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소 Jan 27. 2022

영화 터미널 후기

이토록 바보같고 지혜로운 사람이 있을까

영화 터미널 이미지 발췌
영화 터미널

개봉 : 2004.08.27

등급 : 전체 관람가

장르 : 코미디, 멜로/로맨스, 드라마

국가 : 미국

러닝타임 :128분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 주연 : 톰 행크스


소개

동유럽 작은 나라 ‘크로코지아’의 평범한 남자 빅터 나보스키(톰 행크스). 뉴욕 입성의 부푼 마음을 안고 JFK 공항에 도착한다. 그러나 입국 심사대를 빠져 나가기도 전에 들려온 청천벽력 같은 소식! 바로 그가 미국으로 날아오는 동안 고국에선 쿠데타가 일어나고, 일시적으로 ‘유령국가’가 되었다는 것. 고국으로 돌아갈 수도, 뉴욕에 들어갈 수도 없게 된 빅터. 아무리 둘러봐도 그가 잠시(?) 머물 곳은 JFK 공항 밖에 없다. 하지만, 공항 관리국의 프랭크에게 공항에 여장을 푼 빅터는 미관(?)을 해치는 골칫거리일 뿐. 지능적인 방법으로 밀어내기를 시도하는 프랭크에 굴하지 않고, 바보스러울 만큼 순박한 행동으로 뻗치기를 거듭하는 빅터. 이제 친구도 생기고 아름다운 승무원 아멜리아(캐서린 제타 존스)와 로맨스까지 키워나간다. 날이 갈수록 JFK공항은 그의 커다란 저택처럼 편안하기까지 한데…. 그러나 빅터는 떠나야 한다. 공항에선 모두들 그러하듯이. 과연 그는 떠날 수 있을까?

- 네이버 영화 소개 발췌


※내용에 영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러시아에서 온 빅터 나보스키는 작은 땅콩버터 캔을 소중히 들고 뉴욕에 도착한다. 그런데 비행기를 타고 있던 도중 갑자기 자신의 고국인 크로코지아에서 전쟁이 터지고 빅터는 순식간에 국적이 없는 사람이 되고만다.

비자를 받을 수도, 다시 고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빅터.

공항 관리자인 프랭크는 영어를 못 알아듣는 빅터에게 끊임없이 영어로 설명하며 무책임하게 행동한다. 

못 알아듣는 영어로 붙잡아두어도 화 한번 내지않고 자신의 고국 이름이 나오니 신이나서 몇번을 따라 말하며 활짝 웃는 빅터

그런 빅터에게 귀찮아하는 표정이 가득한 채, 프랭크는 호출기와 몇장의 식권만 던져주며 공항 안에서만 머무를 수 있다고 말한다. 상황을 모르는 빅터는 어리둥절해 있는데 공항 안 티비 안에서 크로코지아의 소식을 접하게된다. 너무 놀라 이리저리 방황하머 눈물이 그렁그렁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도와주는 이는 한명도 없다. 모두 원리 원칙에 의해 행동할 뿐이다.

 

몇 장의 식권을 받았지만 그것도 다른 이를 도와주려다 바람에 흩날려 공항 청소부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고 만다. (도와주다 가방을 망가뜨려 오히려 어벙한 걸음걸이로 도망치게 된다.)

식권을 찾으려고 했지만 공항 청소원은 오히려 자신과 예약을 했는지 물어보며 화요일에 오라고 하지만 화요일만 손꼽아 기다려 찾아가도 딴 소리만 할 뿐이다.("I HATE TUESDAY!) 빅터는 그래도 화내지 않는다. 

울지 않는다.

 

공항 구석 창고 의자를 간이침대로 만들어 자고 공항 카트를 반납하면 25센트가 나온다는 걸 알고 이리저리 몰고 다니며 겨우겨우 햄버거 하나를 먹는다. 그래도 우리의 빅터는  찡그리거나 울지 않는다.

상황에 공감하는 순간이 두 가지가 있다. 상황 속 주인공이 너무 슬퍼해서 나까지 엉엉 울게 되거나, 너무도 열악한 상황에 놓여있지만 감정을 내비치지 않고 무던히 헤쳐나가는 것을 보면 마음이 절절 끓게 되는, 그런 순간들.

빅터는 어느 순간에도 울지 않고 좌절하지 않는다. 어벙벙한 표정으로 기다릴 뿐이다. 배가 너무 고파도 누구에게 동냥을 하거나, 쓰레기통을 뒤져 기한이 지난 음식을 먹지 않는다. 공항에 남아있는 음식도 내 것이 아니기에 건드리지 않고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쳐다볼 뿐이다.


공항에서 우연히 발견한 카트 반납으로 열심히 노동해서 끼니를 해결하고, 공항 관리자가 카트 관리원을 새로 뽑아 이제 25센트를 벌지 못하더라도 그저 또 다른 기회를 기다린다. 남은 돈으로 여행 책을 사전 삼아 러시어말과 영어를 대조하며 공부하면서 점차 영어를 습득하게 된다. 공항 청소원과 직원들과도 친분이 쌓여 공항 안 조용한 곳에서의 저녁 초대를 받기도 한다. 빅터를 보고 있으면 공항 노숙자가 아닌 경유를 기다리고 있는 멀끔한 남성으로 보인다. 항상 청결을 유지하고 작은 미소를 띠고 있다. 자기를 내쫓으려는 관리자에게도 오히려 화해의 손길을 청하는 그를 보자니 자꾸만 가슴이 저릿하고 눈물이 떨어졌다. 너무도 맑고 순수한 그의 모습이 자꾸만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다.


그는 기다림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었다. 공항 승무원인 아멜리아와의 40달러짜리 저녁을 먹기 위해 공항 안 가게에 취업하려고 노력했지만 주소도, 여권도, 전화번호도 없는 그를 모두 무시한다. 디스커버리 매장에서는 전화번호가 없으니 안된다는 말에 공항 안 공중전화의 번호를 불러주고 하루종일 그 앞에서 전화를 기다린다. 디스커버리 매장 바로 앞에있는 전화부스인데도 말이다. 다른 일을 하다 다시 매장 안으로 들어가 내가 채용됐는지 물어보면 될것을, 하루종일 조용히 앉아 기다린다. 화장실이 급해 자꾸만 화장실 표지판을 보게되더라도 절대 재촉하지 않고 기다린다.

가게가 모두 문을 닫을 시간에 결국 직원이 전화를 해 다른 사람을 뽑았으니 가게 앞에 앉아있지 말라는 말에 화장실을 가야했는데 고맙다고 말한다. 

자신에게 거절의 의사를 표현한 사람에게 고맙다니.

하루종일 내 시간을 빼앗아 간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다니.

나에게 가능한 일일까. 


사람이 너무 착하면 보고만 있어도 눈물이 날 수 있다는게 빅터를 보고 하는 소리 같았다. 공항 청소부가 빅터를 스파이로 몰고 포커게임에 껴줄 수 없다며 공항 캐리어를 촬영하는 엑스레이에 누워보라고 해도 작은 미소를 띤채 응한다. 작은 땅콩버터 캔을 소중히 안은 채 엑스레이에 누워 두눈을 꿈뻑이며 통과한다. 그 이후 빅터와 직원들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여운이 너무나도 긴 영화였다. 그런 그가 너무 착해서 짜증나고 답답하고 불쌍하고 존경스러웠다. 하지만 빅터는 내가 불쌍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섬세했고, 두려움이 없었으며 자신의 신념에 부끄러울 만한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어려운 상황에서 오히려 자신보다 어려운 이를 도와주는 강한 용기를 지닌 자였다. 사랑에 빠진 아멜리아를 위해 빅터는 일을 하고 싶었지만 아무도 채용해주지 않아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시작한다. 지저분한 벽이 보여 공항에 남아있는 짜투리를 사용하여 근사한 벽으로 재 탄생시킨것이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그저 즐거운 놀이로 했는데 그게 기회가 되어 건설팀에 채용된다. 한시간에 19달러나 하는 굉장한 직업을 가지게 된다. 

자신의 마음을 조심스레 표현한 빅터에게 아멜리아는 자신은 매일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한다. 빅터와 아멜리아 사이의 '기다림'이라는 단어는 같지만 다르다. 불륜 관계인 유부남이 자신에게 절대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끝없는 기다림을 반복하며 자신을 망가뜨린다. 소중한 선물을 준 빅터에게 자신의 완전한 사랑을 내어놓지 못한다. 정말 불쌍한 이는 빅터가 아닌 아멜리아 같다. 아마 그 순수한 사랑에 자신이 답하기에는 너무 작은 사람이라고 꺠달은 것 같기도 하다. 


결국 크로코지아의 전쟁이 끝이 났다. 드디어 집에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빅터는 뉴욕에 온 이유가 있었다. 아직 집에 돌아갈 수 없는 너무 큰 이유가 있었다. 땅콩버터 캔에 있는 '재즈'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평생토록 간직해온 재즈 명인들의 사인 중 마지막 남은 한 사람의 사인을 받기기위해 뉴욕에 온 것이었다. (하필 또 땅콩캔에 담아올게 뭐람. 예쁘고 휘황찬란한 상자들도 많은데 말이야.) 그 작은 캔을 빅터는 한시도 떨어뜨려놓지 않고 아버지를 생각하고 그리워한다. 그 와중에 프랭크는 결국 최고 총괄 자리로 올라가게 되고 빅터를 절대 뉴욕 거리에 한발자국도 허락하지 못한다고 엄포를 놓으며 만약 뉴욕으로 나가게되면 빅터의 소중한 친구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버린다고 말한다. 

빅터는 그 즉시 아버지의 소원을 포기한다. 친구들을 위해, 친구들의 가족들을 위해. 이유를 모르는 직원들은 빅터를 겁쟁이라며 화를 내지만 그는 아무 말 없이 자신의 고국으로 발길을 옮긴다. 하지만 우연히 사건의 내막을 들은 동료들이 그의 비행기를 연착시키고 뉴욕으로 한걸음 내딛을 수 있게 희망과 용기를 준다. 원리원칙을 지키던 사람들도 그의 순수함과 따듯함에 백기를 든다.

그는 결국 아버지의 사인을 받기 위해 재즈 바로 향하고 남은 한명의 사인을 요청한다.


그런데, 여기서 그는 또 다시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온다.(깊은 한숨)

인생은 마치 기다림의 연속이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빅터는 여기서 화를 냈을까? 아니면 내가 이 자리로 오기까지 얼마나 걸린줄 아냐며, 연주 전에 사인을 먼저 해달라고 애원을 했을까.

빅터는 그저 조용히 자리에 앉아 기다린다. 눈물을 가득 머금고, 아버지를 떠올리며 묵묵히 기다린다. 이번 기다림에는 재즈가 더해졌다. 몸을 자유로이 감싸는 부드럽고 간지러운 색소폰 소리에 이번 기다림은 금방 지나가는 것만 같다. 우리의 인생은 기다림이지만, 그 기다림 속에서 많은 추억과 사랑이 함께 한다. 이런 작은 순간들로 인해 인생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놓아야 할 것을 놓지 못해 괴로워하거나, 모든 것을 의미없이 그저 흘려보내는 기다림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음악이 흐르는 순간들도 있어야 인생이 그나마 덜 지루하지 않을까.


빅터는 마지막 사인을 받아들고 택시를 탄다.

"I'm going to home." 

반짝이는 눈동자 속 뉴욕 거리를 가득 담은 빅터는 또 다른 기다림을 향해 나아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넷플릭스] 겨우, 서른 (7)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