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 대한 어떤 작은 기억들

스베틀라나 알렉시에비치,《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by 다희








전쟁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책을 읽기 시작하며 느꼈던 감정은 놀라움이 먼저였다. 전쟁에 대해서, 전쟁을 겪은 이들에 대해서 나는 정말로 무지했다. 아무리 전쟁에 대한 다른 시각의 글들을 보고, 소설을 읽었다 해도 여전히 나의 전쟁에 대한 상상력은 빈약하여 기존의 다수 서사들을 통해 재현된 이미지에서 출발했던 것 같다. 군인들과 폭격이 먼저 떠올랐고 군인들은 모두 남성이었다. 전쟁 속 여성을 상상하면 포로나 위안부, 대위의 부인이나 딸 등의 이미지로 떠오르는 편이었다.


그래서 배경지식 없이 이 책의 표지를 보고는, 전쟁 중 포로로 잡혔던 생존 여성들의 이야기일 거라고 추측했다. 포로로 잡혀가 군대의 간호와 취사를 담당했던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리라. 혹은 더 잔혹하다면 포로로 잡혀 고문을 받거나, 강간을 당한 생존 피해자들의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물론 어느 방향으로의 상상으로든 실제의 참혹함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힘들었겠지만, 제2차 세계대전에 100만 명이 넘는 소련의 여자 병사들이 참전했다는 모르던 진실 앞에 말문이 막혔다. 또한 이렇게 영웅적 무용담이나 전쟁의 가치에 대한 일말의 미화 없는, 있는 그대로의 경험과 감정이 짙게 드러나는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지금까지 본 적 없었다. 여성 병사들의 시선으로 경험한 전쟁은 이제껏 남성들로부터 이야기되던 것 과는 분명 달랐다.



군인의 젠더, 두 개의 전쟁


한편 여성 병사들의 시선이 달랐을 뿐 아니라, 군대가 그들을 보는 시선과 처우도 달랐다. 추운 겨울 해진 옷을 입고, 사이즈가 맞지 않는 군화를 피가 흐르는 발로 질질 끌면서 전투에 참여해야 했던 소녀 병사들. 그녀는 인형을 든 것처럼 총을 안고서라도 남자 군인들과 ‘동지’가 되고자, 국가의 가치를 수호하고 파시스트를 처단하는 ‘영웅’이 되고자 발버둥 쳤지만 그 무엇도 되지 못한 채 잊혔다.


나는 최초의 해군 여장교였어. 내가 맡은 임무는 선박들을 전투에 맞춰 무장시키고 해병대를 훈련시키는 일이었지. 그러자 영국 언론이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상한 존재가 러시아 해군에서 싸우고 있다’고 떠들어댔어. (362)


가부장제 국가는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성역할을 분명하게 나누어 유지된다. 남성들은 사회의 정치, 경제의 주체가 되었고, 여성들은 그런 남성과 가정을 이루고 사적인 가정의 노동을 수행했다. 여기에 제국의 ‘군대’라는 국민의 의무가 더해지며 공공의 가치, 역사의 가치를 수호하는 완전한 국민 역할은 ‘정상적으로 군대에 간 남성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징병제 국가인 한국에서 군 복무의 유무는 여성에게는 물론 남성들 사이에서도 차별의 근거로 작용한다.)


하지만 이 역할은 동시에 속박이기도 하다. 전쟁은 남성적인 가치를 수호하는 아버지 국가의 일, 군인의 존재는 정상 남성으로 젠더화 되었다. 이 속박을 내재한 남성들은 ‘국가’와 ‘전쟁 가해자’와 ‘자신’을 동일시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고, 때문에 전쟁을 합리화하거나 미화하고자 할 가능성도 높다.


내겐 전쟁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이 많은 반면, 집사람에겐 전쟁에 대한 감정이 더 많아요. (중략) 전쟁터에서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됐소. 확실히! 내가 전쟁터에서 훨씬 괜찮은 인간이 된 건 분명한 사실이오. 그런 고초를 겪었는데 당연하지 않겠소. (198)


한편 전후에는 전쟁으로 황폐가 된 국가를 다시 세우는 과정에서 일부 전쟁 영웅이나, 남성들이 국가가 재건하는 정상적 이미지의 주인공이 되었다. 반면 여성들은 전쟁 전에도, 중에도, 그 후에도 거대한 가치와 속박들로부터 벗어나 있는 존재였다. 그들이 알고 있었든 모르고 있었든 말이다.


전쟁이 끝난 후, 군대에서의 모습과 훈장은 잊고 다시 정상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을 강요받으 느꼈던 혼란과 수치심은 그들을 침묵하게 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외면당했던 목소리들에 누군가 귀를 기울이자 이야기들은 쏟아져 나왔다. 언제나 질서를 뚫고 나오는 목소리들, 기존의 이데올로기를 깨는 목소리는 ‘작은’ 사람들의 것이었다.



쏟아지는 목소리들


이 책은 200여 명의 여성들을 인터뷰한 결과물이라고 한다. 각 소제목으로 묶인 인터뷰이의 증언들은 호흡이 아주 빠르고 이어지지도 않는다. 때문에 시간의 순서나 기승전결은 찾기 어렵다. 이렇게 다양한 목소리들이 교차 편집되어, 그녀들의 사연과 목소리가 얼마나 다양한지 더욱 실감 난다. 아버지의 복수를 하겠다며 자원해서 입대한 누구, 군대에서도 예뻐야 한다는 생각으로 솔방울로 앞머리를 말았던 누구, 꼭 총을 쏘게 해달라고 상관에게 요청하는 누구. 이들의 목소리는 군대에 모인 ‘군인들’이 얼마나 다양하고 다른 삶을 살아온 존재였는지 새삼 깨닫게 한다.


군대와 같은 엄격한 시스템과 규율 하에서 소녀 병사들의 일화는 믿을 수 없이 해맑기도 하다. 소녀 병사들의 실수담에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느껴보지 못한 애매하고 불편한 감정들이 일어났다. 상관에게 두 손으로 경례를 하는 것이나, 저기 군복 입은 아저씨라고 부르는 것. 소녀 병사들의 어설픈 행동들은 군대를 다소 우스꽝스럽고 이상한 차원의 공간으로 느껴지게 만든다. 거대한 이데올로기가 수호하는 가치와 규율, 질서가 얼마나 부자연스럽고 인위적인지는 그 질서에서 조금 밀려난 외부인의 시선이 비로소 들춰낼 수 있었다.


한편 어설펐던 소녀 병사들 외에도, 여성 병사들의 목소리에는 명분을 지켜 국가에 인정받고 싶었던 욕망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스스로를 여성으로 보지 말아 달라고, 남성과 같은 사람, 군인으로 보아달라고 호소해도 대부분 소용없었다. 이들은 군생활을 하며, 전쟁을 겪으며, 전쟁 후의 치욕을 겪으며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사실 여성 군인에게는, 승리하면 쟁취할 거라 믿었던 명예라는 선택지가 애초에 없었다는 것을.



약한, 연민하는, 수치를 느끼는, 감정적인, 여성적인(젠더적 의미), 작은 것들의 힘


터져 나온 그녀들의 증언들은 생명이 생명을 죽이는 데에 어떤 근사한 명분이나 이유 따위는 있을 수 없음을 가장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전쟁 속에서도 느꼈던 연민과 수치, 즐거움과 두려움 같은 감정들에는 거짓이 없다.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더욱 생생하게 느꼈던 이들이 바로 여성 병사들이었고, 그 감정으로 최소한의 범위에서 자신의 행동을 결정할 수 있었던 것도 이들이었다.


잊은 게 아니에요. 아무것도 잊지 않았죠. 하지만 그렇다고 포로를 때릴 순 없었어요. 어쨌든 포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니까. 그렇게 우리는 각자 자기 행동을 결정해야 했고, 그건 중요한 일이었어요. (287)


그래서 시스템이 강요하는 규율과 사회의 가치들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작은 것을 소중히 생각하는 일, 타인을 연민하는 일, 누군가를 돌보는 일들이 필요하다. ‘나’는 무력하지만, 무력한 존재들과 함께 울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할 때 모이는 ‘우리’의 분노와 슬픔의 힘은 약하지 않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가 서로를 위하며 상상하는 '다른 삶'은 전쟁과 같은 순간에서 우리를 지켜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무력하지만, 무력한 존재들과 함께 울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할 때 모이는 ‘우리’의 분노와 슬픔의 힘은 약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