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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귄일호 Jul 21. 2018

너무 생소한 금융업계의 그들

B2B 금융 서비스를 디자인하는 UX 디자이너가 겪는 일

흔히 은행의 UX 디자이너라고 하면 카카오 뱅크나 토스, 몬조 등의 핀테크 기업을 떠올린다. 사실 나도 처음엔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일하고 있는 팀은 일반 소비자가 유저가 아닌 B2B (Business to Business) 금융 서비스를 담당하고 있다.


금융업계 조차도 생소한데, B2B라... 사실 처음엔 당황스럽기도 했다. 정확히 어떤 사람들이 내가 디자인하는 서비스의 유저인지, 금융 업계에 종사하는 뱅커들은 도대체 어떤 워크 플로우를 가지고 업무를 하고 있는지 등 궁금한 것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초반 6개월 정도는 두리뭉실한 이 업무를 실제적으로 파악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구체적으로 찾아야 했다.


다행히도 지금까지 프로젝트를 다양하게 경험하면서 내 나름대로 그 궁금증을 해결해 가고 있다. 그래서 혹시나 금융업계의 UX 디자이너는 어떻게 일하는지, 해외 기업에선 B2B 서비스를 어떻게 기획하고 디자인하는지, B2B와 B2C에서의 UX는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오랜만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B2B 금융 서비스의 유저는 다르다?

UX는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의 줄임말이다. 유저를 철저하게 고려한 디자인을 하는 것이 UX 디자이너의 가장 중요한 본분이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이 누군지 정의 내리고,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하지만, B2B 금융 서비스에서는 그 유저를 정의 내리고 파악하기가 더 어렵다. 금융업계에 종사하고 있거나, 금융 서비스를 거래하는 클라이언트들이 우리 서비스의 잠재적 유저인 경우가 많은데, 일단 그들을 만나기가 어렵다. 물론 우리 팀은 Trading floor 에 있기 때문에, 트레이더, 세일즈, 애널리스트들과 마주칠 일이 많다. 그치만 적어도 그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하려면 그들이 하는 업무와 용어를 어느 정도 이해한 뒤, 직접 물어봐야만 알아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시간은 돈이다. 느긋하게 차근차근 물어보기가 쉽지 않고, 디자인 씽킹 프로세스가 매우 생소한 이 업계에서 그들을 대상으로 워크샵을 진행하는 건 나에게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최근 내가 주체적으로 맡아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중 하나는 우리 회사의 세일즈 유저들이 효율적으로 데이터를 파악하고, 이를 활용하여 클라이언트와 쉽게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웹서비스이다. 처음엔 벤치마킹 리서치를 하면서 그들의 업무를 파악하는 데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었다. 예를 들어, Axe, RFQ, IOI 등의 생소한 용어들이 많아서 처음부터 기획하기가 힘들었다. 또한 프로젝트 팀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안돼서 답답하기도 하고, 왜 유저의 니즈를 다 반영하지 않냐고 따지는 자칭 UX 개발자 때문에 열 받기도 했다. 하지만 점차 프로젝트 팀 안에서 나의 입지를 다져가고 있다. (휴우, 다행...)


이번 글에서는 내가 지금까지 경험한 B2B 금융 서비스 유저들의 특징과 이를 파악한 방법에 대해 간단히 정리해보고자 한다.




1. 그들은 복잡한 걸 싫어하지 않는다.

금융 시스템은 구조적으로 복잡하다. 수많은 규제와 제약들이 있고, 이를 잘 따르기 위해서는 프로세스가 길어지는 경우가 많다. 특히 B2B 서비스에서는 디지털화가 어찌 보면 더딘 편이다. 정확하게는 개발자 중심의 디지털화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우리 회사만 해도 개발자 집단은 매우 크고 다양한 반면, 디자이너를 뽑아 UX/UI를 개발 단계에서부터 고려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서 작은 글씨와 수많은 데이터, 표, 그래프 등 엑셀스러운 화면이 가득 차 있다. 그들은 수십 년 동안 이 화면에 익숙해져 있다. 모든 버튼들이 항상 그 자리에 있어야 하고, 최대한 많은 데이터를 한눈에 보는 것이 그들의 가장 큰 니즈다.


그들에게 수많은 단계가 생략되거나 간소화된 서비스를 갑자기 제공한다면? 매우 황당하고 불안할 것이다.


실제로 최근 애널리스트들과 외부 클라이언트들이 사용하는 웹사이트를 개편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난 그들이 복잡한 걸 싫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바로 깨달았다.


Why can't we have more data in smaller fonts?
It's not efficient!


그렇다면 복잡한 상태를 유지해서 디자인해야 맞는 걸까? UX 디자이너가? 그렇지 않다. 그들이 익숙해져 있어서 미처 깨닫지 못하는 불필요한 과정을 문제점으로 파악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다. 복잡성과 심플함의 밸런스를 맞춰 디자인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는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닌 우리 팀의 모토이기도 하다.


Rethink Complexity
https://design.sgmarkets.com


몇 달 전 팀에서 새롭게 팀의 모토를 정했는데, 나에겐 생소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무조건 심플하게 만들겠다는 것이 아닌, 유저와 업계의 특성을 고려하여 복잡성을 재해석하고 이를 사용자 관점으로 디자인하는 것이다. '복잡성을 재해석'하는 이 과정이 나에겐 매우 어렵고 큰 도전이 된다.




2. 그들은 특수성과 전문성으로 인해, 니즈가 너무나도 각양각색이다.

‘뱅커’라고 불리는 그들은 명문대를 나와 런던, 뉴욕, 홍콩 등 세계적인 금융 도시에서 높은 연봉을 받으며 일한다고 알려져 있다. 런던에서도 직업을 얘기할 때 구체적인 팀이나 업무보다는 그냥 ‘뱅커’하고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회사 내부적으로는 보통 자신의 주종목이 확실히 정해져 있다. 각 팀이 매우 세분화되어 있고, 개개인이 각 부분의 전문가이다. 그래서 각자 가지고 있는 관심사나 워크 플로우가 매우 다르다.


이는 서비스를 기획하고 UX/UI를 디자인하는 나의 일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서비스를 기획할 때에는 개개인의 모든 요구를 다 들어줄 수 없기 때문에, 공통적인 니즈를 파악해서 유저 플로우를 짜야만 한다. 그런데 같은 세일즈 팀이어도 자신이 담당하는 클라이언트의 주 관심사가 국가 채권인지 사기업 주식인지에 따라서 필요한 기능이나 플로우가 약간씩 다르다. 또한 리서치 웹사이트의 랜딩 페이지에서 제일 먼저 읽고 싶은 리포트의 카테고리가 다 다르다.


이러한 그들의 특수성과 전문성을 고려하여, 최근 프로젝트에서 내가 제안한 것은 ‘큐레이팅 마켓 리서치 웹사이트’이다. 물론 고민해서 쥐어짜 보니 특별할 것 전혀 없는 방안이지만, 지금까지 10년 동안 고정적인 형태의 컨텐츠와 지루한 레이아웃, 과도하게 복잡한 I.A. 를 고수해온 우리 회사의 리서치 웹사이트를 개편할 수 있게 된 큰 기회다. 




결론은 뻔하지만 균형


나의 유저는 ‘나에겐 너무 생소한 금융업계의 그들’이다. 너무 다양하고 특수해서 감히 내가 정의하기엔 불가능하지만, 최소한 내 경험의 틀 안에서 B2B 금융 서비스의 유저인 그들의 특징을 살펴보았다.


결론적으로 복잡한 것을 싫어하지 않고, 자신의 전문성이 매우 뚜렷한 그들을 고려한 금융 서비스를 디자인하는 것은 결국 균형을 찾는 것이다. 복잡성과 간소화 사이에서, 그리고 각양각색의 특수성 짙은 니즈들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 디자인한다면 앞으로 다가올 또 다른 프로젝트들에서는 지금보다 좀 더 수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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