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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귄일호 Jan 21. 2024

2년 반 장거리의 끝자락

장거리 부부도 올해엔 끝이 납니다!


이탈리아와 영국을 오고 간 비행만 약 60번, 만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유지한 두 집 살림, 이 집에서 저 집에 도착하려면 걸리는 시간 대략 7시간.


내 옆에 있어줬으면 하는 그때에 함께해주지 못하는 아쉬움과 미안함, 그리고 그리움과 애틋함. 이 감정의 크기를 잴 수는 없겠지만, 단연코 쉽지 않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꽤나 기쁘게, 오히려 더 긍정적인 마음으로 이 시기를 보냈다. 그럴 수 있던 이유가 뭘까. 토리노에서 런던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갑자기 그 이유가 문득 궁금해졌다.



일상을 여행하듯


아마도 어떤 항공사의 광고 카피였었나,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일상을 여행하듯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왔다. 사람마다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가 다 다르다. 나는 그 새로움 속에 내가 적응해 가는 과정이 좋다. 이방인으로서의 내가 새로운 문화, 공간, 사람들과 소통하며 익숙해져 가는 그 과정이 재밌다. 그래서 짧은 여행이어도 에어비앤비로 현지인들이 사는 공간에 머물며, 그들이 장 보는 곳에 가서 쇼핑하고 집에 와서 요리하는 그 경험이 좋다.


이런 나에게 이번 장거리는 일상과 여행이 뒤섞이는 시간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이 집에서 저 집으로, 토리노의 새로운 집을 꾸미고, 새 동네 크로체타에 적응하는 동시에, 익숙하기만 했던 런던 집과 직장, 그리고 사람들도 더 소중해졌다. 런던에서 지낸 지도 만 6년이 지나고 어느 정도 익숙하고 무료한 일상을 보내던 중이었는데, 왔다 갔다 하다 보니 런던의 매력이 보였다.


런던 집에서 그의 옷, 머그잔, 그릇, 책 등등 야금야금 살림을 옮기다 보니, 어느덧 토리노 집은 우리의 살림으로 적당히 잘 찼다. 새로 장만한 미드 센츄리 빈티지 소파와 책장은 런던에서 들고 간 살림들과 제법 어울렸다. 런던 집은 새로 지은 새하얀 모던 플랏인데, 토리노 집은 1900년 초에 지은 오래된 플랏이다. 그런데도 우리의 취향은 거기서 거기인지라 살림들이 두 공간에서 모두 제법 어울린다.



저가 항공이라 작은 캐리어도 없이 배낭을 메고 오고 가기를 수십 번, 그래도 지치지 않고 이 두 집 살림을 유지할 수 있는 건 어느 집에 가든 편안하고 포근함을 느낄 수 있는 ‘우리 집’이기 때문이다.



서로의 힘듦을 오롯이 이해할 수 있는 건

서로뿐



그렇지만 가끔 몸이 안 좋거나 지독하게 외로운 때가 있다. 밥을 차려먹을 때 함께 먹고 싶은 사람이 내 옆에 없다는 건 꽤나 쓸쓸하다. 퇴근을 해도 집이 그대로고 날 맞아주는 상대가 없으니 너무나 고요하다. 그래서 습관처럼 유튜브나 드라마를 켜고 디지털 소음을 듣는다. 왜 이런 고생을 하고 있지 우리 결혼도 했는데… 라는 자조적인 생각이 밀려올 때마다 서로에게 전화를 건다. 다행히도 이런 부정적인 감정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는데, 아마 서로에 대한 동정과 공감이 큰 몫을 한 것 같다.


나도 그도 같은 상황에 놓여있는 건 마찬가지니 그 어려움을 오롯이 이해할 수 있는 건 다른 그 누구도 아닌 상대라는 사실이 괜시리 큰 위안으로 다가온다. 하루종일 일에 시달리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갈 때도 장을 봐 저녁 식사를 스스로 준비해야 하는 서로가 안쓰럽다. 나도 힘들지만 그도 힘들겠지 생각하니 서로를 응원하게 된다. 무엇보다 이 장거리는 우리가 선택해서 하고 있는 거니까! 그래서 우린 자주 “우리 부부 화이팅” 이라는 메시지를 서로에게 보낸다. 그렇게 힘을 내다보니 벌써 2년이 흘렀다.



그리고 우리에게 온 선물, 축뽁


그런 우리에게 지난봄 아주 귀한 선물이 찾아왔다. 런던에 모처럼 길게 온 그와 소소하지만 행복한 이스터 공휴일을 보냈고, 그 한 달 뒤 설마 하는 마음에 임신테스트기를 확인했다. 장난 반 진담 반 오빠에게 외로우니 너의 분신을 남겨두고 가라 했는데, 진짜 우리의 작은 생명이 내 배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그렇게 선물처럼 갑자기, 지난 유산의 아픔에서 충분히 회복되었다 느끼던 그즈음 봄에 축뽁이가 찾아왔다.



다행히도 그 봄 무렵에 영국 영주권을 신청하는 시기였고, 그 덕분에 이태리와 영국을 오고 가는 비행도 잠시 멈췄었다. 영주권 승인이 나고 신분증 카드를 발급받기 전까진 영국 밖을 나가면 안 되는 규정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가 2-3주에 한 번씩 영국으로 왔고, 부모님의 방문도 예정되어 있던 터라 너무 외롭지  않게 임신 초기를 보낼 수 있었다. 영국 병원인 NHS는 임신 12주 차가 되어야만 첫 초음파를 봐준다. 그전까진 피검사, 소변검사 같은 아주 간단한 검사만 하고 임신 사실만 확인할 뿐이다. 이전에 유산을 경험해서일까, 임신 초기엔 시간이 유독 더디게 흘러갔다. 언제쯤 아기를 느낄 수 있을까, 초음파로 아기의 건강한 심장소리와 성장을 하루라도 빨리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입덧은 거의 없어서 피곤하면 잠만 자고 그저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길 바라며 하루하루 일하며 지냈던 것 같다. 아마도 일이 없었다면 더 시간이 느리게 흐르지 않았을까, 염려와 걱정에 사로잡혀 우울해지지 않았을까 싶다.



드디어 임신 중기 20주 차에 접어들었을 때엔 잠도 덜 오고 컨디션도 매우 좋아졌다. NHS에서 본 2번째 초음파에선 정밀 검사도 해주고 성별도 알려준다.  무엇보다 이 시기엔 태동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점이 너무 신기하고 놀라웠다. 배도 제법 나와서 임산부 티도 나고. 우리 축뽁이는 아들! 내가 한 아이의 엄마가 된다니 조금은 더 실감 나는 시기였다. 기대한 만큼 태동은 살면서 느껴본 적 없던 신기한 느낌이었다. 처음엔 배 안에 나비가 날아다니는 듯, 꾸룩꾸룩 물고기가 지나가는 듯, 무언가 꿈틀꿈틀 거리는 듯 싶었다. 처음엔 내 위가 소화를 하면서 꾸르륵거리는 게 아닐까 헷갈리기도 했다. 그치만 점점 더 존재를 드러내는 축뽁이를 보며 더 확신할 수 있었다. 매일 자기 전 배에 손을 올리고 아기의 움직임에 집중하는 밤들이 지났다.



오히려 임신 말기는 빠르게 지나갔다. 36주 차에 육아휴직을 쓸 때까지 회사도 나가고, 혼자 있는 언니가 걱정되어 영국에 와준 동생들과 시간도 보내고, 남편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이탈리아도 여전히 왔다 갔다 거리고. 이제 우리는 곧 축뽁이를 만나려고 한다. 2024년 1월 1일이 예정일이지만 임신당뇨로 유도 분만이 그전 주에 잡혔다.




그렇게 우리 부부의 장거리를 끝내줄 귀한 선물, 축뽁이가 곧 이 세상에 나온다. 일상을 여행하듯 보낸 2023년이 끝나가고, 이제 아기와 함께 할 2024년이 다가온다. 내년엔 우리 부부의 롱디도 끝이 날 것 같다. 어떤 상황에서도 서로의 힘듦을 오롯이 공감하고 응원하는 우리 부부가 되길 바라본다.


곧 태어날 우리의 작은 아이를 기다리며 영국 세인트토마스 병원에서 이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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