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유한함을 아는 사람만이 순간의 빛을 알아본다

달이 뜨지 않아도 마음만은 휘영청 밝았던 추석

by 희온
IMG_3941.jpeg 너무 로고 같은가요? 따뜻한 밥상을 심플하게 표현해 보고 싶었습니다:)


추석 연휴, 서울 하늘은 내내 흐렸습니다.


일 년 중 가장 둥글다는 보름달은

끝내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달보다 더 환한 온기가

우리 가족의 마음을 채우고 있었으니까요.




| 온기가 오가는 밥상


저희 시댁은 다섯 형제예요.


명절의 시댁은 늘 북적이는 소리로 가득하지요.


쉴 새 없이 현관문이 열리고

반가운 얼굴이 하나, 둘 모여들면

좁은 거실은 금세 사람 사는 온기로 후끈해집니다.


별것 아닌 농담에도

까르르 웃음꽃이 피어나고

갓 지은 밥 한 공기와 소박한 반찬에도

'맛있다', '고생했다'는 다정한 말이 오갑니다.


저희 시댁 형제들이 의가 좋긴 하지만

늘 평화롭기만 한 건 아니에요.


때로는 큰소리가 나기도 하고 서운해질 때도 있지만

우리 가족은 상대방의 흠을 들추기보다,

따뜻했던 순간, 상대방이 잘했던 일, 나를 배려했던 일을

더 오래 기억하려는 사람들입니다.


그 북적이는 온기 속에서

저는 가족의 의미를 깨닫습니다.


늘 같은 편이 되어 지지해 주고

존재 자체로 힘이 되어주는 관계가

바로 진정한 가족이겠지요.




| 사람을 자라게 하는 것은 꾸지람이 아닌, 믿음과 지지


시부모님과 시누이들은 제게 늘

'예쁘다', '잘한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사실 저는 그리 살뜰하게 식구들을 챙기지도 않는데 말이죠.


이 다정한 칭찬과 배려는

비단 저에게만 향하는 것이 아니에요.


시댁 식구들은 늘 서로 배려하고

고맙다, 미안하다는 표현을 아끼지 않고

작은 일에도 칭찬을 건네는 따뜻한 사람들입니다.


그 다정한 믿음과 지지 앞에서

저는 더 좋은 며느리이자, 더 나은 가족의 일원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됩니다.


사람을 자라게 하는 것은

날카로운 비판이나 비난, 꾸짖음이 아니라

따뜻한 말과 시선이라는 것을

저는 시댁에서 배우고 있어요.


그 믿음이 저를 더

단단하고 따뜻한 사람으로 만들어 줍니다.




| 아버지의 환한 웃음과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 같은 시간


이 모든 풍경의 중심에는

연로하신 시부모님이 계십니다.


특히,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하루의 대부분을 실내에서 보내시는 아버님은

자식들이 모여 도란도란 웃고 떠드는 모습을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행복하다고 하십니다.


사실 5년 전, 아버지의 병세가 악화 돼

병원에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거든요.


아버지는 늘 말씀하십니다.


"내가 사는 이유는 너희들이 모여서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는 낙이 있어서야."


술잔이 오가고 빛바랜 추억 이야기가 나올 때면,

평소에는 숨이 차서 말도 못 하겠다고 하시던

아버지가 즐거운 수다쟁이가 됩니다.


아내와 자식들에 대한 사랑이

아버지에게 살고자 하는 의지를 불태우게 했고

그 의지가 아버지의 시간을 5년이나 더 붙잡아 준 것이라 믿습니다.


하지만 명절의 끝은 언제나 야속하게 찾아옵니다.


헤어질 시간이 되어 현관을 나설 때면,

아버지의 눈가에는 어김없이 젖어듭니다.


"또 올게요."

하는 저의 말에 이게 마지막 만남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서글픔과 아쉬움을 느끼시는 듯합니다.






| '함께 있는 지금' 이기적인 기도를 하게 됩니다


시부모님은 늘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없어도 너희끼리 자주 보고 살아라."


저희는 지난 5년을 덤으로 얻은 선물 같은 시간이라 여기면서도,

언젠가 마주해야 할 이별 앞에서 두려운 마음을 감출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매번 헤어질 때면,

이 선물 같은 시간이 조금만 더 이어지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기도를 올리게 됩니다.


내년에도, 그다음 해에도

이 웃음소리와 따뜻한 밥상이 그대로이기를.


비록 올해 추석, 하늘의 둥근달은 보지 못했지만

서로의 얼굴을 보며 마음속에 휘영청 밝은 달을 띄운 밤.


함께 있는 지금, 이 순간에 그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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