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을 열어 둬

다시 일어서는 오늘이 되길

by 희수공원

LP판이 돌아가는 속도대로 그럭저럭 천천히 시작하는 것도 좋다. 찍어야 할 점과 지나가도 좋은 풍경을 그린다. 밖으로 나가면 푹덕지근 끈적한 공기마저 반가울 것 같지만 이내 더운 한숨을 쉴 것이다.


여름이다. 맞짱 뜨다 항상 지고 마는 여름에 숨을 공간이 있는 시간이 좋다. 여름이다 지금 간다. 불가능한 최면을 건다. 그곳을 향해 시간이라는 붉은 카펫을 힘껏 굴린다.


익숙하지 않은 얼마간의 삶은, 남은 사과를 썪게 하고 청양 고추의 독을 더 오르게 했다. 먹여주는 것에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 손을 뻗어야 냉장고가 음식 쓰레기통으로 변하지 않는다. 미니멀의 의미를 새긴다.


나기 위해 던져 넣은 것들, 필요한 데 넣어지지 않은 것들은 없어도 되는 것들이다. 감각에 의존한 최소의 시간을 끌고 문을 여는 그 순간이 좋다. 내 공간의 여집합이 내 집이 된다.


몸에 꼭 맞는 공간에서의 집중은 다른 곳에서의 응시나 마주침과 다르다. 폐쇄된 집중, 응축되는 시간, 조여드는 공간은 데드라인을 앞둔 맹목이다. 거기서 해방되기 위한 열정이며 노력이다. 기꺼이 자유를 위해 문을 열 수 있는 힌트를 얻는다.


긴장 속 여유를 향해, 눈을 감고 머물러야 길이 보인다. 숲을 헤맨 여행의 유효기간이 다가오면 모든 할 일을 한꺼번에 버물려 누에 실 빼듯 숨을 죽인다. 날아가기 위해 날개를 짜는 일에 소홀할 수 없다. 가방 속에 던져 넣은 시간에 늦기 전에 팔찌를 잠그며 마음을 추스른다. 무엇을 만날 것인가.


잦은 불안들, 불안마다 흐르는 미세한 긴장의 온도를 제 때 감지하여 흘려보내는 연습은 언제나 필요하다. 지나고 보면 그런 연습 따위는 없었다는 걸 알게 될 테지만.


삶은 항상 실전이었다.


용기 내 시작했던 프로젝트의 결과에 흥분하지 않고, 간간이 들이치는 들쭉날쭉 감정 섞인 질문에 평정심을 찾으며, 다가오는 기회와 모험을 기꺼이 받아 안을 수 있는 마음을 그리러 간다. 처음을 기억하며 겸손해지는 연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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