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니 정확히 한 달이 되었다. 광복절을 앞두고 중국에 주재원으로 나가 있는 군대 동기가 사흘 휴가를 내고 우리집에 4박 5일 동안 머물렀다. 그때 동기에게 '이혼하니 장점도 있네. 아내가 있었으면 못 왔을 거 아냐' 하고 우스개를 날렸던 기억이 난다.(실제로 난 그렇게까지 마음에 여유가 있진 못했지만) 동기는 일요일에 와서 월화수 사흘 동안 병원 투어를 하고 광복절날 새벽에 다시 중국으로 출국했다. 짐 가방이 두 개였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형수님과 아이에게 줄 짐으로만 가득 채운 채. 비교적 자주 만나는 군대 동기는 나를 포함해서 네 명이다.(여러 개의 군대 모임이 있지만 이 모임은 그렇다.) 이번에 친구가 왔을 때는 내가 상담이 있어 네 명이 한 번에 모이지는 못했고 세 명씩은 여러 번 모였는데, 한 번은 나를 빼고 셋이서 모였을 때 두 명의 유부남이(한 친구는 아직 미혼이다.) 결혼생활에 대해 긴 한탄을 늘어 놓은 모양이다. 동갑내기 동기와 광복절날 아침에 같이 집에서 나가는데 그 친구가 '아, 유부남들 왜 이렇게 불쌍하냐. 진짜 다시 한번 느끼지만 결혼은 진짜 아닌 것 같애' 이러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전날 셋이서 모였을 때 들었던 얘기를 내게 줄줄이 읊어 주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말이 전조였을 줄은.
목요일에 막 회사에 도착했더니 중국에 있는 동기에게 메시지가 왔다. '잠깐 통화돼?' 세상사의 잡일과 관련한 많은 것들을 늘 내게 물어보고는 했던 터라 이번에도 분명 뭐 집이나 세금, 보험 등등의 일을 상의하거나 물어보려고 내게 연락을 했겠지 싶었는데, 이번에 받은 연락은 그동안 받았던 연락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honest야, 나 이혼할라고' 처음엔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카카오톡 보이스톡으로 통화하다 보니 감도가 좋지 않기도 해서 나는 나의 이혼문제를 이야기하는 건가 싶었다. '아니, 내가 이혼한다고'. '네가? 네가 왜?'
브런치에 나의 이혼 이야기를 서른 편도 넘게 연재했듯이 이혼이라는 것이 어느 날 그렇게 갑자기 오지 않는다. 오래도록 켜켜이 쌓였던 것이 터지는 셈이다. 친구도 한 시간 가까이 그간 있었던 여러 가지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러다가 그 많은 사정들이 한 번에 터진 셈이었다. 나와는 다르게 친구는 자신은 별로 힘들지 않다고 했다. 이미 마음 정리는 다 끝났고, 얼른 좀 끝났으면 좋겠다고. 그런 이야기를 듣는 내 마음은 편하진 않았다. '아, 아내가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싶어서. 솔직한 나의 마음으로는 진심으로 말리고 싶었다. 아마 한국에 왔을 때 이야기를 했다면 나는 전심전력을 기울여 말렸을 것이다. 그러나 수화기 너머로만 소통할 수 있는 마흔이 넘은 친구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많지 않았다.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 주고, 결국 늘 그랬듯이 친구가 닥친 문제와 관련해 현실적인 조언을 덧붙여 줬다. 그리고 변호사도 한 명 소개해 주고. 내게 전화했을 때 친구가 아내에게 이혼을 통보한지는 열흘쯤 지났을 때였다. 이미 친구의 처가에서는 변호사도 알아보고 있다고 했고, 이혼을 말리기도 했지만 조건도 제시한 모양이었다. 한국에서 외국으로 주재원을 나가게 되면 주재원 수당으로 급여가 급격히 오른다. 특히 지금 아이가 국제학교에 다니고 있고 그 학비를 회사에서 보조해 주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친구는 이런 부분과 관련해 현실적인 고민이 많았다. 솔직한 내 마음은 친구를 설득하고, 부부상담이라도 한 번 받게 하고 싶었지만 한국도 아닌 외국에서, 그걸 전화통화 몇 마디로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다. 결국 어찌 보면 나는 부부가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친구에게 조언을 해 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 친구에게도 말했지만, 참으로 씁쓸한 마음이 든다.
군대 동기지만 친구는 내게 한 살 형이다. 나보다 더 힘든 부대에서 군생활을 했고, 사회생활 경험도 길며, 대학도 중국에서 나왔고, 실제로도 나보다 한 살 많으니 이런저런 생각과 고민을 나보다도 훨씬 더 깊이 했을 것이다. 내가 무슨 신도 아닌데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게 정말 속된 말로 '오버'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전화를 끊고 나서 너무나도 불편한 마음을 어쩔 수가 없었다. '혹시 나 때문인 건 아닐까?' 당연히 내가 이혼한 모습이 친구의 이혼에 100% 영향을 미치진 않았을 것이다. 내가 뭐 그 정도로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그러나 아내와 이혼을 하고 나서 그런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이혼이라는 선택지 자체가 없는 삶을 살았어야 했는데'. 브런치에도 여러 번 적었지만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아내에게 세상엔 '이혼'이라는 선택지도 있다는 걸 알려 주고 조장한 건 나였다. 나는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지금은 그게 주제가 아니니 잠시 제쳐 두고. 광복절 연휴에 친구가 왔을 때 4박 5일이나 머물면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 정말 많이 나누었고, 개중에는 물론 실없는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했었지만, 친구가 이혼을 고민하고 있다는 느낌은 전혀 받지 못했다. 오히려 형수가 친구가 한국에 다녀간다고 우리집으로 택배를 여러 박스 시켰을 정도였고, 아이 교육과 관련해서 중국에 계속 머물러야 할지, 한국으로 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처가 가까이에 계속 머무를 수 있을지 등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었다. 돌아보면 불과 몇 달 전 지난 겨울에도 친구의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중국에 가셔서 몇 주 머물다 가셨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내게 장인어른과 같이 왔다 가라고 권유했던 것도 생각 나고.
어쩌면 나로 인해 친구가 '이혼'이라는 선택지를 현실적으로 선택 가능한 선택지 위에 놓아 두게 된 것 아닐까. 물론 우리 나이가 이미 마흔을 넘었으니 주변에 이혼한 사람이 나뿐인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지난 겨울부터 내가 힘들었던 시간 동안 많은 연락을 주고받았던 친구고, 이번에 한국에 와서 내가 홀로 잘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이혼'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치니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
나에게도 이혼한 가까운 형들이 있다. 자주 연락하고 만나는 형들 가운데 두 명의 형이 이혼했는데, 아무래도 이혼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내가 이혼하기 전에도 이혼이라든지 결혼생활의 부정적인 면에 대해 이야기를 좀 더 많이 나누게 되는 편이었다. 동생이 내가 이혼을 결정하고 나서 '그래서 친구를 잘 사귀어야 돼'라는 말도 했었는데, 솔직하게 말하면 다 내 잘못이지만 나 또한 내심 그런 마음이 없지 않았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정말 싸가지 없는 놈이고 인간된 도리도 없는 놈이 되는 셈이지만, 이혼한 사람들을 자주 만나면서 나도 거기에 영향을 많이 받는 바람에 그런 말을 꺼내게 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혼자 몰래 많이 했다. 실은 내가 이혼하는 과정에서 그 두 사람이 먼저 이혼했다는 이유로 내게 가장 많은 위로를 해 주고 하소연을 들어 주었음에도. (사람이란 참 이렇게 고마운 줄을 모르는 동물인가.) 내가 그런 경험이 있다 보니 더욱 친구의 이혼에 내 마음이 불편했다. 나도 안다. 나보다 형이고, 오랫동안 소통이 많이 단절된 채로 지냈고, 그런 상황에서 뭔가 트리거가 되는 일까지 있었으니 이혼을 결심하게 되었겠지. 본인이 후련하다고 말할 정도니 말 다했다. 그러나 정말 나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광복절 연휴 때 우리집에 와서 머물다 가지 않았다면, 나와 같이 4박 5일이나 있지 않았다면 이혼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친구에게 내가 괜히 '이혼'이라는 카드를 보여 준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 지금까지도 계속 마음이 불편하다.
또 현실적으로 깨닫게 된 것도 있다. 그렇구나. 사람이란 경험을 직접 해야 알 수 있는 동물이라고. 나도 내가 이혼하게 되었을 때 결국 가장 많이 찾았던 사람은 먼저 이혼을 경험한 그 두 형이었다. 다른 친구들이 하소연을 잘 들어 주기도 하고, 같이 시간을 보내며 위로해 주기도 했지만, 본인이 직접 경험하지 못한 일인데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 이상으로 공감해 주는 게 쉽지는 않았을 거다. 물론 이혼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다 같지 않다. 두 형 중에 한 명은 정말 절실하게 이혼을 원해서 했고 실제로 혼인기간이 없다시피 하기 때문에 이혼한 뒤에 무척 후련해 했다. 나와는 아예 다른 상황인 셈이다. 다른 형은 이혼을 원하진 않았지만 형수와 마찰이 많았던 까닭에 몇 달 지나자마자 '그래 차라리 잘됐다'고 말한다. 늘상 전 형수를 '오랑캐'라고 지칭하면서. 다들 나와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이라는 큰 범주의 같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기에 나는 하소연도 많이 했고, 도움도 많이 받았다. 그때 한 형에게 '이 신세를 다 어떻게 갚아요'라고 말했을 때, 그 형이 자신에게 말고 다른 사람에게 갚으면 된다고 이야기했던 게 떠오른다. 그렇구나. 그렇게 되는 것인가.
친구의 연락을 받고 나서 앞으로 내 주위에 많은 친구들이 만약 비슷한 위기에 닥치게 된다면 결국 내게 연락하고, 나를 찾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게 이번에 중국에서 다녀간 친구처럼 당장 일어날 일은 아니기에 그때쯤 되면 내 마음도 회복되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내 주위에 있는 친구들 가운데 내가 비교적 이르게 이렇게 된 셈이니 상당히 많은 친구들에게 시달리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건 이혼하기 전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그러나 뭐 어쩌겠는가. 오지랖하면 또 honest인 걸. 그리고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 걸. 그게 내가 감당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나의 숙명(?)이겠지.
사람마다 다 사연이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이혼한 뒤의 삶도 다를 것이기 때문에 내가 온전히 누구의 삶 앞에서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불과 얼마전 이혼을 경험해 본 나는 어떻게 해서든 말리고 싶고, 상대가 어떻든(물리적 폭력을 가하거나 범죄자가 아니라면, 심지어 범죄자라 해도 어떤 범죄냐에 따라) 충분히 다시 노력을 통해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도 이미 벌써 마흔둘이고(이젠 셋에 가깝고) 앞으로 어떤 일이든 겪게 될 친구들은 그보다 나이가 더 많을테니 주제 넘게 참견하기가 쉽지 않겠지. 그리고 나도 이혼문제에 부딪치고 나서 친구들에게 '미리 상의 좀 하지 그랬냐'는 면박을 많이 받았었는데,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과 생긴 문제를 그보다 먼 사람들과 사전에 상의한다는 게 참 쉽지 않다. 아마 다른 친구들도 그럴 것이다. 행복하고 즐겁게 잘 사는 모습만 봐도 부족할 판에, 안 그래도 부정적인 내게 앞으로 더 많은 부정적인 이야기 들리겠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참 좋지 않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들리는 건 나일테니, 내가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겠지만.
사는 게 참 쉽지 않다. 내 한몸 건사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이 세상은 함께 사는 세상이라 다른 사람들과 짐을 항상 나눠 져야 한다. 물론 그들도 내 짐을 나눠 져 주기도 하지만, 그러고 보니 늘상 그 점은 쉽게 잊네. 친구가 지금의 일을 잘 헤쳐 나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대신 짊어졌으니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동화책의 마지막처럼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마무리되는 결말이었으면 좋겠다. 나의 몇 안 되는 장점 가운데 하나는 사촌이 땅을 사도 배 아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너들 다 잘 살아도 나 배 아프지 않으니까, 부디 꼭 잘 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내도 이왕 날 떠난 김에 행복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