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캡슐 같은 차 안에서 빙빙 돌며 일터에 갔다가 집으로 옵니다. 일터와 집 사이에 다른 세상이 있습니다. 오늘은 일터로 가다가 샛길로 빠져 세상을 헤집어 봅니다.
오른쪽으로 커다란 집게발처럼 벌어진 꽤 뾰족한 첨탑 모양의 건물을 지납니다. 외계의 신호를 받아 두 집게발에 불이 붙으면 어느새 뒷덜미가 잡혀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겠어요. 차라리 편하게 여러 과정 생략하고 휘릭 휘발돼도 좋겠어요.
왼쪽에는 촘촘한 작은 창문이 다닥다닥 붙은 건물 안에서 기다리는 벌의 무게를 재는 생명들이 저 작은 창틀에 팔꿈치를 대고 기대어 불안하게 눈을 굴리며 눈치를 보고 있습니다.
법정의 망치 세 번에 누구는 20년을 살고 누구는 10년을 삽니다. 2달 영아를 던진 아비는 4년을 받고 추잡한 폭행범은 초범이라는 이유로 집행유예가 되고 말아요.
눈 딱 감고 지나쳐 뒤집어진 속을 정리합니다. 아름다운 한강을 건널 때쯤이면 마음이 여유로워지면서 숲 위로 펼쳐진 하늘을 안습니다.
빽빽한 자동차 매연과 잔 안개들이 서로를 가득 진하게 안고서 회색의 몸으로 뒤엉킵니다. 거기로 거기로 제가 들어가고 있어요. 눈물을 흘리며 매캐하게 세상을 쭉쭉 짜내어 마시고 있습니다,
이게 살아가는 하루가 되고
저편 죽어가는 생명이 돼요.
저의 작은 공간에서 뛰어나와야 세상을 겪으며 글을 토하고 마음도 토하고 정신을 챙기지만 그만큼 줄어가는 생명은 자업자득으로 이해합니다.
잔디를 툭툭 치며 걷다가 마주친 막다른 길에 먼지 풀풀 공사장이 헤집어 배를 열고 회색 수혈을 합니다. 옆에 서서 배를 잡고 회색과 제 붉은 피의 관계를 재보기도 합니다, 그 붉은 피를 부어 만드는 하루가 시멘트를 부어 만든 건물과 다를게 무얼까.
굳어가며 세상 한 자리 차지하는 차가운 건물 귀퉁이에 혹여라도 제가 안주할 곳 있는지 뜨거운 피를 끓입니다.
세상은 좁아지고 삶은 부글거리고 저는 사라지는 이 시간을 가만히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압니다. 아무도 동정하지 않는 시한부로 멀어져 가는 광경은 혼자서만 짠한 드라마로 보고 또 보고 재방송을 녹화합니다.
오늘 뒤집어 모아둔 세상을 다시 봅니다.
툭 쳐서 털어낸 먼지들이 심장을 채우고 가만히 제 공간으로 숨어들어 한잠을 자고 나면 새벽의 기운으로 다시 태어나는 거예요.
네모난 작은 저의 세상으로 올라타 다시 기운을 내어 집게발 긴 건물을 오른쪽에 두고 촘촘한 창문 건물에서 퀴퀴한 생명 냄새를 맡으며 오늘 제가 담아야 할 회색 공기를 반기며 다시 일터로 갑니다.
오늘도 세상을 툭툭 쳐서 진액을 짜내고 거기에 저의 뜨거운 피를 섞어 황홀하게 하루를 지내겠어요.
긍정과 부정이, 모정과 부정이, 심정과 과정이 가득한 제 인생을 그저 뚜벅뚜벅 걷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