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소설] 퇴고
그가 서진을 어르신이라 불렀다. 어르신이라는 호칭은 대략 칠십이 넘으면 불리는 것이라 생각해 오다가 자신의 방향으로 쏘아지는 그 뭉툭한 소리에 고개를 숙이고 웃는다.
분명 그녀를 향해 '불공평'하다고 항거하는 다른 말이다. 어쩌면 맞짱 뜨자 문을 활짝 연건데 그 문 저만치 앞에서 무슨 계산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모르는 서진을 불안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을 만나하는 가장 흔한 호구조사인 나이, 당연하다는 듯 신분증 딱 까놓고 일제히 서열을 세우며 두려움을 일소하는 문화가 서진은 이해되지 않았다. 나이를 알자마자 친족 호칭으로 바뀌는 건 그야말로 공포였다.
나이에 책임을 입히고 무책임으로 조이고, 호칭은 그 책임과 무책임의 소재를 자잘하게 쪼개어 분배하는 역할을 하는 거였다. 자애로운 언니가 되고 관대한 형님이 되고 듬직한 삼촌과 따뜻한 이모가 탄생하는 자리를 매번 물끄러미 진저리 치며 목격자가 되었다.
독서 동호회도, 자원봉사자 모임을 가도, 글 쓰는 작가들의 계간 여행 중에도 나이가 가장 첫 번째로 오르는 주제라는 게 신기했다. 점조직으로 더 세게 조였다.
첫 모임 후에는 나이나 소비 성향, 드물게 문화가 맞는 소그룹으로 재편성되면서 끼리끼리 몰려다니기 일쑤인 사회 조직에 서진은 벌겋게 곪기 시작하는 뾰루지 같은 존재였다.
우연히 토론 모임에서 나이를 교환하며 진지하게 서열을 정하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혼잣말처럼 '또래군...' 했던 전혀 서진 답지 않게 밖으로 내버린 그 소리를 그가 귀신같이 알아들은 거였다.
단박에 뭔가 통하고 끌리면 몇 살이 위든 아래든 시원하게 또래로 본다. 조금 연륜이 있어 보여도 마음이 열려있고 눈빛이 깊으며 한쪽으로 쏠린 민족적 부화뇌동의 성향만 아니라면 또래로 생각하는 서진이었다.
어디 가서 나이를 물어본 적은 없지만 대충 대화에 끼다 보면 또래와 비또래가 나뉘곤 했다. 또래는 깊어도 좋고 비또래는 얕아도 좋은 관계를 대강 유지하며 살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서진을 향한 타인들의 시선은 혹독하기 그지없이 묻고 또 물으며 교묘해졌다.
'몇 살이세요?'
'몇 년생이세요?'
'무슨 띠에요?'
그런 직접적인 질문에 별로 소리 내 말해본 적 없는 대답, '그게 중요한가요?'에 모두들 아랫입술을 떨었다. 눈도 떨구며 미간을 찌그러뜨릴 때도 있었다. 송곳 같은 질문에 아랑곳하지 않는 서진이었다.
포기하지 않는 건 좋은 거지만 상황과 목적에 부합해야 눈이라도 맞출 텐데 시도 때도 없이 노골적인 잔머리를 굴리곤 했다.
'88 올림픽 때 뭐 하셨어요?'
'IMF때는 중학생이셨어요?'
'10년 전에 학생이셨겠군요.'
당연히 대화는 '와, 제가 그때 중3이었거든요?'라든가 '10년 전엔 제가 한참 입시 공부하느라...' 뭐, 이런 찰나의 대답을 기대하는 것이었다. 과거에 뭔가 한 것들이, 뭐였던 게 지금이랑 얼마나 연관이 있는 걸까. 보통은 아닐 것이다. 직업을 보면 나이도 꽤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굴의 의지를 맞닥뜨리곤 했다.
'혹... 시, 폐경.. 은 지나셨나요?'
가장 창의적이고 예의 바른 톤, 정중한 표정의 무례함이 질문으로 꽂혔다. 서진 자신도 모르게 '아뇨.'라고 답한 것이 사달이었다. 그녀의 나이에 대한 넓디넓은 스펙트럼에서 좁혀지는 구획에 만족을 했는지 사람들의 관심은 점차 잦아들었다. 그를 제외하고는.
'저는 마흔셋이에요.'
그래서요?라고 할 뻔했다. 그다음에 물어봐 주었으면 하는 질문들이 줄줄일 테지만 하지 않았다. '싱글이세요?', '무슨 일 하세요?', '취미가 뭐예요?', '전공이 뭐예요?', '학교는 어느...' 이 따위 질문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서진이 호구조사 대상이 되고 싶지 않은 것처럼 그도 그럴 거라 생각했다. 의외의 오프닝에 약간의 부담을 느끼긴 했지만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 저런 사람들 중 하나인지 서진이 계속 바라봐도 좋은 사람인지.
존재론적 영혼의 부딪힘이라는 걸 서진 혼자 느꼈을까. 글 여행을 하며 습관처럼 옆자리인 그를 무시할 수 없었다.
어쩌면 밤새 '그를 제 옆에 서게 해 주세요.'라고 엄청난 파동의 텔레파시를 보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언제부턴지 혼자 웃고 뜨거웠다가 가슴에 냉찜질을 하고 관자놀이를 누르며 바라보기만 했던 사람이었다.
그가 자기 나이를 불쑥 얘기했다는 건 전통적으로 사회적 관습에 따라 서진이 어리면 '오빠라고 불러, '라든지 서진이 더 나이가 많으면 '아이고 어르신이네요, '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가장 피하고 싶은 순간이다.
그가 서진을 어르신이라고 가끔 부르는 건, 좁은 공기 속의 호흡은 꽤 많은 것들을 공유하게 하고 은연중 분위기로 세상에 나온 지 어느 정도 되는지를 느끼게 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서진은 그의 나이를 이미 알고 있지만 도대체 그 숫자와 그를 매치시킬 수 없었다. 마흔셋 정도에 어떻게 사는 게 사회적 수준을 맞추는 건지에 왜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모르겠다.
어떤 때 그는 십 대 문학소년 같고, 때론 서진의 이름을 지어주신 외할아버지 같다. 동시 같기도 하고 눈물 흘리며 읽는 로맨스 소설 같기도 하다가 고사성어 속의 지혜를 나누는 성인 같기도 하다. 때론 마시멜로 같은.
대체 나이로 규정지을 수 있는 게 어떤 것들이 있을까. 대략 사십삼 년 전에 세상에 나와 지금은 서진과 같이 있다는 사실 이외에 그 숫자가 어떤 무게와 부피와 길이를 가져야 하는 것일까.
어쩌면 그에게 또래란 딱 동갑을 말하는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그와 서진의 '또래' 사이에 엄연히 존재하는 거리 차이로 어쩔 수 없이 그를 놓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절절한 막막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가 원하는 것을 해주고 싶다. 무엇이든. 서진이 원하지 않는 것을 두드리는 그가 원하는 것, 갑자기 모순 속에 허덕이며 '그가 원한다'는 것에 이상한 슬픔이 찼다.
그냥 마주 보는 영혼, 쏘울 메이트로는 불가능할까. 손끝의 작은 스파크로 시작해 허그와 키스와 섹스, 그리고 죽음의 순간까지도 지켜봐 줄 수 있는 영원의 메이트로 가는 길에는 얼마큼의 '나이'라는 허들이 나올까.
지금 서진이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쏘울메이트로서의 이어짐이 영원히 끝나게 될 때 그때는 꼭 그가 원하는 것을 해주고 싶다는 거다. 마지막으로 꼭, 그가 원하는 그걸 꼭 주고 가야겠다고 다짐한다.
신체적인 '나이'의 덧없음과 쓸데없음이 세상의 얼마나 많은 것들을 지배하고 삶을 시시하게 규정하는지 서진만이 느낀다 해도, 끝까지 놓을 수 없는 건, 그런 제한과 규정에 매이지 않아도, 만나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그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거다.
그는 서진에게 가득 존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