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정말 모르는 게 많아서 여러 가지를 알려줘야 한다. 나한테는 너무 당연한 걸 모르기 때문에 가끔 그런 것도 모를 수 있다는 사실도 미리 알지 못한다.
큰아이 유치원에서 시장놀이를 한단다. 아이들이 집에서 가져온 물건을 진열해두고 사고파는 놀이를 하는 것이다. 어린이집 시절에도 했던 건데, 그당시에는 아이가 뭘 더 모르는 상태기 때문에 무슨 물건을 가져갈지를 진지하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이젠 집에서 물건을 고르는 것도 아이한테는 놀이가 되기 때문에 같이 한다. 그리고 이건 선택이 아니기도 하다. 아이는 물건을 전부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내 맘 대로 골라 없애면 서로가 힘들어진다.
집애서 물건 다섯가지를 가져오라기에 아이랑 같이 시장에서 팔 물건을 이것저것 고르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아이는 어떤 물건을 가져가야히는지에 대해 나와 다른 관점을 갖고 있었다.
아무리 어린이들 놀이라고 하더라도 너무 낡거나 하자가 있는 걸 가저가서야 되겠는가. 나는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아이는 그렇지 않았다. 자기가 며칠 전까지 신던 신발을 가져가려 한다든지, 낡아서 보풀이 일었거나 뭔가 묻은 옷을 골라오기도 했다.
그러니까.. 일종의 상품성이라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어린이집에서 교구로 배부한 책을 가져가겠다고도 하고 자기가 갖고 놀다가 이 색깔 저색깔 섞어버려서 똥색 덩어리가 되어버린 점토를 가져가겠다고도 했다.
너무 낡은 거나 뭐가 묻은 건 안돼, 어린이집에서 준 것도 안 돼, 너도 사고 싶을 만큼 예뻐야 돼, 이런 소리를 늘어놨지만 아이는 그저 ‘엄마가 다 안 된다고 하네’라고 받아들이는 모양이었다.
또 막상 자기가 쓰지 않거나 입지 않는 옷, 갖고 놀지 않는 장난감임에도 내가 가져가자고 하면 갑자기 애착을 보이기도 했다. “그거 내가 가끔 안고 자는 거야” 라거나 ”그거 희준이가(동생이) 좋아하는 거야“라거나 나한텐 금시초문인 그런 이유들이었다.
그와중에도 취향은 확고했는데, 치마는 자기가 입지도 안으면서 절대 안 가져가려 했고, 일 년 동안 단 한 번도 입지 않은 청바지와 셔츠는 흔쾌히 가져가기로 했다.
이유도 좀 기가 막혔다. 치마가 작아졌잖아, 했더니 그럼 내 찬구들도 안 맞잖아! 한다. “아니 니 친구들 말고 친구들 동생들이 필요할 수 있지.” 했더니 “내 친구들은 여자 동생이 없어!” 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게 사실인지는 알 수가 없다. 정말 알 수가 없다.
내가 많은 물건을 걸러냈음에도 나름대로 재밌는 놀이였어서 아이가 큰 불만은 없이 마무리됐다.
아이가 유치원 시장놀이에 ‘가져갈 만한’ 물건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또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내가 나만의 기준과 아집을 짊어지고 사는 건 아닐지. 아니 다행인지 뭔지 이번엔 그렇진 않은 거 같다. 육아는 강제로 보살이 되어가는 환상적인 경험이 아닌가 싶다. 그래도 오늘 같은 건 귀엽고 즐겁지.
요즘 같은 환절기에 대해서도 애들은 모르는 게 많다. 대표적으로 이 날씨에 반팔을 입으면 춥다라든지. 하지만 장갑을 낄 정도는 아니라든지. 엄마가 춥다고 하는데 지금이 그래서 겨울인 건지, 이런 것도 궁금해 하고. 그니까 국이 싱거우면 소금을 넣으라는 조선일보의 그 유명한 리빙포인트 같은 것도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누군가는 정말 모를지도.
말을 아직 잘 못하는 둘째는 요즘 자기 머리 크기밖에 안 되는 장난감 변기에 앉아서 논다. 어린이용 변기 말고 크롱 인형이나 앉는 진짜 장난감 변기.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이제 어린이 변기를 내놔야 하는 때가 왔나보다. 이녀석 배변 훈련 시킬 일이 또 구만리다. 기저귀 안 차고 바지에 오줌 똥을 싸면 불편하다는 것도 애들은 배워서 아는 거다. 해보니 찝찝하고 엄마도 뭐라 하는 것을 반복 학습하면서 말이다.
뭐 그러다 나중엔 나보다 더 많이 아는 때가 금방 올 것이다. 우리 엄마 아빠가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는 것처럼 내가 모르는 일을 하고 있게 될 것이다. 그러면 또 내가 애들한테서 새로운 걸 배울 수 있으니 재밌겠다.
빨리 커라! 아니야 평생 귀여운 애기로 있어! 두 마음 다 진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