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교재: 성우의 언어
세 개의 학기가 서로 바라보다가 하나가 되는 마지막 주다. 지난 두 번째 학기가 끝날 무렵의 낯선 시작을 다시 되짚으며 마무리했던 그때와는 많이 다른 끝이다.
한 학기 내내 알코올에 엎드려 있다가 질문을 하면 슬쩍 일어나 취한 대답을 내놓던 학생도,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도 자기 나라 말로 토를 달아가며 고민하고 사색하던 외국인 학생도, 읽어오지 않은 당황에도 고개를 똑바로 들고 혼자 엉뚱한 철학을 하던 학생도 각각 다른 온기와 색으로 학기를 마무리한다.
성우의 언어(이숲오, 시간의 물레, 2021)를 읽으며 포스트코로나의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은 기대로 가득 차 있던 시간이 생생하다. 말과 소리의 춤사위를 상상하며 학생들이 스스로를 훈련하며 일어서 자신감을 가지기를 바랐다. 낯선 보라색의 깊이에 발을 푹 담그기를 바랐다.
유일한 하나의 세상으로 수업에 온 학생들은 서로 뭉쳤다가 흩어지며 자신의 영역을 바라보았고 어눌하게 어울리며 서로에게 어색해했다. 학우님에서 무슨무슨 님으로 호칭이 바뀌며 침묵을 요구받았던 뭉텅 뜯긴 시간으로부터 온 두려움에 서로를 지나치게 조심스러워했다.
교수자의 피드백이 학생들이 서로 연결되는 고리로 작용하기를 바랐으나 소통이 항상 쉬운 것은 아니었다. 정해진 것을 외우고 정답이라는 영역에 안주하려는 몸부림이 한 발 나가는 데 장애가 된다는 것을 깨달으며 아이들은 부교재의 행간을 읽어 나갔다.
학기 초의 연결 고리가 전체 학기의 중심으로 돌아가기를 바랐다. 이론을 엮고 응용하며 스스로 정체성을 찾아 나가는 아이들의 진심을 읽는다. 부교재 곳곳에 포진한 언어학 이론의 씨앗들을 실제의 자신으로 싹틔우기 위해 막막했지만 굳건히 밀고 나갔던 시간들이 정리되고 있다.
호흡 사이의 여백과 생각지 않았던 상상력의 커다란 역할에 놀랐다. 보이는 또는 보이지 않는 대상을 담으며 다채로운 감성의 깊이에 대해 이야기하며 공감했다. 이해로 끄덕거리는 순간마다 각자의 세상은 넓어졌다. 뜨거운 곳에 같이 공감하는 시간들이 기말로 치닫는 지친 아이들의 눈에 낯선 새로움으로 각인되었을 거라 믿는다.
여전히 우리는 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많다. 하지만 그건 스스로 찾아가야 할 몫이다. 꼼꼼하게 사색하며 메모하며 읽은 페이지들을 더 진하게 들여다본다. 이런 질문들이 있었구나. 저런 깨달음을 얻었구나. 낯선 미래에 제대로 말소리를 낼 수 있는 힘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혼자 더 뜨거워져 마지막 피드백을 준비한다.
세 개의 학기가 모두 다르게 시작되었고 전혀 다른 방향에서 마무리되고 있다. 지루하지 않은 새로운 반복의 색깔을 쥐고 다시 다음을 준비한다. 기대에 못미친 나의 시간을 정리하고 두려움을 기록한다.
새로운 아이들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