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고리를 잡고 서서

시작은 시한폭탄이라

by 희수공원

시작 앞에서 비겁해지는 습성은 찌들지도 않는다. 하지 않을 방도를 아무리 찾아봐도 없으니, 하지 않고 싶을 핑계를 도대체 제대로 댈 수가 없으니 조금씩 움직여본다. 무대에 올라가기 전 심장이 터질 것이다.


여유 있게 세울 수 있는 시간보다 동시에 덮치는 시작의 표정 앞에 지금껏 웃고 있던 마음이 일시에 굳는다. 지금 바로 시간이 폭탄처럼 터져 그 어디서부턴가 다시 할 수 있도록 주어진다면 더 잘할 수 있을까.


해결되지 않은 채 지나온 긁힘들은 이미 연결이 끊어져 차가운 딱지로 앉았으니 그걸 떼어내는 일은 혼자의 몫이다. 딱지 아래 묻혔을 잔 흉터를 짊어지고 꿋꿋하게 걸어갈 일만 남았으니 스스로 힘내라 한다.


시간을 늘렸다가 겹쳤다가 버렸다가 다시 주워 기운다. 떠난 자리에 다시 기우는 마음들, 채워지지만 손대기 힘든 두려움이다. 결국 잘할 거면서 언제나 그런다. 마침내 잘 해왔으면서 항상 그랬다. 그러고 있다.


오늘을 다지고 다진다. 준비 준비 준비 사이에 끼우는 마음 활동 소리 눈 코 입 손, 문을 열면 쏟아지는 빛을 감당할 준비를 한다. 몸의 각도와 심장이 흔들리는 정도가 첫소리에 실린다. 굿모닝이 나을까 하이가 나을까.


혼자서 온갖 상상을 하며 문을 향해 걷다가 어느새 코 앞에 와버린 문을 벌컥 열고 와우부터 시작한 날들에 웃는다. 해야만 하는 것들 보다, 하지 않아도 좋을 것들, 하면 더 좋을 수도 있는 것들이 문을 열며 결정된다.


표정과 열기와 긴장과 이완의 속도를 예민하게 알아채고 비언어적인 진한 교감으로 첫 공기를 따뜻하게 만들어야지. 그런 기쁜 순간들을 상상하며 현실에 끌어다 이어 붙이며 조금씩 다르게 변하는 자신을 만나는 거다.


가볍게 장악해야 할 것들과 묵직하게 담아야 할 것들 사이를 채우며 공부와 학습을 통해 스스로 체득하며 깨달아가는 과정의 첫 단추를 끼운다. 그 많은 시작을 하면서도 익숙해지지 않은 불안과 두려움을 받아들인다.


곧 터질 것이다. 가슴에 안고 있던 시한폭탄이 문을 열자마자 빛을 내며 산화할 것이다. 그 빛 안에서 델듯한 뜨거움으로 서로의 귀를 맞대고 눈을 마주 보며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을 것이다.


시작과 끝 사이에는 각자의 세상을 향한 진한 몸부림이 있다. 그렇게 채워지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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