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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Nov 06. 2023

모든 일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이혼도 쉽지 않습니다 1

고작 그런 일로 이혼을 결심한단 말이야? 라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아주 작은 다툼이었다. 돌이켜 보면 불과 며칠 전에도 그런 다툼은 있었고,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기도 했다. 그런데 다른 점이 있었다. 그렇게 계속 나에게 결혼생활에 대한 회의가 쌓여 가고 있었다는 점이다.


어느 평범한 토요일이었다. 아내와 나 모두 하루 종일 집에서 시간을 보내게 된 날. 나는 거실에서 티비를 보았고, 아내는 안방에서 태블릿으로 다른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안 그래도 결혼생활에 대한 회의가 많은 나였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루 종일 같은 집에 있으면서 이렇게 아무 얘기도 안 하는 부부가 정상적인 가족일까'


그런 와중에 아내가 저녁을 먹겠다고 밖으로 나왔고, 나는 뭐라도 말을 붙여 보자 싶어 아내가 최근까지 시청한 프로그램 얘기를 꺼냈다. 그러나 아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아니 오히려 퉁명스러웠다고 봐야 하나.


'나는 나에게 말 걸어 주는 게 아니라, 끼니 챙겨 주는 것에서 사랑을 느껴'


거기서부터 틀어지기 시작했다. 끼니와 관해서라면 나도 할 말이 많은 사람이다. 당연히 아내가 내 밥을 챙겨 주려고 결혼한 건 아니다. 나도 아내의 밥을 그렇게 잘 챙겨 주지 못한다. 그런데 다툼이 있기 며칠 전엔 혼자서 저녁을 먹다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동네 GS마트에서 떨이로 파는 저녁을 먹지 않는 날이 며칠이나 되려나 하는 생각을. 그리고 이런 게 내가 생각했던 결혼생활인가 하는 생각을. 그치만 아내에게 아무 말도 못했다. 나도 아내의 끼니를 챙겨 주고 있었던 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데 이 날은 한마디 안 할 수가 없었다.


'너도 어차피 내 밥 안 챙겨 주잖아'


아내는 그렇게 다툼이 있었지만 며칠 지나면 또 괜찮아지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다.




우리 부부는 지난 봄의 초엽에 코로나 이후 첫 해외여행을 다녀오면서 크게 다투었다. 아내는 여행 내내 뭔가 못마땅해 했는데, 아마 무던한 남자였다면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었겠지만 웬만한 여자보다도 더 예민한 나는 그런 기분을 알아차렸고 내내 마음이 무척 불편하던 차였다. 아내의 못마땅해 하는 태도는 나날이 심해졌고 귀국할 때쯤에는 나도 더 이상 참지 못할 정도였다.


결혼생활을 이어 가면서 이혼을 머리에 떠올렸던 게 나는 셀 수 없이 많지만, 아마 아내는 그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내는 그냥 이혼을 하기보다는 부부상담이라도 한 번 받아보자는 제의를 했고 그래서 우리는 지난 봄 내내 10회에 걸쳐 부부상담을 받았다. 부부상담도 부부상담이었지만 처음 다퉜던 그때에 비해서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감정도 많이 사그라들었고, 둘 사이에 대화도 많이 했다. 그러면서 관계가 상당히 회복되어 '다시 이렇게 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결혼생활에서 시큰둥한 아내의 일상은 그대로였다. 씀씀이가 있을 때면 '내 돈으로 사는 거잖아'라며 생색내기 바빴고, '나는 내 맘대로 할테니 너도 내 눈치 보지 말고 네 맘대로 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었다. 같이 사는 가족이라면, 서로가 서로의 눈치를 보면서 지내는 게 맞지 않나... 하는 건 나의 잘못된 생각일까. 우리 부부는 가족이라고 하기엔 부족하고 어찌 보면 거주공동체다. 아내는 회사가 먼 까닭에 아침 7시 반도 되기 전에 나가서, 퇴근시간엔 차가 막히는 탓에 밤에는 거의 10시에나 들어온다. 회사에서 회식이 있다거나 하면 이보다도 더 늦고. 주말에도 교회에 가고 기타를 치고 여러 가지 생활로 바쁘다. 그것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그냥 같이 사는 가족으로서 우리는 하는 것이 무엇이 있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것뿐이다.




우스꽝스럽지만 처음 결혼을 결심하는 데에는 집주인의 영향도 컸다. 장모님께서는 빨리 결혼을 했으면 하는 눈치셨지만 아내와 만난지는 아직 반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을 때였다. 물론 둘 다 나이가 적지는 않았지만. 원래 나는 그때 살던 집의 계약기간을 다 채우고 나오면서 결혼하면 되겠다는 생각이었다. 아마 그때까지 사귀었다면 아내와 결혼하지 않았거나, 헤어졌을 확률이 더 높았겠지만. 그런데 갑자기 집주인이 이사비를 줄테니 집을 빼 달라고 하는 것 아닌가. 엉뚱한 생각인데 그때 그런 생각을 했다. '아, 이 사람과 결혼할 팔잔가?'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의 계약기간이 마침 오는 2월이면 끝난다. 실은 우리에게는 아직 계약갱신청구권이 1회 남아 있어서 아까운 마음은 없지 않은데, 이렇게 아내와 분쟁이 생기고 나니 이사하는 날에 맞추어 서로 갈라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아내는 그냥 지나가는 싸움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나는 기어코 '이혼하자'는 말까지 끌고 왔다. 또 태어나서 처음으로 [협의이혼의사확인신청서]라는 것도 작성해 보았고. 내 부분은 이미 작성이 끝났다.


아내는 구태여 '이혼하자'고 하진 않지만 내가 이혼을 밀고 나간다면 망설이진 않겠다는 반응이다. 아마도 지난 봄을 거치면서 많은 생각을 한 것 같다. 그때 이혼했다면 아내도 상당히 힘들어 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미 한 차례 그런 시간을 보내고 마음이 많이 단단해진 느낌이다. 또 내가 느끼기에 가장 중요한 부분은 아마도 나에 대한 감정이 많이 식었겠지. 우리는 더 이상 신혼 때 같지 않다. 우리라고 할 수는 없다. 아내가. 오히려 내 경우엔 시간이 흐르면서 아내에게 정서적으로 더 많이 의존하게 된 것 같은데.




이제는 좋았던 시간을 떠올리기엔 너무 옛날이라는 생각도 많이 했지만 막상 이혼하겠다고 나서니 좋았던 기억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음을 느낀다. 물론 머리로는 알고 있다. 다시는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겠지. 아내는 몇 번이나 그렇게 의사를 표현하기도 했고.


살면서 오래 연애한 적도 없지만, 누군가와 이렇게 7년에 가까운 시간을 비록 주거공동체에 머물렀다고 할지라도 같이 보내 본 적이 없다. 돌이켜 보면 군대에서 같은 방을 쓰지도 않고 그저 가까이에서 지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1년을 같이 지낸 선임이 떠날 때, 그리고 2년을 같이 지낸 후임들이 전역할 때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던가. 나라는 사람의 캐릭터를 생각해 보면 이혼하겠다면서도 그렇게 단호해지지 못해는 게 이해가 되기는 한다.


머리로는 알고 있다. 지금 이혼하는 게 아마도 최선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마음은 그렇지가 못하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그래서 난 좋아하는 여자들에게 차일 때도 매몰차게 거절당해야 끊어낼 수 있었는데. 내 스스로는 별로 그렇지 못했다. 아니면 내가 정말 할 수 있는 데까지 해 봤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였던가.


시간을 돌이켜 아내와 결혼했던 때로 돌아간다면 아마 아내와 결혼하지 않는 게 최선의 선택일 것이다. 그게 아니라도 3년 반 전에 아내와 '사네, 마네' 하면서 다퉜을 때로 돌아가더라도 이혼하는 게 최선의 선택이었겠지. 그때는 내가 젊었다. 만약 다시 봄으로 돌아가더라도 이혼하는 게 더 나은 선택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그때는 힘들고 괴로웠겠지만 지금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을 회복했을테니까.


그런데 지금의 나는 중년의 아저씨가 되었고, 내일의 명랑하고 시원할 나에 대한 기대보다도 오늘 당장 마음 아프고 괴로워할 내 자신이 너무 힘들다. 주변에 보면 이혼하면서 다들 해방감과 시원함을 느꼈다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던데, 정말 그 사람들이 조언한 것처럼 이혼은 '행복해지려고 하는 게 아니라 살려고 하는 것'일까. 그럼 난 아직은 살 만해서 그런 것일까. 그러나 이렇게 살다가는 나도 결국 언젠가는 '살려고' 이혼하고 싶다는 말을 꺼내게 되는 날이 올 것 같은데.


아내에게 이혼서류를 준비해 오라고 말했는데, 밤에 집에 가면 이야기를 좀 나누어 보기로 했다. 서로 어떤 이야기를 하게 되려나. 그리고 이혼서류는 준비해 오려나.


예민하고 섬세한 사람으로 사는 건 참 힘들다. 하긴, 그렇지 않았으면 처음 결혼하고 싶었던 그 친구와 결혼에도 성공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예민하고 섬세한 성격이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을텐데. 그런 사람과 결혼했어야 했는데, 역시 이번 인생은 망한 건가.


이제, 집에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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