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어떤 여행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키풀 Mar 27. 2024

일본 택시에 휴대폰을 두고 내렸다


고양이 간식을 사러 가는 길이었다. 이전의 일본 여행들에서 가까운 거리는 택시를 타는 것이 체력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이득이라는 것을 깨달아버린 우린 여행 둘째 날의 첫 행선지로 차 타고 5분 거리의 다이키 몰(mall)을 선택했다. (이 정도 거리라면 택시비가 1,000엔에서 1,200엔 정도 나온다)


일본의 쇼핑몰들은 거의 대부분 11시쯤 오픈한다. 일찍 일어난 탓에 갈 곳이 없었던 차에 다이키 몰의 오픈 시간이 10시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택시를 잡았다. 요금은 딱 떨어진 1,000엔이어서 현금을 지불했다. 도착하고 보니 오픈 10분 전이어서 같은 건물 내의 스타벅스라도 갈까 하며, 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휴대폰이 없었다. 현실을 부정하며 (평소엔 절대 폰을 넣지 않는) 바지 뒷주머니를 확인했다. 쿵쾅대는 심장을 붙들고서 가방에 든 물건도 하나하나 꺼내어봤다. 없다. 택시에 두고 내린 게 분명했다.


사색이 되어 남편을 쳐다보자, 일단 전화를 계속 걸어보자고 했다. 건너편에서 누군가 받아주길 간절히 바랐지만 긴긴 신호대기음만 들려왔다. 또 한 번, 또 한 번. 계속해서 전화를 걸었지만 묵묵 부답이었다. 혹시나 기사분이 알아채고 돌아오시진 않을까 싶어 택시에서 내린 장소를 떠나지도 못했다. 10통쯤 걸었을까, 남편은 지금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일단 계획했던 걸 하면서 계속 전화를 해보자고 했다. 맞는 말이었다. 축 처진 어깨로 건물로 들어가서 마음은 콩 밭에 가 있는 채로 고양이들이 좋아하는 간식을 주섬주섬 골라 들었다.


집념의 전화연결


간식 한 봉지 들고, 남편 한 번 쳐다보길 반복하던 그때 저 뒤쪽에서 남편이 "모시모시!" 하는 것이 아닌가. 냉큼 전화를 받아 들자 휴대폰을 택시에 두고 내리지 않았냐며, 여긴 택시 회사이니 주소를 알려줄 테니 적을 수 있겠냐는 것이다. 오, 신이시여!


한자 주소를 받아 적을 수가 없어서 고객센터의 직원에게 다가가 전화를 좀 받아달라고 부탁했다. 택시 회사 직원 분과의 통화로 내 사연을 들은 그녀는 '아, 고객님께서 그런 사연이. 그렇군요.' 하며 건너편에서 불러주는 주소를 받아 적어 나에게 건네주었다. 빨간펜으로 적어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택시 회사 주소가 적힌 메모지




절대 잊지 못할 '미나미 택시 회사'는 구글 맵에서 검색해 보니 지하철 세 정거장 거리였다. 이 정도면 택시비가 2500엔에서 3000엔쯤 된다. 마음이 급하니 일단 택시를 타고 가기로 했다. 택시를 타서 기사님께 주소를 보여드리자 택시회사에는 왜 가냐고 물으셔서 또 구구절절 사연을 설명했다. 휴대폰을 찾아서 다행이라며 10분 전 정도면 돌아와서 줄 법도 한데 택시 회사에 맡겼네요,라는 말을 덧 붙이셨다. 이러나저러나 난 휴대폰을 찾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택시 회사 사무실로 들어가서 휴대폰을 찾으러 왔다고 말하자 직원분이 '와하하' 웃으시며 지퍼백에 담긴 휴대폰을 보여주셨다. 찾아서 다행이네요, 하시며 분실물 접수 종이에 이름과 사인을 부탁했고 확인 용으로 신분증을 복사해야 한다고 해서 여권을 건넸다. 절차를 다 마치고 웃는 얼굴로 배웅해 주는 직원을 뒤로하고 건물 밖으로 나오자 시원한 한숨이 터져 나왔다. 한 시간 동안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해외에 나가서 어떤 '사건'을 직접 겪게 된 것이 처음이었다. 잊지 못할 것이다. 이번엔 운 좋게 잃어버린 휴대폰을 찾을 수 있었지만 두 번째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남은 여행 일정 동안 휴대폰을 얼마나 확인했는지 모른다. 시간이 지나면 잊고선 또 평소처럼 아무 생각 없이 다니겠지만 한동안은, 여행을 가게 되면 휴대폰을 몇 번이고 확인하게 될 것이다.



별 일이 다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