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
상상했던 동화 속 인형의 나라는 없다.
디즈니 만화 속 북유럽식 성들의 도시도 없다.
아주 보통의 회색빛 도시.
친절한 사람들이 있지만 쌀쌀맞은 사람들도 있고,
깔끔하게 차려입은 스칸디 신사들이 거리를 활보하지만 밤이 되면 빨간 스타킹의 창녀들과 머리에 기름을 잔뜩 바른 난봉꾼들이 도시를 점령한다.
발 디딜 틈이 없는 금요일 밤의 나이트클럽,
술에 취해 ‘월드 베스트 핫도그’를 입에 물고 차도에 널브러진 금발의 비만. 현실감이 넘실거리는 도시.
아메리카 판과 유라시아 판의 경계가 북쪽 작은 섬나라를 가른다.
땅속 깊이 박힌 수많은 열점은 지진과 화산 폭발을 바이킹의 후예들의 일상에 포함시켜버렸지만, 그로 인해 부글부글 끝없이 올라오는 지열은 남한 10배 면적의 섬나라 전역에 한이 없는 재생 에너지를 공급한다. 따뜻하다.
북위 66도의 겨울밤,
오로라 빛이 하늘에서 춤을 춘다.
음악에 소리가 없다, 보이지 않는 음표가 들린다.
바이올린 내지는 첼로 이런 연주로 짐작되는데
미술, 음악, 문학 기타 등등 하는 예술이라는 게 자연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되는 것이거나 자연을 모방하는 데 그치는 거라면 앞으로 더는 미술관이니 음악회니 하는 곳에 가지 않아도 좋겠다,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처음 오로라를 마주하던 그날 밤.
겨울 바람에 휘날리는 녹색 커튼 사이로 별이 하나 길게 떨어진다.
별똥별은 사실 눈 깜짝할 사이에 떨어지지 않는다.
인도의 바라나시나 멕시코의 꼴로라 해변. 과테말라의 아띠뜰란, 볼리비아와 페루 사이의 티티카카 호수 혹은 아이슬란드의 레이캬비크. 이런 곳에서 유성을 본 적이 있는 누군가라면 그 사실을 알지도 모른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나는 일이 어디 그리 흔한가- 하는걸.
가만히 멈춰 서서 가장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사물을 응시한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좀 더 느긋하고 여유 있게, 그래서 좀 더 정확하게 바라보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별똥별이 참 길고도 저렇게 아름답게 북쪽 하늘을 가른다. 슈우우우우웅— 하고
저 멀리 수평선 한가운데 박힌 깃발을 바라보고 열심히 달려가는 동안 나의 코앞 혹은 등잔 밑에서는 돌이키기 힘든 일들이 느긋하고 느긋하게 수시로 말을 걸며 일어나고 있었던 것 같아 재밌어졌다.
느긋하거나 급하거나 결국엔 떨어져 죽어버린 별.
너의 별이 가만히 죽더니
나의 별도 가만히 죽는다.
누구의 별도 아닌 별도 별수 없이 죽는다.
작은 죽음들의 꼬리 꼬리가 느긋이 흘러 내려가는 초록빛 하늘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소원을 빌지 않아도 소원이 이루어질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