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지 Nov 01. 2022

10월 29일, 그날



이태원 안 갔지? 

이른 아침에 문자로 가장 친한 친구에게 안위를 물었다. 

근 20년 지기 친구인 S는 알게 모르게 나와 비슷한 면이 많아서 

그런 사람 많은 곳에 일부러 찾아가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혹시나, 만에 하나 갔을까, 하는 마음에 물어본 거였다. 

역시나 그녀는 가지 않았다. 

확신하고 있었음에도 가슴을 쓸어내렸다. 

나, 내상을 입은 것 같아. 

뜬금없는 나의 자기 고백이었다. 

친구는 그럴까 봐 아무것도 찾아보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잘했다고 했다.


전날 밤에는 고등학교 때 친했던 다른 두 친구에게도 문자를 보냈었다. 

연락을 안 하고 지낸지는 오래되었으나 

그 두 친구가 20대 때 함께 핼러윈 분장을 하고 이태원에 놀러 갔던 때가 생각나서였다. 

학교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나까지 셋이 함께 곧잘 어울려 다녔었는데 

내가 스무 살 때 부모님이 서울로 이사를 오면서 나만 그 동네를 떠나서 그런지 

점점 연락이 뜸해지고 만나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내가 그 동네에서 떠나지 않았더라면 아직도 자주 만나는 친구들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지난 몇 년 동안 얼굴 한번 못 본 옛 친구들이었지만 

마녀 분장을 하고 사진 속에서 해사하게 웃던 그 얼굴들이 계속 어른거려 

밤 열한 시가 넘은 늦은 시간임에도 무턱대고 문자를 보냈던 것이다. 


H야 잘 지내? 나야. 

너랑 J랑 핼러윈 때 이태원 갔던 게 자꾸 생각나서 걱정되어서 문자 했어. 별일 없지? 

두 사람에게 같이 문자를 보냈는데 마침 깨어 있었던지 H에게서 먼저 답장이 왔다. 

잘 지낸다고, 괜찮다고, 오랜만이라고. 

한참 문자를 주고받고 조만간 시간 내어 얼굴 보자는 약속까지 했다. 

밥 한번 먹자는, 말 뿐인 약속이라고 해도 괜찮았다. 

그렇게라도 확인하고 나니 비로소 조금이라도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일이 일어난 후 이틀 내내, 

인스타그램을 들어가 누군가의 활동 기록을 보고 최근 몇 시간 내에 올라온 스토리나 피드를 보며 

이 친구도 무사하구나 생각하며 안도했다. 

확인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일일이 별일 없지? 이태원에 안 갔지? 하고 물어댔다. 

누군가에게 보낸 문자에 한참 동안 1이 없어지지 않으면 전화를 해서라도 확인해야 마음이 놓였다. 

나처럼 물어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아예 폰을 들여다보지도 않는 사람도 있을 것 같기도 했지만.




그날 밤, 나와 D는 새벽까지 뉴스를 보고 있었다. 

하루 전날인 금요일에 등산을 다녀온 데다가 

그날 오후에는 파주의 아웃렛과 이케아까지 다녀와 무척 피곤했던 나는 이른 저녁부터 곯아떨어졌다가, 

뉴스 속보에 놀란 D의 목소리에 얼떨결에 잠이 깼었다. 

핼러윈 데이를 맞아 이태원을 찾은 사람들 중 스무 명 정도가 

심정지 상태로 발견되었다는 기사가 온 인터넷을 도배하고 있었다.

심정지라니. 대체 왜?


우리는 새벽 세 시가 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뉴스를 봤다. 

스무 명 남짓이었던 희생자는 시간이 흐를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싶은 마음에 

어떡해, 어떡해를 연발하면서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수많은 영상을 보고 수많은 목격담을 읽었다. 

충격과 공포와 슬픔에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미국인 친구 A에게서 메일이 와 있었다. 

오래전 이탈리아의 포지타노 여행 중에 우연히 만나 친구가 된 그녀는 

그 후로 한국에 여행 올 때마다 나를 만나고 가곤 했고, 

미국에서도 종종 안부를 전하곤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한국에서 일어난 일을 뉴스에서 봤다고, 내가 잘 있는지 궁금하다고 메일을 보낸 것이었다. 

나는 잘 있다고, 걱정해줘서 고맙다고, 서울 한복판에서 그런 일이 벌어져 심히 충격을 받았다고, 

지금 한국은 충격과 슬픔에 빠져 있다고 답장을 보냈다. 

어디서든 A 너도 몸조심하라고 덧붙이면서.


그런 다음에 뉴스를 틀었고 사망자 숫자를 확인했고 유족의 인터뷰를 봤고 

사랑하는 딸과 아들, 친구, 지인을 잃고 오열하는 그들의 뒷모습을 담은 사진과 영상까지도 모두 보고 말았다.


친구와 점심 약속이 있어 아침 일찍 약속 장소로 차를 몰고 가는 길 위에서, 나는 내내 울었다. 

불과 몇 시간 전에 그 많은 사람들이 아무 잘못도 없이 고통 속에서 허무하게 죽어갔는데 

어떻게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아침이 시작될 수 있지. 

왜 이렇게 공기는 맑고 왜 이렇게 하늘은 파랗고 알록달록 단풍 든 나무들은 왜 여전히 예쁘지. 

이래도 되는 걸까.


영상에서 본 장면들이 자꾸 떠올라서 마음 놓고 웃을 수가 없었다. 

그곳에 있지 않았음에도 그들의 공포와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았다. 

희생자들 중에 나와 같은 여성의 수가 많았기 때문만도 아니고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청년들이 대다수 여서도 아니었다. 

꽃다운 나이의 안타까운 죽음이라니. 

그런 사고를 당해서 더 아깝고 덜 아까운 목숨은 없다. 

그 누구에게 일어났어도 참담하고 비통한 죽음일 뿐이다. 


집에 돌아와 멍하니 앉아 있는데 또 눈물이 주륵 흘렀다.

속이 안 좋았다. 입맛도 없었다. 

가위에 눌린 듯 숨이 막히는 느낌이 사라지지 않았다. 

왠지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이런 게 말로만 듣던 공황인가, 생각했다. 

그때 깨달았던 것 같다. 

그 사건으로 인해 나 역시 내상을 입었다는 사실을.




단지 좋은 날 좋은 곳에 기분 좋게 놀러 갔을 뿐인데 

왜 그렇게 허무하게 죽었어야 했는지 여전히 믿을 수가 없다. 

무엇보다, 그러게 그런 날에 그런 곳에 왜 갔느냐는 말도 안 되는 질타와 비난을 

왜 희생자들이 받아야 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집에 있다가 어딘가 불이 나 차마 빠져나오지 못하고 죽는다고 해도 집에 있었던 게 잘못이 되지 않는다. 

도로에 있다가 누군가의 음주 운전으로 사고를 당하더라도 도로에 있었던 게 잘못이 되지 않는다. 

이태원은 사람들이 모이는 거리다. 

사람들이 모이는 거리에 놀러 갔다가 사고를 당했다고 해서 

그 거리에 있었던 것이 어떻게 그 사람의 잘못이 된단 말인가. 


불과 며칠 전 나도 D와 함께 이태원 옆의 해방촌에 있었다. 

기념일이어서 함께 조그마한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그 주 주말에 있을 핼러윈을 대비해 그 레스토랑도 아기자기한 핼러윈 장식으로 꾸며져 있었다. 

핼러윈 데이 때 이태원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이지만 나도 했었다. 

사람 많은 곳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구경 삼아 가볼까 싶어서였다. 

집에서 멀지도 않고 회사 다닐 때에도 늘 지나다니는 곳이어서 친숙하니 

그냥 한 번 지나가는 길에라도 들러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냥, 한 번. 

그렇게 그냥, 한 번 가봤다가 나도 당할 수 있었던 사고였다는 공포심이 뼛속 깊이 새겨졌다. 

이제는 이태원처럼 사람 많은 곳은 안 갈래, 나도 압사할까 봐 무서워, 라는 단순한 수준의 공포가 아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듯, 

언제 어디서나 어느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사고와 그로 인한 죽음에 대한 공포다. 

삶과 죽음이 한 끗 차이라는 사실에 대한 공포다. 

죽음이 바로 눈앞에 닥쳤다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감에 대한 공포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언제 어디서든 잃을 수도 있다는 사실, 영원한 상실에 대한 공포다. 


이미 일이 벌어지고 나서 이랬으면 좋았을 텐데 저랬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모든 말들은 

다음 사고를 예방하는 데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이미 그 일을 당한 사람들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다. 

빨리 위험을 감지했다고 하더라도 그 상황에 막상 닥치고 보면 

무수히 많은 이유로 어찌할 수 없었을 것이고 미처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참혹한 참사 현장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희생자들보다 더 똑똑하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이 아니다. 

더 날쌨거나 더 순발력이 좋았기 때문도 아니다. 

그저 운이 조금 더 좋았기 때문이지. 


나는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피해자들을 추모하는 공간에 가지 않는다. 

가고 싶어도 갈 용기가 없다. 

혼자 있어도 사고 장면들이 떠올라 숨이 제대로 안 쉬어질 만큼 고통스러워서 

차마 마주하기가 두렵다.

어느 뉴스 기사에 추모하는 댓글 하나도 달지 못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애도는 마음 깊은 곳에서 

피해자들과 그 유족의 고통과 슬픔을 생각하며 일상을 꿋꿋이 견디는 것뿐이다.


나의 내상의 깊이는 

그곳에서 그 모든 일을 직접 겪은 사람들과 

그 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많은 사람들의 그것과는 비할 수 없는 얕기일 것이므로 

나의 내상 따위야 시간이 걸리더라도 언젠간 서서히 아물어갈 것이다. 

하지만 희생자와 그들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새겨진 상흔은… 

나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다.




나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안국의 어느 카페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사람들 사이에 있으니 좀 나은 것 같기도 하고 되려 더 슬퍼지는 것 같기도 하다.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대화 속에 그날의 이야기가 섞여 들려오기 때문이다. 

악몽이었으면 했던 그 일이 꿈이 아니라는 것이,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이 모든 게 분명한 현실이라는 것이 비로소 실감이 난다. 


이 글은 철저히 나의 이기적인 마음 때문에 써내려 간 글이다. 

어쩌면 한 송이의 국화꽃을 놓아두고 오는 일이, 

유족들이 볼만한 곳에 애도의 글 한 마디를 남기는 일이 더 의미 있는 일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익명의 공간을 빌려 뭐라도 쓸 수밖에 없었다. 

이런 글 따위 누군가에게도 아무 도움 되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단지 나를 위로하고 나의 내상을 치료하고자 쓴 글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쓰고 나니 비로소 숨이 조금 쉬어진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작가의 이전글 무르익고 나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