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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고운 Oct 27. 2020

양양 여행의 후유증

내일모레 마흔이다. 날이 추워져서 가을을 타는 건지, 아니면 나이에 뒤따르는 마흔 앓이를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회사 가기 싫은 건 여전하다. 물론 나도 알고 있다. 요즘 같은 시대에 다닐 수 있는 직장이 있다는 자체가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하지만 아이 낳고 육아 휴직했다가 복직한 엄마들이라면, 회사 일도 회사 일이지만 집에 가면 또 시작되는 육아 출근의 생활에 체력이 고갈되어감을 뼈저리게 느낄 거다. 휴식이 필요한 시기다.


다행히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라 친구들도 한창 휴직 혹은 퇴직을 고려중인데, 신기하게도 퇴사 후 양양 혹은 동해에서 살고 싶다고 말하는 애들이 몇 명 있었다. 끼리끼리 논다고,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하고 친구를 하는가 보다. 한 명은 진짜 양양의 아파트를 보고 오기도 했고 또 한 명은 동해안을 따라 카페 투어를 다녀왔단다. 이쯤 되니 나도 양양이라는 곳에 끌리기 시작했는데, 무엇보다 '서퍼들의 성지'라는 수식어도 뭐랄까, 하와이가 연상되어서 더 궁금한 것이었다. 시간을 봐서 한 번 다녀와야지 하던 즈음, 바빠서 깜박했던 결혼기념일이 생각나 겸사겸사 양양으로 향했다.


그러니까, 내게 있어서 처음부터 양양 혹은 그 주변 동네는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살고 싶은 후보지였고, 그러므로 단순한 여행자의 눈이 아니라 예비 거주자의 눈으로 살만한 동네인지 자동 검열이 들어가는 곳이었다. 일단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역시 서피 비치였는데, 수영도 못하고 더구나 서핑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주제에 '바닷가 마을에서 매일 서핑하고 살고 싶다'는 막연한 로망이 충족되기에 이만큼 최적인 장소가 우리나라에 또 있을까 싶었다. 하와이에서 살 수도 없고, 괌에서도 살기 어렵다면 그나마 가장 현실적으로 가능한 장소가 바로 양양이었다. 이미 기존에 많은 서퍼들이 정착해 있어 특유의 젊고 개성 강한 분위기가 흐르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맛있는 피자집을 검색하다 양리단길이라 불리는 인구 해변까지 내려가서 피자를 주문하고 가게에 앉아 있는데, 가게 주인도 그렇고 피자를 만드는 주방장도 그렇고 단골손님도 그렇고 어찌나 자기만의 색이 강하던지, 어떻게 이렇게 독특한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지내게 되었는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평소 남을 평가하지 않는 남편이 '양양에는 독특한 사람들이 다 몰려 사나 봐.'라고  속삭이기까지 했다. 서핑이라는 공동의 고리에 끼어서 이 곳으로 몰려든 사람들. 다들 직장은 어쩌고 젊은 나이에 여기까지 흘러오게 되었을까? 개인성을 버리고 조직에 물들어 사회화가 되느냐, 아니면 손가락 빨며 사는 위험을 감수하며 개성을 잃지 않고 자신에게 충실하게 살 것인가의 기로에서, 다들 두 번째를 선택하고 온 사람들처럼 보였다. 아마 그건 내 심리가 그러하기에, 그렇게 보인 걸지도 모르겠다.


날이 거뭇거뭇해지던 저녁, 하조대 해변에 앉아 폭죽 불꽃놀이를 하면서 하늘을 올려다보았을 때의 청량감이 며칠을 갔다. 아이에게는 불꽃놀이의 즐거움이 며칠을 갔는지 한동안 불꽃놀이 하러 가잔 말이 입에서 떠나지 않았다. 후유증이 이렇다 보니 남편은 돌아오자마자 양양에 대한 조사를 열심히 하였는데, 이제야 양양군에 도시가스가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기사를 보면서 겨울철 난방비에 대한 걱정을 현실적으로 해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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