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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희선 Mar 20. 2024

3월 20일

영 자신이 없어 원고를 처박아 놓고 그냥 시간만 보내는데, 그제 대ㅇㅇ 출판사 대표가 전화를 했다. 왜 원고를 보내주지 않냐고. 자기 출판사가 미덥지 않냔다. 아니라고. 원고 수준이 떨어지는 듯하다고. 그래서 처박아 솔았을 뿐이라고. 봐주신다면 보내겠다고 답했다.


덕분에 오늘 아침 노트북을 폈다. 그리고 기획안부터 다듬기로 했다. 저자 소개를 위해  과거에 한 일들을 적다가 독립신문 <캠퍼스 RE 뉴스>가 생각났다. 발행 시기를 확인하기 위해 뒤지고 뒤져서 책상서랍에 모셔진 걸 찾아냈다.

2011년 시작 8호까지 만들었나보다. 1, 2호는 간데 없고, 나머지는  딱 한 부씩 남기고 다 폐지로 버렸다.




들여다보니, 13년이 지난 지금 봐도 주요 문제가 그때와 다르지 않다.

1호는 <서강크리스천>으로 발행했지만, 그때부터 나는 그 타이틀이 마음에 들지 않아 2호부터  재학생과 졸업생으로 구성된 편집위원들과 상의해 신앙과 무관한 대학생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캠픠스  RE 뉴스> 명칭을 바꿨다. 그리고 2호로 동성애 문제를 다뤘다. 배척이 아니라 어떻게 품을까에 방점이 있다고. 책 코너가 있었고, 그 코너에서 레이첼 카슨의 <봄의 침묵>으로 환경 문제를, 엔도 슈사쿠의 <깊은 강>으로 신앙의 본질을 다뤘다. 김동문 선교사님이 중동 이야기를, 신광은 목사님이 돈 이야기를 써주시기도 했다. 시민활동가 박정경수님이 제주 강정과 희망버스에 대해서도 글을 써주셨다. 직장 생활로 바쁜 졸업생이 시간을 쪼개 글을 써줬다. 노동 문제와 기본소득도 다뤘고.

일부 기독 교수는 탐탁히 여기지 않게 여겼지만, 일부는 좋게 여긴 것 같다.

그때 너무 무지했고 돈도 없어 원고료를 묻지도 않고 부탁드렸고, 다 거저 써주셨다. 어쩌면 그리 무지했는지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다.




캠퍼스선교사로 100만 원 사례를 받으며, 125만원의 제작비와 몇 대학에 보내는 발송비를 사비로 충당했다.

추후 3회 정도 새ㅇ안교회로부터 제작비를 후원받았다. 제작과정에서 많은 분의 도움을 받았다. 자퇴했다가 재입학한 학생이 1호 제작을 도와줬고, 2호 편집을 박ㅇㅇ 목사님과 친구들이 도움을 줬다.

신문을 들고 <복음과 상황> 이ㅇ하 편집장님을,  김ㅇ권 교수님을 찾아갔다. 그런 인연으로 <복음과 상황> 편집워원이 되고 또 다른 인연이 이어졌다. <캠퍼스 RE 뉴스>  발행을 멈췄다. 학원복음화협의회의 제안으로 전국 캠퍼스 청년 리더들이 읽는 <물근원을 맑게> 편집자가 되었다. 많은 분을 알게 되고 많은 걸 배운 시기다. 모든 게 부족한데 그렇게 그렇게 이어지고 나를 특징지어갔다.




나는 스스로 늘 변화해왔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결코 변하지 않는 바닥에 깔린 본성이라는 것도 있는 듯하다. 생각해보니  신문 덕분에 IVP와 연결이 되고, 우ㅇ학 교수님과도 연결이 되어 <신학과 과학의 대화>를 학교에서 열 수 있었고, 공정무역에 대한 강의도 있었다. 일부 기독 교수가 불만을 나타냈고, 공정무역에 대해서는 복음과 무관하다고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훌륭한 들이 있었는데, 분들이 <바리타스 포럼>도 해보자고 했다, 베리타스 본부와 연결이 되어  화상통화를 하며 의논하려 했지만,  영어를 못하는 사람(나)이 벙어리로 있었다. 내가 너무 많이 부족해서 더 진전이 없었다. 잊고 있던 기억이 새록새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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