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도 없이
아무리 생각해 봐도 리더의 희생이라 생각한다. 배려이며 애정이며 열정이다. 아니면 이렇게 힘든 과정을 가벼이 시작할 수는 없다.
진한 읽기와 쓰기가 담긴 몇 달간의 길에 성큼 들어섰다. 내 글을 내지르고 도망가기 일쑤였던 습관을 붙잡아 나는 더 많이 생각하고 고치며 쓰려고 한다.
내가 쓴 글에 날아오는 시선과 분석, 또는 평가에 언제나 부끄러움이 앞서지만 그러면서 나는 세상의 한 자락을 붙들고 있다. 다른 작가들이 쓰는 방식은 내 것이 아니다. 나는 그들을 읽고 독자로서 감상 정도의 너무나 가벼운 추를 달고 있다. 더 유용해지고 싶다.
리더의 예리함에 언제나 심장이 베어지고 리더가 깊게 들여다보는 내 글의 바닥에서 무언가 움찔거린다. 다시 보듬는 그 온기에 찔끔거리던 절망을 정리한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는 고수의 몫이 아니다. 찌질하게 꼬집고 매달리는 하수도 있다, 어디나 그렇듯. 귓등에 달아두고 며칠 고민할 생각이다.
나는 그냥 벌컥 쓴다. 독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야 한다고들 피맺힌 목소리로 뜨겁지만 나는 그 방향으로 애타는 순간 내가 내가 아닌 내가 되어 나를 내가 아닌 나로 바꾸고 나 자신을 들들 볶고 울고 불고 할 거라는 걸 알고 있다. 벌컥 쓰는 것도 두렵고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것도 외롭다.
그걸 글로 나누는 그곳의 리더가 알아준다. 뜨겁고 눈물 난다, 이런 인연. 하지만 나는 언제나 길을 잃는다. 당황해서 머뭇거리고 목구멍이 닫혀 손가락이 삐어 굳어 울렁거린다. 글에 대해서는 어찌할 수가 없다. 사랑하지만 깊이가 너무 슬픈 내 자화상을 쓰고 쓰고 또 쓴다.
다른 작가들의 글을 읽고 또 읽으며 나는 금세 이야기에 빠져 심장통을 느낄 때가 많다. 요즘 소설은 주홍이 지나가는 회색의 고독이거나 온기가 다 날아가버린 식은 밥 같은 무용함, 불용처리 되고 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다.
사회가 그런 구석들을 보듬어 주기를 바라는 젊은이들의 잔인한 삶의 보고서 같은 무거움에 갑자기 나약해지기도 한다. 정말 나아지기는 할까. 그런 생각들을 쏟으며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제대로 된 자격이 있는 말인지 우려스럽다.
많은 것들이 스스로 정리되기도 한다. 내가 힘을 주어 정리하려고 해도 안되던 것들이 타인에 의해 가지런히 제 자리를 찾을 때도 많다. 다시 낯선 사람들을 마주하면서 무겁게 버티고 있는 나의 얼룩진 막을 하나씩 걷어낸다. 내가 보지 않으려 했던 것에도 용기를 내고 내가 들을 수 없었던 세상에도 귀를 연다.
사회적으로 관계적으로 늦깎이의 길을 걸으며 그 어느 때보다 진중한 심장을 다독이고 있다. 사람 말고는 일찍 깎은 것들도 많으니 지금이 그런 때 인가보다 정중한 가이드를 받는다.
사람들에게 감사를 보낼 수 있는 오늘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