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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May 29. 2024

낯선 하루 (2-1)

[초단편소설]

꼬이는 게 전부인 날이 있다.


'잘 지내.'


윤서는 새벽에 받은 톡을 다시 확인했다. 그럴 거라는 건 예감했지만 새벽은 너무한 거 아닌가.


그렇게 갈 길이 바빠도 그녀가 그렇게 좋아한다고 매번 얘기하던 새벽에 그 두 단어를 보내다니 윤서의 마음을 밟겠다는 의도를 읽었다. 단 두 글자로도 찢어지는 통증은 심장에 닿기도 전에 갈비뼈를 부러뜨릴 것 같이 힘이 셌다.


아픈 하루의 시작이다. 낯설게 시작한 날에는 너무 새로운 걸 도전하다가 엉덩방아를 찧는다. 좋아한다 사랑한다 쌓인 고백들이 하얗게 날아가 버리고 떠나고 있는 뒤통수에 혼자 손을 흔든다.


결국 이렇게 윤서에게로 돌아온 자신을 제대로 맞아줄 사람도 그녀 자신 뿐이라는 걸 안다. 어쩌면 이렇게 눈앞이 까만 날이 있을까. 어쩌다 노란 하늘이 진노랑이 되며 애써 참은 눈물을 터뜨리는 날이 있을까.


눈물이 구두코 위에 툭 떨어지며 마치 닦아주러 온 양 윤기를 넓적하게 퍼뜨렸지만 그 큰 앞부리를 깔끔하게 씻기기에는 역부족인 양이었다.




항상 그랬다. 윤서가 뭔가를 하려고 손을 내밀면 그녀가 하는 것은 하찮다는 듯 눈길도 안 주던 그였다. 손을 잡아도 시큰둥하고 팔을 끼워도 장승같고 백허그를 해도 무뚝뚝할 뿐이었다.


'대체 무엇이 모자란 걸까'


하얀 손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길고 가는 손가락에 잘 손질된 반짝이 실버 글리터 손톱이 윤서가 보아도 부드럽고 유혹적이다. 처음 만났던 그날 윤서의 손을 물끄러미 오래 바라보았던 그였다.


'네 손은 너무 퇴폐적이야.'


매혹적이라 해도 좋으련만 퇴폐적이라니 대체 이 부정성의 그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퇴폐는 대체 어디까지 부정적인 걸까. 


도덕적으로 문란할 때나 사용한다는 이 단어를 갑자기 흠뻑 뒤집어쓴 윤서는 괜한 억울함에 그를 노려보았지만 말을 뱉고 난 그는 읽던 책으로 눈을 가져가더니 다시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 후 2년 동안 꾸준히 들어왔던 퇴폐적이라는 말, 길게 다듬어진 손톱 때문도 아니었다. 가느다랗게 거미 같은 뽀얀 손가락 때문도 아니었다. 을 놓은 듯 윤서의 손을 바라볼 때마다 그는 인상을 찌푸리곤 했다.


'대체 뭐냐고!'


윤서의 손으로부터 그의 시선이 흔들흔들 멀어지고 있었다. 왜 그런지 꽤 오래 알지 못했다. 그가 두려움을 흘리는 순간들을 마주할 때마다, 반대 방향을 보며 제 갈 길을 준비하는 사람들처럼 서늘한 공기가 그 사이를 무겁게 채우고 있었다.




그날, 반드시 그 아이스크림이어야 해서 외진 숲 어느 한 병원 로비까지 기어들어간 것이었다. 숲 길을 따라 드라이빙하는 길은 아이스크림으로 가는 길을 흥분과 상상으로 달구며 윤서의 머리와 가슴을 채웠다.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마주친 그는 윤서를 괴상한 외계인 보듯 당황하고 있었다. 그래, 첫 만남부터 당황으로 시작한 것이었다. 하필이면 스푼을 떨어뜨릴게 뭐야!


스푼을 다시 달라고 하기 싫어서 왼손 검지로 아이스크림을 떠먹으며 그 차가운 달콤함에 아, 고개를 뒤로 젖혔다. 탄식하며 입안에 녹아드는 차가움을 따라 침샘의 폭발적인 활동을 재촉하는 그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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