?)
제일 기억 남는 장면을 꼽으라면 단연 축가 시간이다. 나의 플레이리스트 일 순위였던 곡이 너무나 감미로운 목소리로 재탄생돼 내 귓가를 스쳤다. 잠시나마 이 곳이 무대라는 사실을 잊고, 리듬에 몸을 맡겼다.
물론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긴장이 조금 풀린 2부 입장에서는 하마터면 대형 사고를 칠 뻔했다. 몸을 감싸는 긴 이브닝드레스에 밟혀 단상 아래로 미끄러질 뻔했으니... 두고두고 안줏거리 이야기가 될뻔한 순간을 간신히 넘겼다.
사진 촬영, 식사, 하객 인사까지 모든 일정을 끝마치고 나니 비로소 허기가 졌다. 배와 등짝이 거의 맞닿기 직전이었다. 물 한 모금조차 제대로 마시지 못한 채 하루 종일 빈 속으로 드레스 자태를 유지했다.
공주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폐백을 하지 않았다. 대신 폐백 장소 끄트머리에 앉아 식사를 했다. 하객들이 모두 돌아가고 흔히 말하는 정산의 시간에 꽉 끼는 드레스로부터 해방된 채로 다 식은 고기를 꾸역꾸역 먹었다. 무대 위 화려한 조명을 받을 때와는 정말 대조적인 분위기였다. 분명 식어도 맛있는 스테이크인데,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너무 오랫동안 압축당한 위 때문인지, 긴장감이 풀려서인지 처음 느껴보는 고기의 ‘無’ 맛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행복했다. 아니 그와 나, 우리는 행복했다. 네 번째 손가락에 낀 반지가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이제는 정말 부부라는 게 실감이 났다.
예식을 끝내고 나니 드는 한 가지 생각. 결혼식은 생각보다 ‘더’ 힘들고 ‘더’ 재밌다. 누군가에게는 허례허식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한 편의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이 드는 그런 날이었다.
평생 단 한 번이라는 함정에 빠져 작지 않은 사치를 실행하기도 했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그 어떠한 지불 비용도 후회하지 않는다.
그 비용 안에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일생에 가장 행복한 순간이 담겨 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