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녀들의 소나타
기다리던 순간이 갑작스럽게 들이닥치면 고슴도치가 된다. 다 비우고 맞아야 더 크게 채울 수 있는데 여전히 다 털어내지 못한 후텁함을 향해 글이 들어온다, 전속력으로, 뾰족하게 뻗친 가시를 향해.
백만 육십일곱 글자쯤에 절대 마침표는 찍지 않아야지 하면서 시작했다가 숨을 참으며 끝맺은 몇 단어의 매혹당한 증거를 슬쩍 내려두고 끈적하게 흐르는 미진함에 어쩔 줄 모른다. 이 글을 읽기 전에 모두 끝나버렸으면. 오랜만이다, 그런 부재의 흔적이 합당해질 만큼 회오리 폭풍을 맞은 건.
바로 그 너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 심장을 꺼내 매달아 둔다. 시선이 화살이 되고 칼날이 된다. 화살이 혀가 되고 눈이 날을 세운다. 네 글은 너무 힘이 들어. 끝까지 읽는 게 너무 버거워서. 눈앞에 보이는 시지프의 돌덩이, 지금 흐르면 안 되는 거야. 미소 사이에 낀 주름에는 슬픔이 가득하다.
시는 찢어내는 아우성이고
소설은 재미 앞에 있어야 하고
에세이는 푹신한 공감 속에 있잖아
이도저도 아닌 담장 끝을 총총이며 걷는다. 이와이 슌지의 피크닉 가방을 메고 검정 깃털 주렁주렁 애도를 한다. 손가락 총을 왼쪽 관자놀이에 대고 그래, 너의 글은 죽음이야. 고통의 증상들. 너는 계속 걷다가 가장 존재하고 싶은 그 순간에 부재를 통해 그걸 알리지, 빵! 자유는 스스로 찾는 거니까.
삶은, 하늘로부터 지글거리다 땅으로 내쳐 터지는 물방울, 그래도 좋겠다. 그 사이 가속의 투명함이 전부인 흔적으로 남아 세상을 채우는 거다. 눈으로는 보이지 않게, 붉게 흐르는 심장을 들어 올려야 느낄 수 있게.
형용사를 동사처럼 쓴다는 말을 이해 못 하고 소리 사이에 가득 촘촘한 감성을 들어내다가 흠씬 멍이 들고 나면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 그를 읽는다. 그가 썼을 흔적들을 폭풍에 담아 홀홀 같이 걷는다.
넝마가 된 내 글과, 누추한 마음이 가득한 노란 금빛 보따리가 온몸을 굴리며 나를 따라온다. 걷고 구른 자리에는 셀 수없는 허무의 껍데기가 다시 허물을 벗는다.
아름다워요, 내게 그리고 그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