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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수 Aug 20. 2023

나 자신과 서로를 믿게 된 것이 가장 큰 성과예요

청년의 무한한 이야기를 담다. 무한금정 작사캠프

“손님 다 왔어요” 택시 기사님이 운행종료 버튼을 누르며 내게 말했다. 골목을 헤쳐 달리던 택시가 어느 카페 앞에 멈춰 섰다. 부산대학교 북문 인근에 위치한 ‘카페 0101’이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남기며 차에서 내렸지만 나는 이내 어리둥절했다. ‘여기에서 행사를 한다고?’


“오늘 밤샐 준비 단단히 하고 오셨죠?” 경쾌한 목소리가 나를 반긴다. 카페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 끝에서「무한금정 작사캠프」플랜카드를 발견했다. 그제야 제대로 찾아왔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노란색 티셔츠를 맞춰 입은 스텝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혼자라서, 처음이라서’ 갖가지 핑계로 쭈뼛거릴 틈도 없이 스텝들이 하나 둘 도착하는 참여자들을 반기고 자리로 안내한다. “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도 혼자 왔어요. 하하하” 얼떨결에 3조의 팀원이 된 나는, 어느새 다른 조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금정 청년 러스틱드림사업 금정띵작 '작사캠프'


청년의 무한한 이야기를 담다
무한금정 작사캠프  

무한금정의 「작사캠프」 프로젝트는 이름 그대로 캠프를 즐기며 작사를 해보는 문화기획 프로그램이다. 청년 1인 가구를 대상으로 기획되었지만,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단, 한 가지 조건! 오늘 처음 만난 사람과 1박 2일, 아니. 무박으로 함께 밤을 새우며 작사를 해야 한다는 규칙만 지킬 수 있다면야. 누구나 가능하다.


작사와 캠프. 어울릴 듯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는 어떻게 만나게 되었을까. 독특한 콘셉트의 프로젝트, 탄생 배경이 궁금했다. 요즘 청년들 사이에서는 티슈인맥이 유행이라며 무한금정 팀의 막내이자 문화기획자 탁지은 씨가 운을 뗐다. 


‘티슈인맥.’ 화장지 티슈(tissue)처럼 필요할 때만 인간관계를 맺고 필요 없으면 손쉽게 버리는 사이를 뜻하는 신조어다.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를 보면 메신저 친구목록은 수백 명인데 실제로 연락하는 친구는 5명에 불과하다는 식의 글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이런 껍데기 인맥에 회의감을 느낀 이들이 오히려 인간관계에서 오는 허탈함을 피하고자 티슈처럼 가벼운 일회성 인맥을 찾는 것이다.


티슈인맥이라는 현상 너머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무한금정의 「작사캠프」의 시작은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했다. “저희는 오히려 사람과 관계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기획을 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프로젝트 중심에 음악이 있다면 무조건 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음악에는 사람을 하나로 모으는 힘이 있으니까요.” 탁지은 씨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지은 씨의 말을 듣고 보니 ‘티슈인맥’ 이란 단어 속에 숨겨져 있었던 본질이 보이는 것 같다. 사실 우리는 모두 누구보다 진솔한 관계를 맺고 싶다. 휴대전화 목록에만 존재하는 친구 말고 진심으로 마음을 터놓고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진짜 친구가 필요했던 거다.



처음 만난 사이 정말 맞나요? 하하하


밤을 새워 떠든 수다
어느새 완성된 노랫말
 
사실, 우리는 더 연결되고 싶었던 걸까?


간단한 아이스 브레이킹(ice breaking)과 함께 본격적인 작사캠프가 시작됐다. 「작사캠프」에 참여한 참가인원은 스텝을 포함해 총 22명. 전체 4개의 팀이 만들어졌는데 어떤 연결고리도 없던 이들이 책상 하나를 두고 둘러앉았다. ‘안녕하세요. 어떻게 참여하게 되셨어요?, 어떤 노래 좋아하세요?, 저도 그 노래 너무 좋아해요. 하하.’ 초면이 맞을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모두는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작사캠프의 작사 활동은 의외로 간단했다. 먼저 팀별로 마음에 드는 노래를 한 곡씩 고른다. 서로의 음악적 취향을 고려해 함께 노래를 선택하는 것이 포인트다. 작사라는 창작활동보다 작사를 통한 네트워킹 교류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팀별로 노래 위에 얹힐 새로운 노랫말을 써 내려간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 대화들은 자연스럽게 모두 작사의 재료가 되었다. 


전문가의 영역인 줄로만 알았던 ‘작사’라는 일이 단 몇 시간 만에 뚝딱뚝딱 이뤄진다. 누군가는 가사의 뼈대가 되어줄 이야기 흐름을 잡았고, 어떤 이는 멜로디와 박자에 맞게 가사를 다듬었다. 어느 정도 곡의 모습을 갖추어가자 또 다른 누군가는 음에 맞게 노래를 부른다. 혼자라면 못했을 일이다. 작업은 늦은 새벽까지 이어졌다. 작사캠프답게 정말 밤을 꼴딱 새워 녹음 작업까지 진행됐고 마침내 총 4개의 곡이 완성됐다.



작사캠프 작사 활동에 어느새 흠뻑 취한 참여자들


노래로 자신을 표현하고 타인과 관계를 맺는 사람들.  음악은 정말 서로를 연결시켜 주었다. 함께 조를 이루어 노랫말을 짓고 노래를 부르는 사이 서로는 서로에게 친구가 되었다. 문화기획으로 청년들이 마음을 터 놓을 수 있는 대화의 장을 만들고 싶다던 무한금정 팀의 꿈은 현실이 되었다. 


작사캠프를 기획한 문화기획자들에 「작사캠프」는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더 궁금해졌다. “행사가 끝난 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참여자들은 아직도 서로 연락을 주고받고 만남을 이어가고 있어요. 이보다 더 큰 성과가 있을까요?” 그렇다. 작사캠프의 기획의도에 맞는, 부연 설명이 필요 없는 한마디였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제 역할은 허드렛일이었어요



탁지은 씨의 손길로 만들어진 디테일들 :)


이번 프로젝트에서 각자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 물었다. 배준호 씨가 「작사캠프」의 전체적인 기획의 뼈대를 세우고 초행길을 안내하는 역할을 했다면 고민정 씨는 행사의 마스코트인 작사캠프 캐릭터 디자인과 홍보물 제작 등 행사의 전반적인 준비를 도맡았다 했다. 마지막 지은 씨의 대답을 기다리는데 의외의 대답을 한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제 역할을 허드렛일이었어요" 어떤 망설임도 주저함도 없었다. 목소리에서 당당함이 느껴졌다. “하하하. 놀라셨나요. 저는 허드렛일이 보잘것없는 일이라 절대 생각하지 않아요. 팀원들이 회의 내용을 잊어버리지 않게 정리해 주고, 행사에 필요한 물품을 무엇일 있을까 고민해서 찾아보고 구매하고.  준호 님과 민정 언니가 바빠서 놓치는 일이 있으면 그런 순간마다 제가 도움이 되길 바랬어요.”


스스로가 허드렛일이라고 표현했지만 어쩌면 이번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이었지 않았을까. 그렇다. 문화기획에서 어쩌면 가장 화려해 보이고 돋보이는 일은 프로젝트의 뼈대를 잡는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화려한 모습뒤에는 수많은 고민과 노력이 숨겨져 있다. 


작사캠프 행사장을 찾았을 때 느꼈던 왠지 모를 편안함은 우연이 아니였다. 스텝들의 환한 미소와 환대. 물 흐르듯이 이어진 행사 진행 그리고 사전 설문조사를 통해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이들끼리 조를 편성하는 치밀함까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밤샘 작업을 할 참여자들의 건강을 챙기는 비상약 구비하는 디테일까지. 작고 보잘것없어 보일 수도 있는 일들을 지은 씨는 기쁘게 도맡아 했다. 그리고 이 모든일 또한 기획이라 말하는 탁지은 씨. “사람의 마음은 빛보다 빠르다고 생각해요. 행사를 준비하는 우리부터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면 진심은 결국 모든 사람에게 닿을 것이라 확신했거든요." 결국 진심은 통했다! 모두도 다 똑같이 느꼈지 않았을까. 


혼자가 아닌 함께!
기획을 한다는 것



무한금정 작사캠프 팀원들의 깜직한 사진 포즈



금정구의 무한한 이야기를 담는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문화기획팀 무한금정. 행사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행사를 기획한 문화기획자 배준호, 고민정, 탁지은 씨를 다시 만났다. 이들은 지난 6월 금정구청이 주최한 ‘금정 청년 러스틱 드림‧ 금정띵작’ 사업을 통해 처음 알게 됐다. 팀을 결성한 지는 딱 2개월. 서로를 알게 된 기간에 비해 팀워크가 너무 좋은 거 같다며 인터뷰 전 가벼운 농담을 던졌는데, 웬걸 고민정 씨가 할 말이 많다는 듯 멋쩍게 웃어 보인다. 


“사실…. 처음에 준호 님이랑 의견 충돌이 많았어요. 제 아이디어와 기획안이 뽑히지 않아 아쉬움도 매우 컸고요.” 고민정 씨의 답변에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던 탁지은 씨가 고개를 끄덕끄덕거리며 한마디를 거들었다. “맞아요. 제가…. 중간에서 애를 많이 먹었죠. 하하하”


문화기획자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음속 이런 욕심 하나쯤은 있을 거다. 자기 생각을, 이름을 건 기획을 세상 밖으로 표현하고 싶다는 그런 욕심 말이다. 특히 무한금정 팀은 문화기획자 양성 프로그램인 금정띵작 사업을 구심점으로 모였기에 더 그랬다. 무한금정 팀 기획의 중심에 공통 관심 키워드였던 음악이 있었지만 풀어가는 방식에서 의견 차이가 있었다. 


고민정 씨는 실력은 있지만, 아직 주목받지 못한 부산인디뮤지션과 예술가를 지원하고 응원하는 기획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배준호 씨는 음악을 매개체 삼아 청년들이 소통하는 기획을 하고 싶었는데 결과적으로는 배준호 씨의 아이디어가 팀의 최종 기획으로 정해졌다.


고민정 씨가 말을 이어갔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의 꿈을 내가 대신 이뤄주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마저 들었어요. 저도 이곳에서 나름의 결과를 만들고 스스로 기획을 실현해 보이고 싶었거든요.”  행사 준비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여차하면 팀에서 나와 혼자라도 해볼까 고민했었다는 민정 씨. 


자신의 기획에 대한 욕심이 컸던 만큼 다른 이의 기획으로 프로젝트를 추진한다는 것에 큰 결심이 필요했을 것 같았다. 본인의 기획이 채택되지 않은 것에 대한 섭섭함은 없었을까. 다시 한번 더 물었다. “섭섭함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배준호 씨랑 하면 100% 성공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그동안 해온 기획들이 증명해주고 있었거든요.” 배준호 씨는 오랫동안 부산에서 크고 작은 문화기획을 해온 경력자였다. 자신의 기획을 구현해 내는 것도 중요했지만 팀 프로젝트이었던 만큼 팀원을 전적으로 믿고 따라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단다.



무한금정 작사캠프의 어벤저스 3인방! (왼쪽부터 배준호, 고민정, 탁지은)


"맞아요. 팀원을 진심으로 믿었어야 했어요. 정말이에요." 탁지은 씨가 맞장구를 쳤다. “기획부터 실행까지 저희에게 허락된 시간은 딱 한 달. 쉽지 않은 과정이었거든요. 시간을 쪼개어 회의하고 때론 밤을 새우며 행사를 준비해야 했는데요. 팀원들을 믿지 않으면 해낼 수 없었어요.” 


배준호 씨의 마음은 어땠을까. 올해로 8년 차 문화기획자가 되었다는 준호 씨도 말을 거들었다. "오랫동안 기획을 해왔지만 이런 감정은 처음이었어요. 늘 혼자 기획하고 실행하는 것이 익숙하고 편했거든요. 그런데 이번 작사캠프는 달랐어요. 나의 기획을 믿고 따라와 주는 팀원들이 있어서 오히려 더 힘이 되었고 동시에 '잘 해내야지'하는 책임감도 생기더라고요."


무한금정 팀이 아닌 개인이었다면 이렇게 완성도 높은 프로젝트를 만들 수 있었을까. 한정된 예산, 한정된 시간. 한계가 많았다. 그럴수록 팀원들을 믿어야 했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역량은 모두 활용했고 단점은 서로가 보완하며 맞추어갔다. 자연스럽게 행사의 완성도는 올라갔고 동료가 있다는 사실이 서로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배웠다. 상황은 열악했지만 서로는 열정을 다하는 팀원들을 보니 지칠 수 없었다. 누구라도 할 것 없이 ‘할 수 있다’라는 응원과 칭찬을 주고받으며, 동료를 믿고 함께 목표를 이뤄가는 일이 얼마나 벅차고 멋진 일인지 배워갔다.



작사캠프의 꽃. 녹음까지 완료해야죠


청년의 무한한 이야기를 담다, 가능성을 잇다.
 다음 페이지에 기록될 우리의 이야기는?


 “이번 프로젝트를 하면서 크게 깨달은 점이 있어요. 나와 우리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이에요.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믿게 된 것이 가장 큰 성과예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청년들의 이야기를 노랫말에 담아낸다는 작사캠프의 기획처럼 자기 자신도 몰랐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무한금정 팀. 우리가 느끼는 수많은 두려움의 실체는 사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많다. 해보기 전에는 몰랐던 막연한 두려움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그냥 했고, 내 옆에 팀원을 의지하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멋지게 완료했다. 


어떤 사람에게「작사캠프」는 단 하루. 일회성의 반짝 이벤트 행사였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불현듯 궁금해졌다. 금정구, 아니 부산의 골목과 우리가 삶의 터를 두고 살고 있는 동네 동네마다 유의미한 문화기획들이 활발하게 생겨난다면 어떨까. 어떠한 연결고리도 없던 청년들이 연결되고 이어지고 또 다른 새로운 재미난 기획이 만들어진다면 또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까라고 말이다. 다음 페이지에는 또 어떤 이야기들이 기록될까?



2023 무한금정 작사캠프. 뜨거웠던 7월 초.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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