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카페 루루흐에 다녀왔다. 아이를 독서실에 데려다주고 마땅히 할 일이 없어서 마트에나 다녀올까 생각하다 문득 루루흐가 생각났다. 루루흐는 5시에 문을 닫으니 평일에는 가기 힘든 곳이라 주말에 가야지 하고 생각해 놨던 곳이었다. 카페에 주차장이 없다고 해서 언덕 아래 주차를 하고 걸어 올라갔다. 언덕길을 쭉 따라 올라가면서 만나는 풍경들이 낯익기도 하고 또 새롭기도 했다. 낯선 골목은 평범한 일상에 신선한 에너지를 주기에 햇볕이 뜨거워도 천천히 구경을 하면서 올라갔다. 언덕 끝에 있다고 했던 것 같은데 카페는 보이지 않았다. 작은 교회도 지나치고 능소화 피어있는 담장도 지나치고 생뚱맞은 곳에 위치한 옷 가게도 지나쳤다. 그러다 주택가에 대나무가 있는 건물을 발견했다. 혹시나 하고 간판을 찾으니 없다. 소심하게 문을 열고 들어가니 왼편으로 서가가 보인다. 맞게 찾아온 것 같다.
하얀 실내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테이블이 여러 개 놓여있고 심플한 화분이 몇 개 놓여있다. 혼자 책 읽는 사람, 혼자 생각하는 사람, 그리고 다정한 커플이 한 팀 있었다. 우선 메뉴판을 보고 '과테말라 라 로마'를 차갑게 주문한다. 그러곤 책장으로 다가가서 주인의 서재를 살펴본다. 보통 북카페에 가서 낯익은 책을 발견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읽고 싶은 책을 발견하면 눈이 똘망똘망해진다. 그중 이성복 시인의 책을 꺼내와 자리에 앉았다. 작으면서 손에 쏙 들어오는 이런 책이 좋다. 책을 가지고 자리에 앉으니 먼저 물 한 잔을 건네준다. 아무래도 한낮 언덕을 올라왔다고 하니 내가 목이 마를 것이라고 생각해서 가져다주신 것 같다. 고마운 마음과 함께 시원한 물 한 모금 들이켜고 시인의 글을 읽었다.
"시는 도서관이 아니고 노래방이에요. 헛소리가 참말이 될 때까지 계속 연습하세요. 시는 질문하는 것이고, 중심을 돌아보는 것이고, 자기를 괴롭히는 것이에요. 그러다가 불꽃처럼 한순간 터지는 거예요. 시에 대한 감이 없으면 인생에 대한 감도 없다고 봐야 해요." - 『무한화서』 이성복 -
무심코 펼친 페이지에서 좋은 문장을 만났다. 몇 페이지 읽어나가다 보니 주문한 커피가 투명한 글라스에 얼음과 함께 담겨 나왔다. 유리잔에 담긴 진한 커피는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하고 마실 때마다 달그락거리는 청량한 얼음 소리는 귀까지 맑게 해 주었다. 루루흐 안에는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모두들 각자 조용히 한낮의 시간과 공간을 즐기고 있다. 주말 한적한 카페에 앉아있으니 속초에 여행 온 듯한 여행자 느낌이 든다.
커피를 마시다가 테이블 왼쪽으로 세세하게 적혀 있는 문구를 발견했다. 이 카페의 특이한 점은 착석한 자리에서만 사진촬영이 가능하다고 한다. 아까 서재에서 사진을 촬영한 나는 괜히 무안해진다. 그리고 대화 시 커지는 목소리를 주의해 달라고 당부한다. 사진촬영도 대화도 자제해 달라니? 보통 분위기 좋은 카페를 가면 음료를 주문하고 사진을 찍는 것이 보통인데 사진을 찍지 말라 한다. 그리고 지인들과 카페를 가면 2-3시간 수다는 기본인데 대화를 자제해 달라고 한다. 이것만 아니다. 그래서 카페 루루흐는 조용한 카페를 지향하므로 이용시간은 2시간으로 제한하고, 노트북 사용도 안 된다. 요즘 카페 분위기와 반대로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루루흐의 운영방침을 잘 이해를 하고 나니 오로지 책과 음악, 커피만으로 채워지는 카페가 더 맘에 든다.
"루루흐는 소음에 방해받지 않는 조용한 카페로 운영합니다. 까다롭고 불편할 수 있는 공간이지만 이 점이 역시 루루흐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결을 가진 사람이 많듯이 카페 문화도 다양했으면 하고 무엇보다 저희가 좋아하는 취향을 지키고 싶습니다." -카페 루루흐-
카페지기의 뚝심 있는 취향이 루루흐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런 지향점이 있는 카페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요즘은 대형카페 위주라 혼자 조용히 독서하거나 사색할 만한 곳이 마땅히 없다. 평소 12시에서 5시까지, 하루 5시간만 운영된다는 카페는 시간상 제약으로 내가 시간이 난다고 아무 때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불편한 편의점이 아닌 불편한 카페지만 그걸 감내하고라도 짬을 내서 또 가고 싶은 공간이다. 이렇듯 좋은 카페를 찾아내는 감이 좋은 나는 인생에 대한 감도 쌓으러 이곳을 자주 노크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