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로 이직하며 느낀 점_두 번째
독일 가기도 전에 독일 체험 중
나는 뮌헨으로 이직한다. 아직 독일에 가지도 않았은데 나는 이미 독일문화를 체험 중이다.
계약서상 업무 시작일이 5주가량 남은 시점에 회사로부터 비지신청 관련 서류를 받았고, 바로 취업비자를 알아봤다. 독일 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주한 독일 대사관에 방문해야 한다. 대사관 방문을 위해서는 온라인 방문예약을 해야 하는데, 방문예약 난이도가 내가 지금껏 경험해 본 모든 시스템을 통틀어 최고이다. 우선 하루 중 언제 방문예약이 가능한지에 대한 공지가 없다. 처음에는 아침 8시에서 10시가 확률이 높다는 후기를 보고 그 시간을 노렸으나 1주일간 한 번도 예약화면 이동 버튼이 나타난 적이 없다. 다시 검색을 했고 아침 7시에 열린다는 글을 봤다. 다음 날 아침 접속해서 처음으로 예약페이지를 열 수 있었는데, 기입해야 하는 정보가 10개 정도 있었다. 당연히 나는 경쟁자들보다 늦었고 예약에 실패했다. 다음 날은 보안코드를 1회 잘못 입력해서 다시 시도했더니 이미 예약페이지로 넘어가는 버튼이 사라지고 없었다.(보안코드가 타 시스템대비 인식하기 어렵다) 세 번째 시도에서는 예약페이지로 넘어가는 데 성공했으나 예약가능한 일정이 남아있지 않았다. 네 번째 시도에서는 예약가능한 페이지로 넘어갔으나 역시 정보를 다 입력하고 나니 경쟁자들보다 늦어 예약에 실패했다.
공식적인 콜센터로 전화해 봤으나 홈페이지에 공지된 내용만 알려줄 뿐 담당자 통화연결 옵션은 있지도 않았다. 급한 사람은 메일로 문의하라고 되어있길래 문의했으나 첫 번째 메일을 보내고 난 후로 2주일이 다 되도록 답장이 없다.(오늘 세 번째 메일을 보낼 예정이다) 새로운 정보라도 얻을까 싶어 방문예약 없이 독일 대사관에 방문했다. 다행히 리셉셔니스트를 만날 수 있었고 그분으로부터 새로운 전화번호를 받았다. 그분이 내게 새롭게 준 정보는, 1. 독일 대사관은 지금 이 시스템을 절대 안 바꿀 것이며, 2. 두 번의 메일발송은 아주 적은 횟수이며, 3. 전화는 100번은 해본다고 생각해고 해봐야 겨우 연결될 것이라는 점이었다.
이런 시스템이 내가 지금까지 매우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던 독일에, 그것도 어느 작은 기업이 아니라 국가 기관에 있다는 게 너무 놀라웠다. 독일은 현재 구인중이다. 즉 해외 인력을 더 많이 데려오는 것이 국가의 목표이다. 이를 고려했을 때 해외인력을, 더구나 나 같은 고급인재를(나는 엔지니어고 현지기준으로도 상당한 고연봉자이기 때문에 고급인재 카테고리에 들어간다) 데려오는데 걸림돌로 작용하는 시스템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다음은 이런 시스템이 독일에 존재하는 이유, 그리고 이런 시스템을 바꿀 생각이 없는 이유에 대한 내 나름의 추론이다.
비자는 대사관에서 혼자 발행하는 게 아니고 독일 정부와 협력해서 발행할 것이다. 따라서 독일 대사관 혼자 빨리한다고 개선될 문제가 아니다. 그러면 왜 대사관과 협업하는 독일 기관은 더 빠르게 처리할 생각을 안 하는가? 이 질문은 결국 독일 정부 시스템이 효율성 개선을 이루어내지 못했는가와 연결되는데(아직도 독일 정부 시스템은 페이퍼웍을 기본으로 한다), 난 그 근본 원인이 개인을 존중하는 문화, 즉 업무를 강요하지 않는 문화와 관련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몇 년 전 친한 친구로부터 프랑스 소재 글로벌 대기업의 기업문화에 대한 얘기를 들었는데, 새로운 일이 생기면 리더가 팀원 개개인에게 그 일을 할 수 있는지 물어보고, 모두가 할 수 없다고 대답하면 새로운 인원을 뽑아야 한다고 윗선에 보고한다고 한다. 반면 유럽과 비슷하게 고용이 비탄력적인 한국에서는 새로운 업무가 생겨도 어떻게든 기존 인원들로 해결하고 만다. 인원 충원은 본사에서 정하기 때문에, 새로운 일을 소화해내지 못한 리더는 나쁜 평가를 받는다. 한국은 목표에 맞춰 개인을 변화시키는 문화라면, 독일은 개인에 맞춰 목표를 수정, 또는 지연시키는 문화가 아닌가 싶다. 달리 말하면 집단을 위해 개인을 희생하는 게 한국문화라면, 그 반대가 독일문화가 아닌가 싶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독일 시스템의 내적 완결성이다. 이들은 방문예약 시스템을 어렵게 함으로써 아예 독일 대사관에 방문조차 못하게 막아놨다. 따라서 비자 발급에 실패하는 사람들이 통계로 나타나지도 않을 뿐 아니라(방문예약 없이는 대사관에 들어갈 수도 없고 따라서 비자신청도 할 수 없다) 심지어 그런 사람들을 볼 수조차 없다. 따라서 공식적인 기록에는 대사관의 시스템에, 독일 비자 발급에 어떤 문제도 없다. 이로 인해 시스템의 내적 안정을 취할 수 있고 업무 실수를 줄일 수 있다. 물론 나는 이런 시스템이 올바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는 최대한 잘 드러나야 한다. 그래야 개선하고 발전할 수 있다.
이 문제에 관해 결론이 난 건 아니다. 독일에 가서 더 많은 조사를 할 것이며, 업데이트가 생기면 새로운 글을 올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