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난주 설악산에 있는 신흥사에 들렀다 내려오는 길이었다. 날씨가 완연한 가을날이라 하늘도 파랗고 햇살도 따사롭고 바람도 선선과 쌀쌀의 어느 경계즈음이었는데 이보다 완벽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 만큼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는데 정말 어디를 가든 인산인해였다. 등산로 가기 전부터 설악산 입구 초입까지 차도 많고 사람도 많고 음식점이든 카페든 바글바글 했다. 모두 가족 단위 혹은 친구나 연인과 함께 온 것처럼 보였다. 물론 나도 남편과 초2 아들과 함께 간 터였다. 초2 아들은 아직 키도 그렇고 덩치가 작아 체력이 많은 편이 아니라 신흥사까지만 들렀다 오는데도 힘들다고 칭얼거렸다. 나는 마음 같아서는 울산바위나 토왕성 폭포까지 올라갔다 오고 싶었지만 아이와 남편만 남겨두고 다녀올 수는 없으므로 다음을 기약하며 내려와 카페에 들르기로 했다.
등산로 초입에는 카페가 여럿 있었는데 그중 우리는 벌집 아이스크림을 파는 가게로 들어갔다. 아이가 그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고 신흥사 올라가기 전부터 계속 말했던 터라 약속도 지킬 겸이었다. 인기가 많은지 대기줄도 길었고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볕이 따뜻한 곳은 인기가 많아 자리가 쉬이 나지 않아 우리는 살짝 그늘이 진 자리에 앉아 각자의 음료를 즐겼다. 나와 남편은 마 인삼 주스를 선택했다.
그늘진 자리라 금방 쌀쌀해졌다. 게다가 차가운 음료들을 마시고 있자니 오래 앉아 있을 수가 없어 금방 일어나기로 했다. 가게 앞에 양지바른 곳으로 나와 몸을 녹이면서 주위를 둘러보는데 갑자기 내 시선을 끄는 누군가를 발견했다. 중년과 장년 그 사이 어디 즈음 있을 나이로 추정되는 한 남자였다. 할아버지라고 말하기에는 정정하지만 장년보다는 더 들어 보이는 남자가 홀로 등산을 하고 내려왔는지 스틱을 옆에 놓고 볕이 따사로운 테이블에 앉아 벌집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 얼굴에 스치는 바람과 햇볕을 동시에 느끼면서 고단했던 산행을 아이스크림 한 스푼과 함께 마무리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나는 이 노인 직전의 남자가 정말 혼자 온 것인지 궁금하여 한동안 지켜보았는데 아무리 보아도 기다리는 사람도 없어 보이고 누군가를 찾는 느낌도 없었다. 그저 해가 넘어가기 전 권금성 부근 산자락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아이스크림을 조금씩 소박한 느낌으로 떠서 입에 넣어 먹는 것이었다. 남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이 시간을 홀로 조용히 만끽하는 것처럼 보였다.
집에 와서도 한동안 이 광경이 잊히지 않았는데 , 그 많은 인파 속에서도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인생의 즐거움을 놓치지 않고 즐기는 모습이 어쩌면 내게 큰 의미로 다가왔던 것 같다. 아이스크림을 한 스푼씩 음미하며-그것이 막걸리이거나 다른 차였다면 이렇게 오랫동안 인상적일까?- 풍광을 바라보던 남자의 표정에서, 나는 내가 원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모습에서 뭘 닮고 싶었던 것일까?그 닮고 싶은 모습의 느낌이 정확히 뭘까?
답을 구하기 전까지라도 그 광경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