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과 무관한 밥벌이를 하고 있는 경제학도가 바라본 유럽사 <유러피언>
나는 경제학과 출신이다. 대학교에서 4년 내내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외계어 같은 수식과 그래프, 통계와 경제수학의 바다에 허덕이면서 한참을 고통 받아왔다. 나는 경제학이 싫었다. 한 치 앞을 모르겠는 복잡한 세상을 저렇게 단순한 수식과 함수로 표현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졸업은 해야할 터. 짜여진 경제학 테크트리에 맞춰서 꾸역꾸역 공부했고 마침내 학사모를 하늘에 집어 던질 수 있었다. 졸업장을 받아들면서 다시는 경제학 교과서를 펼쳐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졸업을 한 지 5년이 지난 지금, 전혀 무관해 보이는 책 한 권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책장에 고스란히 꼽혀있던 경제학 교과서를 다시 펼쳐보게 되었다.
나에게 경제학 교과서를 펼쳐들게 만든 장본인은 바로 영국의 역사학자이자 런던대학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중인 올랜도 파이지스의 대작 <유러피언>이라는 책이다. 이 책은 유럽 역사의 격변기에 살았던 러시아 소설가 이반 투르게네프, 가수이자 작곡가인 폴린 비아르도, 언론인 겸 저술가인 루이 비아르도 이렇게 세 명의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유럽사를 다룬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은 유럽의 역사를 개개인의 관점에서 미시적으로 뜯어 해체하다가도, 어느새 흩어져있던 이야기의 파편들을 다시 거시적으로 통합하는 과정으로 역동적인 역사의 흐름을 조망한다.
그렇다보니 이 책은 문화, 예술, 역사, 경제, 경영 등 모든 분야를 통섭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모든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앞서 말했듯 나는 4년동안 원치 않았던 학문을 피터지게 공부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와 무관한 밥벌이를 하고 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처지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꽤나 허무한 대학시절을 보냈다는 생각에 우울해진다.
하지만 이 책을 제대로 읽으면 대학교 전공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대학교 4년간의 시간과 노력들이 절대 헛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다. 사실 알고보면 우리가 대학에서 배운 것들은 학문 그 이상의 것들이다. 우리는 대학에서 전공공부를 하면서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 세상을 바라보는 특유의 관점을 길러왔다. 다시말해 같은 현상을 바라보더라도 심리학을 전공한 사람은 심리학적 관점에서 이를 이해하고,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은 경제학적 관점에서 이를 조망한다. 각자의 전공에 따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처럼 세상을 이해하는 자신만의 관점을 가진다는 것은 개인의 기준과 철학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도 각각의 구성원들이 다양성을 갖출수록 세상이 더욱 풍성해진다는 맥락에서 이는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일까? 유럽사 전체를 종단으로 다루면서 정치, 사회, 문화, 예술, 경제 등 모든 부분들을 횡단으로 쪼개고 통합하고 있는 <유러피언>이라는 책을 읽고나서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해보면 참 재밌다. 같은 텍스트를 읽었음에도 서로 다른 관점에서 이 책을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주로 경제학적 관점으로 이 책을 이해하고 해석했다. 본 글에서는 내가 4년동안 배운 경제학 이론들이 이와는 전혀 무관해보이는 유럽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유러피언>이라는 책에서 어떻게 정보를 이해하고 가공하는 필터로 작용하고 있는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내가 대학교를 다니던 2009년 당시에는 이제 막 분과에 배치받은 모든 1~2학년 경제학도들의 바이블로 불리우던 교과서가 있었다. 바로 서울대학교 이준구 교수님의 <경제학 원론>과 <미시경제이론>이라는 책이다.
경제학의 연구는 이 두 가지 관점 중 어떤 것을 택하느냐에 따라 미시경제 이론과 거시경제 이론으로 구분할 수 있다. 미시경제 이론은 국민경제를 구성하는 개별 경제주체의 선택과 개별 시장의 움직임에 관심의 초점을 맞춘다. 따라서 개별적인 상품과 생산요소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어떻게 결정되며, 이것들의 가격과 거래량이 어떤 수준에서 결정되는지가 주요한 관심사가 된다. 이에 비해 거시경제 이론은 경제 전반의 움직임에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총 생산량, 총 고용량, 물가수준, 국제수지 등 경제 전반에 관한 지표가 주요한 논의 대상이 된다.
- <경제학 원론 제 5판>, 이준구, p36 -
이 책에서는 '시장경제'라는 개념을 다음과 같이 우리의 삶의 전반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으로 친숙하고 간단하게 설명하고 있다. 쉽게 말해, 제품과 서비스를 공급하는 공급자와 이를 구매하는 소비자들이 시장에서 만나 이루어지는 모든 거래활동이 시장경제 그 자체인 것이다.
우리의 거의 모든 경제생활은 시장이라는 무대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일터에 나가 돈을 벌고, 그렇게 번 돈으로 필요한 물건들을 사는 행위들이 모두 시장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시장이 모든 경제활동의 중심이 되는 시장경제 안에서 살고 있다.
- <경제학 원론 제 5판>, 이준구, p20 -
'시장이론'은 경제학 연구론 중 '미시경제학'이라는 분야에서 주로 다루는 내용이다. 그리고 '미시경제학'의 기초는 '수요-공급이론'에서 출발한다. 아마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수요와 공급에 대한 개념은 어렴풋이나마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조금 자세히 살펴보자면, 미시경제학에서는 수요와 공급이론을 아래와 같은 단순한 함수로 표현한다.
1. 수요함수
Qd = f(P ; Pr, M, N, T, Pe)
*P 가격 / Pr 연관재 가격 / M 소득 / N 소비자수 / T 취향(선호) / Pe 가격의 예측수준
2. 공급함수
Qs = f(P ; w, H, C, E, Pe)
* P 가격 / w 임금 / H 생산기술 / C 공급자의 수 / E 미래에 대한 기대 / Pe 가격의 예측수준
3. 그 외 경제 외적요소: 법 / 마케팅 / 기술발전
경제학에서는 특정 결과와 원인값이 되는 변수들 간의 상관관계를 함수로 표현하고 이를 수식으로 나타내어 그래프화하는 작업들을 '모형'이라고 칭한다. 다시말해 복잡한 현상을 단순화시키기 위한 도구가 모형이 되는 셈이다. 따라서 위에서 서술한 외계어 같이 보이는 함수들은 사실 알고보면 단순한 스토리 텔링의 함축이다.
1) 수요함수
먼저 '수요곡선'은 재화의 가격과 수요량이 상호간 음의 상관관계를 지닌다는 뜻이다. 실제로도 일반적으로 어떤 제품의 가격이 비쌀수록 구매를 덜 하지 않는가?
가격 외에도 연관재 가격, 소득, 소비자의 수, 취향, 예측은 특정 가격대에서의 수요량 자체를 변화시키는 변수들로 작용한다.
2) 공급함수
마찬가지로 '공급곡선'은 제품의 가격과 공급량 사이에 양의 상관관계를 지닌다는 의미다. 예를들어 만약 당신이 기업이라면 생산해낸 재화의 생산비용이 높을 수록 가격을 높게 책정할 것이고, 가격이 비쌀수록 더 많이 판매하고자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 외에도 임금, 생산기술, 공급자의 수, 미래에 대한 기대, 가격변동에 대한 예측값들은 특정 가격대에서의 공급량 자체를 변화시키는 변수들이다.
3) 그 외 경제 외적 요소
뿐만 아니라 경제 외적으로 '법'이나 '마케팅', '기술혁신'은 수요와 공급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외적 변수에 속한다.
이렇게 서로 팽팽하게 상반된 입장에 서있는 수요와 공급의 힘이 서로 맞물리고 충돌면서 적정한 가격대가 타협적으로 형성된다. 그리고 이 균형가격에 일치하는 균형 거래량이 결정된다.
앞서 소개한 경제학적 툴을 이해한 상태로 <유러피언>의 텍스트를 읽으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자,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하나하나 파헤쳐보자.
<유러피언>의 내용 중에서는 유럽의 출판시장이 어떻게 확장되고 발전했는지를 상세히 다루는 부분이 나오는데 이 부분은 경제학적으로 함의하는 바가 매우 크다.
먼저 출판시장이 발전하기 이전 단계인 19세기 초에는 인쇄공정 기술의 채산성이 낮은 단계에 머물렀다. 따라서 공급자 관점에서 책의 생산비용은 굉장히 높을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공급자들은 높은 가격을 책정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아직까지 도서시장의 수요와 관심도는 미미한 수준이었다. 그렇다보니 출판사들은 수요와 공급의 균형 수준을 넘어서는 규모로 책을 생산할 경우 악성 과다재고를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출판업자들이 이러한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과감한 투자와 판촉을 집행할 수 없었을 것은 분명하다.
19세기 초에 도서 제작은 여전히 수공업 상태였다. 수요 생산 공정 -종이 만들기, 식자, 조판, 잉크와 제본-은 모두 손으로 이루어졌다. 하드 커버 책자는 아주 비쌌다. 영국의 장편소설은 주로 3권으로 발간되었다. 이것은 도서관이 각 권을 따로따로 대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각 권은 가격이 5~6실링이었다. 숙련 노동자의 주급이 20실링(1파운드) 정도였으므로, 소설을 산다는 것은 사치였다. 이처럼 시장 규모가 작았기 때문에 출판사들은 리스크를 극단적으로 피하려 했다. 그들은 소규모 기업이었다. 자본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한 책에 대하여 장기적으로 투자할 수가 없었다.
- <유러피언>, 올랜도 파이지스, p115 -
뿐만 아니라 당시의 도서시장이 위축되어 있었던 이유에는 경제 외적 요소도 한 몫 했다. 당시에는 저작권 법의 기틀이 제대로 잡혀있지 않았기 때문에 불법 해적판이 암시장에서 거래되었다. 아무리 좋은 책을 저술하고 출판업자들이 이를 출간하더라도 소유자의 저작권이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면 양질의 상품이 시장에 지속적으로 나올 수가 없는 구조다. 이처럼 경제외적 요소도 시장경제 체제 내에서 수요와 공급원리가 원활히 돌아가게끔 하는데 있어서 굉장히 중요하다.
또 저작권 법이 보호가 없으면 투자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성공작의 해적 출판은 그들의 수익을 사정없이 깎아 먹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출판사는 수익을 올려 재빨리 자본을 회수할 목적으로 한정된 부수만 출판했고, 반응이 좋은 책만 재판했다.
- <유러피언>, 올랜도 파이지스, p115 -
하지만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수요와 공급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경제적 변수들과 외적 환경 변화요소들이 맞물려 돌아가며 유럽의 도서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1. 인쇄기술 혁신의 공급확대
앞서 살펴본 수요 공급 이론에서 기술혁신은 공급 함수에 매우 중요한 변수임을 이야기했다. 기술혁신을 통해서 공급자의 생산효율성이 높아지면 같은 투입량으로도 보다 많은, 양질의 상품을 산출할 수 있기 때문에 생산비용이 낮아진다. 이로 인해 소비자들은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제품을 구매할 수 있게 되고, 공급량은 늘어나게 된다.
19세기 유럽에서는 인쇄기법에서의 혁신적인 기술발전이 일어났다. 먼저 증기를 활용한 인쇄기의 등장으로 공급자들은 보다 빠른 시간동안에 저렴한 원가로 책을 대량생산 할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기존에 가죽 양장본으로 책을 생산하던 방식에서 보다 저렴한 원재료인 종이와 천을 활용하여 책을 엮어내는 출판기술의 발전도공급 증대에 큰 역할을 했다. 결론적으로 기술의 발전은 공급자들의 생산단가를 대폭 낮췄다. 이는 곧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제품을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는 기회의 확대를 의미했다.
새로운 기술도 출판 비용을 더욱 낮추게 했다. 종이 제작도 점점 기계화되어 19세기 초창기의 몇십 년동안에 비하여 그 비용이 크게 절감되었다. 손으로 하던 가죽 장정은 이제 기계로 하는 천 장정으로 바뀌었다. 증기를 사용하는 인쇄기 덕분에 대규모 인쇄가 가능해졌다. 기계식 인쇄의 획기적 돌파구는 1843년에 발명된 회전식 원통형 인쇄기(윤전기의 원형)였다. 이 인쇄기는 곡선형 연판(조판을 지형으로 뜨고 거기에 인쇄 합금을 부어서 만든, 보통 한 페이지 분량의 인쇄용 판)을 잉크를 바른 인쇄판 위에서 앞뒤로 움직이게 하는 기계였다. 지형에서 만든 연판은 이동식 식자판보다 내굿어이 강했고, 보통 수천 번 찍은 다음에 다시 판을 만들었다. 연판은 잘 보관해 두었다가 재판 때 다시 사용할 수 있었으므로, 출판사는 초판에 대한 독자의 반응이 좋을 경우에 다시 조판할 필요 없이 이 연판을 꺼내어 곧바로 인쇄에 돌입할 수 있었다.
- <유러피언>, 올랜도 파이지스, p117 -
영국, 프랑스, 독일의 출판사들은 출판 단가를 낮추기 위해 새로운 기술을 활용하고 또 발행 부수를 늘림으로써 다수의 독자가 구매할 수 있는 염가본을 발행한다는 상업 전략을 수립했다. 1828년부터1853에 영국의 도서 단가는 평균 40%나 떨어졌다.
- <유러피언>, 올랜도 파이지스, p115 -
그러나 가장 많이 떨어진 것은 대규모 독자 시장을 잡기 위해 대폭 할인된 소설의 가격이었다. 가죽 장정에 3권으로 발행되던 장편소설은 한 권짜리 종이 장정이나 천 장정으로 바꾸어 생산 단가를 낮춤으로써 더욱 판매하기가 수월해졌다.
- <유러피언>, 올랜도 파이지스, p116 -
2. 가스등 기술혁신의 수요확대
뿐만 아니라, 가스등이 보급되면서 소비자들의 라이프 스타일은 완전히 바뀌었다. 이전에는 해가 떨어지면 잠을 자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을 것이다. 허나 이제 어두컴컴한 밤이 되어도 가스등 하나만 밝혀 놓으면 그 시간에 어떤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늘어난 여가시간을 소비할 수 있는 무언가가 그들에게 필요했고 책을 읽는 행위는 늘어난 여가시간을 메워줄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이면서도 즐거운 활동이었다. 그런 차원에서 특이하게도 가스등이라는 기술혁신은 수요 차원에서 시장을 확대시킨 주요 요인 중 하나였다.
가스등의 도입은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와서 이제 밤에도 책을 읽거나 피아노를 칠 수가 있었다. 이러한 가정오락은 양갓집의 중요한 여가활동이 되었다.
- <유러피언>, 올랜도 파이지스, p116 -
3. 교육 수준 발전, 소득증가로 인한 수요확대
또한 교육수준의 발전도 도서시장 확대에 큰 기여를 했다. 문자를 독해할 수 있는 인구 비중이 늘어나면서 책에 대한 수요가 점차 꿈틀대며 높아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당시 개인 경제주체들의 평균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소비가 증대된 것도 큰 몫을 했다. (실제로 소비자이론에서 소비함수는 소득과 양의 상관관계를 지님)
도서 출판업의 혁명은 일련의 사태 발전에 의해 촉진된 것이었다. 염가본에 대한 대중의 수요가 크게 늘어난 것은 19세기 중반 문자 해독률이 꾸준히 상승한 결과였다. 프랑스의 경우 성인 독자 수는 1830년대에 21%가 증가했고, 그 다음 10년 동안에는 18%, 그리고 1850년대에 들어와서는 또다시 21%가 증가했다. 전보다 더 많은 사람이 책을 쓸 여윳돈을 갖게 되었다. 연간 2백 파운드 (5천 프랑)의 수입이 있는 영국 중산층 가정은 해마다 도서와 음악에 1파운드 혹은 2파운드를 쓸 수 있었다. 여가 시간도 늘어났다.
- <유러피언>, 올랜도 파이지스, p116 -
4. 철도의 보급으로 인한 수요 공급확대
19세기 유럽에서는 인류의 물리적 도달범위를 혁신적으로 높이는데 기여한 교통기술의 발전이 이루어진다. 바로 철도가 도입된 것이다. 철도기술은 유럽사를 넘어서 인류사 전체의 측면에서도 엄청난 혁신을 일으켰다. 여러가지 부문에 끼친 영향들 중 경제적 측면만 바라보자면 철도로 인해 교역을 할 수 있는 물리적 거리 자체가 엄청나게 확장되면서 시장의 규모 자체가 말도 안되게 넓어졌다. 그로 인해 유럽의 출판시장 수요, 공급은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이러한 사업 발전의 핵심 요인은 철도였다. 출판사들은 철도 덕분에 소도시나 시골 지역에도 들어갈 수 있게 뙤었다. (...) 철도의 도래와 함께 시골 소도시의 서점들도 많이 생겨났다. 1850년과 1870년대 사이에 프랑스의 서점 수는 두 배로 늘어나서 5천 곳 이상을 헤아리게 되었다. 대부분 파리 근처, 북동부 릴 근처, 남부 리옹 근처 등 철도가 잘 연결된 곳 중심으로 서점들이 생겨났다.
- <유러피언>, 올랜도 파이지스, p121 -
철도는 또한 값싼 소설에 대한 붐을 촉진시켰다. 기차를 타고 여행하는 사람들은 책의 주요 고객이었고, 특히 오락 책자를 많이 찾았다. 기차는 울퉁불퉁한 도로를 달려가야 하는 마차보다 한결 안정감이 있어서 승객들은 좀 더 편안하게 책을 읽을 수가 있었다. 독서는 장거리 여행의 지루함을 덜어주는 좋은 방법일 뿐만 아니라, 맞은 편에 앉은 승객과 시선을 마주치는 어색함도 모면하게 해주는 적절한 수단이었다. 단편 소설은 이런 여행객에게 딱 필요한 물건이었다. 19세기에 들어와 단편소설이 기차 여행과 함꼐 번성하게 되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 <유러피언>, 올랜도 파이지스, p122 -
5. 유통과정 전문화, 효율화를 통한 시장 확대
경제학에서는 주된 요소로 다루지 않지만 제품이 생산되어 소비자에게 도달하기 까지의 유통과정 혁신은 마찬가지로 시장의 수요와 공급을 확대시키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앞서 살펴본 이유들로 유럽의 도서시장이 확대되면서 이로 인한 파급효과로 출판업자들의 역할과 그 영향력은 이전과 매우 달라진다.
도서 출판업의 규모가 확대되면서 생산 과정도 점점 특화되었고, 출판사 사장도 인쇄업자와 서점주 옆에서 새로운 영향력 있는 인물로 등장했다. 사실 전에는 인쇄업자와 서점 주인이 출판업을 주멀러왔다. 출판사 사장은 이제 저자와 일반 대중 사이에서 중요한 중개인 역할을 했다 그는 원고를 사들이고, 편집하고, 서점 주인에게 배본하고, 경쟁 출판사보다 우위에 서기 위해 도서의 마케팅 기법을 개발하는 등의 일을 맡았다. 인쇄소 사장은 장인이고 서점주는 상인이지만, 출판인은 전문 기업인 대접을 받았다.
- <유러피언>, 올랜도 파이지스, p118 -
뿐만 아니라 출판업의 확대는 새로운 고용을 창출한다. 유통단계가 세밀화되면서 도매상, 판촉사원 등의 유통관련 직종이 창발적으로 늘어났으며 관련 종사자들의 전문성이 높아지면서 유통의 효율성도 매우 높아졌다. 이러한 현상 자체는 또 다시 양의 피드백 효과로서 출판시장의 수요와 공급을 역으로 확대시키는데 기여한다.
샤를 팡티에는 오늘날 출판사들이 사용하는 여러 기본 전략을 개발한 선구적 출판인이었다. 그는 대리인들을 고용하여 서점에 책을 사전 판매했고, 도매상을 중개인으로 활용했으며, 서점이 진열장이나 매대의 잘 보이는 곳에 그의 책들을 전시하는 조건으로 , 추가 할인된 책을 서점에 대규모로 팔았다. 그는 우편이나 전신 주문으로 책을 판매하는 현대적 기법(일종의 19세기 판 아마존)을 완성한 최초의 출판인이었다. 그는 이 주문에 부응하기 위하여 파리의 기차역 근처에 마련한 창고에 대량의 책을 갖추어 놓고 있었다.
- <유러피언>, 올랜도 파이지스, p121 -
출판사들은 철도를 통하여 시골 지역의 고객들과 직접 연결되었다. 그들은 판매 대리인을 도서 샘플과 함께 시골 서점들에 파견하여 책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켰다.
- <유러피언>, 올랜도 파이지스, p121 -
6. 마케팅 기법의 발전을 통한 시장확대
특정 시장의 규모와 수요 공급 시스템이 어느 정도 성숙해지면, 마케팅이 중요해진다. 수요가 확대되면서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시장에 진입하는 공급자들이 많아지면 다른 공급자들과의 차별적 요소를 통해 수요자의 구매심리를 자극하기 위한 경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19세기 유럽의 도서시장도 마찬가지였다. 이때부터 "그 시대에 이런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놀라울 정도로 창의적인 마케팅이 성행한다.
이런 출판인들이 성공하게 된 것은 창의적인 마케팅 기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기법은 '문고판'이었다. 이것은 작은 판형의 염가본 시리즈인데, 균일하게 종이 혹은 천 커버를 사용하고, 같은 가격에 친숙한 브랜드 마크를 사용하여 독자들이 쉽게 책을 알아보게 하여 교양 있는 집안의 수집품으로 갖추어 놓게 하는 것이었다.
- <유러피언>, 올랜도 파이지스, p119 -
대규모 시장의 경제 논리에 따라 이들 문고판은 검증된 인기를 가진 책들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레비는 그 사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대중의 주된 관심은 가격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성공작만 출판하기로 했다. 그래야 더 많이 팔아서 단가를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런 상업적 목적을 가진 카논은 클래식만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의 작품들, '모던 클래식' 혹은 지속적 인기를 얻는 작품들도 문고본의 일원으로 집어넣었다. 출판인들은 그런 작품들이 시간의 검증을 견뎌내고 '문학사에 등재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 <유러피언>, 올랜도 파이지스, p120 -
다른 효과적인 마케팅 기법으로는 카탈로그, 광고 포스터, 정기간헹물의 광고 등이 있었다. 어떤 출판인들은 신문에 호평해준 논평이나 기사에 대해 사례했다. 또 한두 출판사가 책 속에 복권을 선물로 집어 넣기도 했다.
- <유러피언>, 올랜도 파이지스, p120 -
결과
위에서 언급한 여러가지 요인들이 서로 맞물리는 과정에서 유럽의 도서시장은 그 규모가 엄청나게 확대되었다.
도서출판의 붐은 놀라운 것이었다. 너무 많은 책이 나오는 바람에 몇몇 관계자는 시장이 포화 상태가 되는 것을 우려했다. 한 작가는 어떤 한 해에 프랑스에서 나온 책들을 다 이어 붙이면 지구를 한 바퀴 돌거라고 말했다. <비블리오그라피 드 라 프랑스>에 등록된 새로 나온 책의 숫자는 1840년대와 1860년대 사이에 81%나 증가했다. 영국에서도 신규 도서의 숫자가 2.5배나 늘어났고, 독일에서는 4배나 늘어났다. 이 세 나라에서 각 도서의 발행 부수는 크게 늘어났다.
- <유러피언>, 올랜도 파이지스, p117 -
이처럼 경제학도의 시각에서 경제학이라는 안경을 끼고 <유러피언>을 읽으면 역동적으로 변모하는 유럽 19세기의 산업발전과 시장경제 논리들이 보인다. 그런 차원에서 '무엇을 공부하느냐'는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규정한다.
<유러피언>을 읽으며 4년 동안 전공으로 배웠던 경제학이라는 학문의 틀이 내가 세상을 이해하는 프레임과 관점을 길러줬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4년이라는 짧지만 길었던 대학생활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는 경제/금융업에 종사하지 않을거면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것이라고 여겼던 수식과 함수들이 현재 내가 세상을 '경제학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제공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그렇다면 다른 전공자들은 <유러피언>을 보면서 무엇을 느끼고 생각할까?"가 궁금해졌다. 같은 책을 보면서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다양한 많은 사람들의 프레임이 알고 싶어졌다.
"당신은 어떤 공부를 해왔으며, 그로 인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는가?"
기회가 된다면 여러분들과 <유러피언>이라는 책을 통해 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