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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에 입힌 꿈

[책] 이중섭 평전, 2014 by 최열, 돌베개

by 희수공원 Jan 2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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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초판, 2022 초판 4쇄


1956년, 41세 이중섭의 죽음과 최열의 삶의 시작이 동전의 양면처럼 느껴졌다. 그 해 죽고 그 해 난 두 사람을 기억하겠다. 이중섭을 빠짐없이 알고 싶었던 사람, 거짓 이야기들을 들추어 진실을 바라보려 했던 그에게 사실의 기억들이 신비스럽게 스스로 날아와 앉더라는 실제 고증의 기록에 소스라친다. 진한 삶에 미치도록 집중한 사람, 최열.


이 책을 읽는 당신이 화가라면 왜 예술을 하는지 질문하는 기회가 되기를, 당신이 그림 애호가라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스스로 묻기를, 만약 당신이 화상畵商이라면 무엇을 위해 그림을 파는지 성찰하기 바란다. 당신이 '해맑은 독자'라면 책을 읽는 내내 그가 햇살 타고 당신의 집 앞마당에 나비처럼 환생하는 꿈을 꾸길 바란다. - p.7, 책을 펴내며    

... "소년은 쉽게 늙고 배움은 어렵다少年易老 學難成는 옛말이 이제 내 말이 되고 말았다. '이중섭 평전'을 마친 지금, 남은 생애를 어찌해야 할지도 모르는데. - p.947, 감사의 말




'소'위의 화가, 주로 '소'로 기억되는 그림쟁이, 쟁이라고 부르기엔 어릴 적 부르주아적 성장이 이점인지 허점인지 모를 그를 읽는다. 욕구를 실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그, 공부보다 그리기에 빠져 합리적 좌절을 겪지만, 공부에 더 신경 썼더라면 그토록 원하던 프랑스로 갈 수도 있었던 그에게 연민을 느낀다. 


태어나 학교 다닐 때부터 사회적 관계와 그리기의 재능, 그 재능을 능가하는 집중력을 인정받으며 부유한 집안의 지지를 받으며 자랐다. 각종 대회에서 입상을 하며 입지를 굳혀가며, 시낭송, 노래 등 예술적 본능을 즐기며 다재다능한 학생이었다.


스무 살 이중섭이 일본 유학길에 오르기까지의 부유하고도 반항적이기까지 한 그를 읽으며 이미 알고 있는 그 이후의 퍼즐 같은 통증의 삶을 이어 붙여 상상하기 힘들었다. 대부분 그의 삶 말미의 비참한 시간들에 초점을 맞추어 그의 작품을 보곤 했었다.


예술가의 고뇌나 고독의 천만분의 일로도 나 같은 일반 사람이 감동하며 아파하며 평생을 살 수 있는 거구나 생각하며 이중섭의 삶으로 들어갔다.


유학 중 만난 야마모토 마사코, 이중섭은 그녀에게 이남덕이라는 한국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녀와의 사랑, 루오와 피카소를 근간으로 표현주의 화풍의 서양화가로 알려지던 중섭은 심상치 않은 1943년 일본 정세에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1945년 5월, 29살인 이중섭은 야마모토 마사코 집안의 지지로 그녀가 한국으로 건너오게 되어 결혼하게 되고 원산에서 조심스럽게 가족을 이루고 살려 노력한다. 첫째 아이를 가슴에 묻고, 아내와 그 이후 낳은 두 아들과 맞은 1950년 한국 전쟁의 상황은 점차 이중섭의 작품 생활에 많은 영향을 주게 된다.


궁핍한 피난 생활의 부산 제주를 거치면서도 작품에 몰두하려 했던 이중섭은 그가 36세일 때 아내와 아이들을 일본으로 보내고, 다시 만날 거라는 희망으로 그림마다 그리움과 꿈을 실어 아내와 아들들을 향해 글을 써 보내고 그림을 그린다. 아내를 그리워하며 그려 보낸 그림들은 욕망의 표출이 대담하여 물의를 일으키기도 한다.


제주에서의 게 그림과 최초의 은지화는 그의 삶의 방식과 끊임없이 갈구하던 예술혼을 엿보게 한다. 제주에서 게를 하도 많이 잡아먹어 미안해서 게 그림을 많이 그렸다는 그의 일화가 전한다.


가난으로 화구나 종이를 구하지 못해 쓰레기통을 뒤져 담뱃갑 속의 은지를 펴고 긁어가며 그림을 그린 것이 은지화이다. 아내를 통해 많은 작품이 대중에게 소개될 수 있었지만 다른 동료 화가에게 맡겼다는 많은 은지화나 작품들이 오리무중이 되어 여전히 세상에 나오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도원, 65X76, 종이에 유채, 1954 상 - p.884~5도원, 65X76, 종이에 유채, 1954 상 - p.884~5


가족들과 떨어져 그 애닲음과 외로움을 희망을 가득 담아 그리던 이중섭이다. 금세 만날 듯 이것저것 아이들에게 선물을 사주겠다거나 아내를 향한 애틋한 사랑을 드러내는 편지는 1953년 7월 이중섭의 일주일간 가족 재회를 위한 일본행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가족을 그리는 화가(편지, 종이에 색연필, 1954. 11월 중순) - p.846가족을 그리는 화가(편지, 종이에 색연필, 1954. 11월 중순) - p.846


어떻게든 팔리는 작품을 그려 가족과 함께 살고 싶은 그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기를 당하기도 하고 작품을 팔고도 수금을 제대로 하지 못했으며, 아내와의 다툼이나 불화들이 편지를 통해 알려지며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무의식적인 그의 절망을 예감했다.


위의 그림들처럼 제대로 먹고 입고 살지 못하면서도 희망을 놓지 않고 가족을 그리워하던 이중섭은 1954년 대구 전시회를 마치면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고갈되기 시작한다.


가족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자신의 병으로 인해 포기하면서 정신적으로 무너져 동료를 통해 정신병원에 보내지기도 한다. 잠시 제정신일 때의 그림조차도 이전의 힘과 에너지가 느껴지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 이후 이중섭이 서울 서대문의 한 병원에서 간장염으로 사망 후 무연고로 영안실 안치되었다가 사흘 후에 문병 온 동료에게 인계된다. 41세에 객사하는 1956년 9월까지 결국 가족을 만나지 못했다.


이후 1년이 지나서야 시인 구상을 통해 한 줌의 뼛가루가 이중섭의 아내인 야마모토 마사코에게 전해진다. 그녀는 2022년 8월 이중섭에게 떠났다.




최열은 이 초판 4쇄의 평전 뒤 검은 속지에 야마모토 마사코의 명복을 비는 문구를 넣었다. 평전을 완성하는데 가장 크게 기여한 그녀에 대한 예의였을 것이다.


또한 이 평전에서 최열은 와전된 많은 일화나 기록들을 수정하고 반박하고 폭로한다. 이중섭의 작품에 대한 혹독한 비평들, 특히 이중섭의 한 동료 화가에게는 그 섭섭함을 감추지 않는다. 그 많은 이중섭의 작품을 받아서 그는 어떻게 한 걸까. 지금도 가지고 있는 걸까.


이중섭은 매우 사교적인 사람이어서 각종 조직과 시스템에 같이 조화하며 작품활동을 하려고 평생 노력한 화가이다. 그가 경제적으로 궁핍하던 때에도 그의 인품과 작품성을 존경한 많은 선후배 동료 화가들 문인들이 함께 하였고 그를 도우려 노력했다.


평전을 읽으며 이중섭과 시대를 같이하며 활동했던 내가 알고 있는 이름들이 나올 때마다 나 또한 그들의 작품으로 건너갔다 오곤 했다. 시인 구상이나 고은, 김광균, 화가 김병기, 김환기, 박수근, 소설가 이광수 등이 그랬다.


비참한 생활 중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하늘을 보며 빛을 보며 새들을 보며 아내와 아이들을 그리워하며 그림을 그렸던 화가, 고작 미술책 귀퉁이에 눈을 휘둥그레 뜬 늠름한 소의 모습으로만 떠올렸을지도 모르는 이중섭과 몇 달간 같이 살았다.


아내에 대한 진한 그리움을 그린 이중섭의 그림이 표지인 '아주 사적인 미술관: 이건희 홍라희 마스터피스(2024, 중앙 books)'를 우연히 발견하여 같이 읽게 되었고, '그릴 수 없는 사랑의 빛깔까지도-이중섭 서한집(1980, 한국문화사)'을 고서고 한 구석에서 운 좋게 발견하게 되어 이어 읽었다.


뜨거운 사랑의 언어에 휘둘리다가, 어떤 글에서는 평범한 부부의 다툼을 보는 듯했다. 헤어져 살 수밖에 없는 부부의 눈물과 회한과 섭섭함들이 쓰인 글 뒤에서 소리 죽여 흐느끼는 것 같아 가슴이 많이 아팠다.


평전에서 소개한 그림 도판들을 커다란 버전으로 볼 수 있는 도록 '이중섭, 백년의 신화(2016, 국립현대미술관)'은 이중섭의 대표작 '흰 소(1955)'와 제주도 시절을 그린 '바닷가의 아이들(1952~53)'의 가득 찬 몽환으로 표지를 장식하고 있다. 이 도록을 펼쳐보며 이중섭을 오래 가슴에 담아 둘 것이다.


2023년 다녀온 국립현대미술관의 이중섭 전시회, 커다랗게 슬라이드로 이어진 파노라마 가족화 앞에서의 눈물을, 자신의 고통을 밟고 빛으로 일어나고자 했던 그를 기억할 것이다.


최열이 끌어다 준 이중섭의 삶은 어떤 물리적 고난이 있든 간에 밝은 쪽을 향해 걸어가고자 하는 사람들을 더더욱 존경하도록 만들어 주었다. 내가 아는 어떤 화가, 작가, 친구들이 그 길을 따라 빛을 내며 걸어가고 있다. 나도 그 빛을 향하여 선다.



미리보기 from 예스24

▣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이중섭, 2022-08-12 ~ 2023-04-23

▣ 표지 그림: 서귀포 풍경 1 실향失鄕의 바다, 송頌(56X92, 합판에 유채, 1951년 제주) - p. 826 ㅡ 국립현대미술관 도록 p.23에는 이 그림이 썸네일로만 작게  제목이 '서귀포의 환상'이라 되어있다. 언어가 바뀌면 감성과 깊이가 다르다. 최열의 평전과 국립현대미술관 도록 사이에서 여러 각도의 숨은 의미를 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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