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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Sep 21. 2024

괜찮고요, 괜찮지 않습니다

무상사에서 보낸 삼박 사일

명절 연휴가 반갑지 않게 된 것은 결혼하고 난 뒤부터다. 예전엔 명절 연휴가 길면 긴대로 본가에 가서 긴 일정을 모두 보내다 오곤 했는데, 아내가 생기니 그럴 수가 없었다. 시가에서 오랜 시간 보내기를 좋아하는 며느리가 어디에 있겠는가(있긴 있겠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나 또한 마찬가지다. 처가에서 며칠씩 머무르라고 하면 사위는 백년손님이라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내가 그랬단 건 아니고) 그 또한 편치 않다. 그래서 나와 아내는 지금도 기억이 나는데 결혼하고 나서 맞이한 첫 명절을 각자 보냈다. 지금 생각해도 엄청난 신세대이지 않을 수 없다. 그때 추석이 개천절에 겹쳐서 거의 8박 9일급의 일정을 자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공식적인 추석 연휴가 시작하기 전까지는 그냥 아내와 둘이서만 보냈고, 공식적인 추석 연휴는 둘이서 함께 양가에서 1박씩을 머무른 뒤에, 남은 날짜는 각자의 집에서 보내고 우리집에서 만났다. 회사로 돌아와 이 얘기를 했더니 직원들이 '엄청나다'는 반응을 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설 명절도 아내의 이혼 결심이 선 뒤라 따로 보냈었지만, 공식적으로는 이혼하고 맞는 첫 명절이었다. 4박 5일이나 되는 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나 몇 주 전부터 고민했다. 그러다가 내린 결론이 토요일은 회사에 출근해서 일하고, 일요일부터 수요일까지 3박 4일 집에 다녀오면 되겠다는 것이었다. 다시 총각 때의 일정으로 거의 돌아간 셈이다.


브런치에 적었지 싶은데 지난 삼일절 연휴는 낙산사 템플스테이로 보냈었다. 실은 그때 처음부터 낙산사를 가려던 것은 아니었다. 아는 어른께서 [무상사]라는 절을 추천해 주셔서 혹시 무상사에서 2박 3일 머무를 수 있는지 먼저 사찰에 문의를 했는데, 사찰 쪽에서 스님들이 수행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그때는 템플스테이를 받지 않는다는 답장을 보내왔었다. 아쉬워 하면서 다시 고르고 골라 선택한 절이 낙산사였고, 아마 다른 글에 있겠지만 그때의 템플스테이는 썩 만족스럽지 못했다. 아내와의 문제로 인해 마음이 너무 힘들어 템플스테이보다는 실제로 먹는 약에 훨씬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그랬는데 한가위 연휴를 일주일 앞두고 생각지도 않게 무상사에서 먼저 내게 메일을 보내왔다. 아마 홍보 메일이었을 것이리라. 추석 연휴에 특별히 참선 정진 프로그램을 한다고 했다. 일요일부터 화요일까지 참여해도 되고, 토요일부터 화요일까지 3박 4일 참여해도 되었다. 자세한 일정은 적혀 있지 않았고 가격도 상당했기에 고민이 되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 끝에 '갈까 말까 하면 가라'는 말을 좇기로 했다. 마침 동생네 가족이 추석 전날 와서 당일날 오후까지 있는다고 했기 때문에 집안이 썰렁할 걱정도 덜었다. 부모님께도 말씀드리고 이번 한가위 연휴는 무상사에서 템플스테이를 참가하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다. 지난 12년을 거치며 내 인생 여섯 번째이자 마지막(왜 마지막인지는 아래에) 템플스테이에 참가하기로 한 것이다.




무상사는 [선]을 중심으로 하는 사찰로 외국인 수행자들이 많고 템플스테이 참가자 또한 그렇다. 처음에 내게 추천해 주신 분도 그래서 한 번 다녀오라고 하셨던 것이다. 물론 지금은 어느 절을 가도 쉽게 외국인 참가자를 볼 수 있기는 하지만, 이곳은 그 비중이 남달라서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템플스테이 기간 동안 영어를 듣는 일이 한국어를 듣는 일보다 더 많았다고도 할 수 있다.


지금의 템플스테이는 많이 관광 프로그램화 되어 이것저것 많은 체험을 시키고 이런저런 프로그램을 운용한다. 지난 삼일절에 다녀왔던 낙산사 템플스테이 또한 그랬다. 예불을 드리는 건 당연한 것이지만 그 외에 남는 시간에 이러저러한 것을 만들기도 하고, 차담도 가지며 그렇게 시간을 보내도록 운용되고 있다. 이에 반해 무상사에서 보낸 3박 4일은 철저하게 수행에 기초한 시간이었다. 정확하게 하루에 좌선만 7시간 30분을 하도록 한다. 새벽 4시에 일어나면 먼저 108배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리고 아침예불을 드리고 나면 30분의 좌선 시간이 있다. 아침을 먹고 이러저러한 일정을 소화한 뒤엔 오전 좌선 2시간이 있다. 점심을 먹고 나면 본격적으로 오후 좌선 3시간을 하고, 저녁을 먹고 나면 하루를 마무리하며 저녁 좌선 2시간을 한다. 정확히 좌선 시간만 하루에 7시간 30분이다. 요즘은 일부 사찰에서는 운력시간에 실제로 일을 시키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나도 한두 곳에서는 경험해 보았지만 무상사는 달랐다. 무상사에서는 실제로 정말 일을 한다.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절에 있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 같이 그렇게 운력시간에 일을 하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둘째 날 오전(첫날은 저녁에 들어가므로)까지는 무척 피곤했던 기억이 난다.


참선이란 무엇일까. 나는 잘 모르지만 아마 모든 생각을 비워내는 것일 거다. 그런데 그런 수행을 거의 해 본 적이 없는 내게 생각을 비워낸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지난 봄 낙산사 템플스테이 때도 명상이나 참선을 시킬 때, 갖은 마음이 다 떠올라 불안하고 힘들었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실은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과 다르게 요즘 나는 많이 괜찮아졌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상담도 그만해도 괜찮겠다는 생각도 했던 것이다. 사람들을 만나고, 일을 하며 일상을 보내고,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면서 쉬다 보면 예전처럼 아내 생각이 그렇게 많이 나진 않는다. 물론 가끔씩은 가슴을 후벼 파는 일이 없지 않다. 가끔씩 그런 일이야 뭐 어쩌겠는가. 그래도 일상으로 많이 돌아왔고, 많이 회복했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었다. 무상사 템플스테이 참가를 망설였던 것도 그런 까닭 때문이었다. '나는 괜찮은데, 이걸 꼭 가야 하나'. 그런데 아니었다. 첫날부터 도착하자마자 2시간 좌선을 하고, 이튿날부터는 하루에 7시간 30분씩 좌선을 하다 보니 내 머릿속은 온통 아내와의 결혼생활에 대한 추억과 후회, 회한, 미련 이런 것들로 가득찼다. 사흗날에는 실로 오랜만에 아내를 떠올리며 좌선 중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좌선을 하다 보면 중간에 스님이 죽비를 들고 돌아다니시며 졸고 있는 사람의 양 어깨를 한 대씩 치시는데, 수행을 하시는 스님 가운데에도 졸음으로 자세가 아예 망가진 분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3박 4일 동안 그럴 일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머릿속 가득 아내 생각이 가득 차서 졸 만한 여유가 없었던 셈이다.


그러려고 하는 좌선은 아니겠지만 비로소 깨달았다. 아, 나는 괜찮아진 것이 아니었구나. 그냥 괜찮아진 줄로 착각하며 살고 있었구나. 이 점이 좋았다. 아니 괜찮은 줄 알았는데, 아내 생각에 눈물을 흘리면서 무엇이 좋았냐고? 무슨 마조히스트야? 그게 아니다. 낙산사에 가서도 명상을 했다. 작년 봄에 아내와 이혼 얘기가 오갔을 때에 봉정사에 가서도 명상을 했었고. 그런데 봉정사에서나 낙산사에서는 여러 프로그램이 있어 명상 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았다. '아, 나는 힘들구나', '아, 나는 괴롭구나'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명상이 멈춘다. 그런데 전부 더해서 계산해 보니 무상사에서는 좌선한 시간만 3박 4일 동안 19시간이 된다. 아침, 저녁으로 예불을 한 시간은 빼고 순수하게 좌선한 시간만 그렇다. 계속 힘들고 괴롭고, 예전 생각만 할 수 없었다. 물론 참선이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라고 주어진 시간은 아니지만, 사람이 19시간이나 앉아서 생각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머릿속이 정리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어쩌면 생각하는 것도 힘들기 때문에 피로해서 스스로 정리가 되었다고 착각하는 것일 수도 있고. 좌선하며 중간중간 머리에서 열기가 솟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아마 참선하면서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을텐데 나야 수행자가 아닌 일개 필부일 뿐이니 어쩌겠는가.


이제 다 지나간 일이다. 어찌 돌이킬 수 없는 일이고. 가슴이 아파도 할 수 없다. 그걸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은 가정이고 추억일 뿐이지, 지금의 현실은 아니지 않는가.(이 당연한 것을 깨닫겠다고 3박 4일이나 참선을 했다고?)




첫날 무상사에 도착했는데 무척이나 외로운 마음이 배가되었다. 나도 휴대전화를 늘 잡고 사는 편인데 휴대전화를 반납하니 세상으로부터의 모든 연락과 단절된 셈이 아닌가. 아는 사람도 한 명 없고, 심지어 템플스테이에 온 사람이나 절에서 수행하시는 스님 가운데 많은 분이 외국인이었다. 조용히 수행할 것을 곳곳에 붙여 두어 사람들과 함부로 잡답도 하지 못하다 보니 더 외롭고 썰렁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예전에 아이슬란드 여행을 갔을 때도 그렇게 여행을 즐기지 못했다. 내가 선택해서 떠난 여행이었건만 지구 반대편에 나 혼자 있는 것이 그렇게 외롭고 서운할 수가 없었다.(그러고 보니 그때도 추석 연휴였구나.) 그래서 생면부지의 외국인들에게 한국에서는 한가위 연휴라 가족, 친구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있는데 난 여기에서 너무 혼자 외롭고 쓸쓸하다고 푸념을 했던 기억이 난다.(난 아는 사람들에게만 그런 줄 알았는데 모르는 사람에게도 그러는구나.) 귀국을 이틀 앞두었을 때였나. 갑자기 어떤 차가 핸들을 급하게 꺾어서 한 전망대 쪽으로 들어왔다. 운전을 너무 위험하게 한다고 생각했는데 여행 초반에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났던 한 캐나다 아이였다. 그 친구가 나를 보고 반가워하며 차를 돌린 것이었다. 그 친구의 '지금은 기분이 어떠냐'는 말에 내가 '내일 귀국해서 지금은 너무 좋고 신나'라고 밝은 표정으로 대답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아내는 홀로 영국에 8년을 사는 동안 한국에 3번밖에 다녀가지 않았을 정도로 엄청 독립적인 사람이다. 그렇다 보니 무언가 정체되어 있는 걸 싫어하고 새로운 도전을 즐긴다. 그런데 내가 새로운 도전을 꺼리는 듯 보여서 그게 아내에게는 무척 갑갑한 요소였던 듯했다. 결혼하고 나서 아내와 일주일 이상 여행을 떠났던 적은 두 번뿐인데 신혼여행과 그리고 결혼 2년차에 같이 프랑스로 여행을 떠났었다. 돌아보면 정말 좋은 여행지들이지만 과연 내가 혼자 갔어도 그렇게 신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까. 어쩌면 아내는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 긴 여행 동안 편안함을 느꼈던 건, 아내가 나와 함께했기 때문이었다. 참선을 하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 이혼 과정에서 아내로부터 '새로운 것에 도전하지 않는 것에 따른 갈증' 이런 것을 많이 지적받았는데, 아내가 본 것이 옳았다. 멀지도 않은, 심지어 국내인데, 절에 이렇게 홀로 와 있다는 것에 내가 외로움과 괴로움을 느낀다는 것에서 내가 무척 연결과 친숙함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란 걸. 그래서 템플스테이 또한 이번이 마지막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막 들어갔을 때는 외롭고 힘든 마음이 들었는데, 그렇게 생각했다. 정말 힘들면 그냥 지금 나가도 되는 것 아니냐고. 당장 나갈 수도 있으니 정말 힘들면 그냥 나가자. 그리고 생각보다 3박 4일이라는 시간은 금방 간다. 그렇게 생각하며 스스로 위안을 삼고 버텼다. 그랬더니 하루이틀 지나면서 차차 나아졌다. 같이 지내는 사람들과도 조용조용히 말도 한두 마디씩이라도 나누기 시작했고. 또 3박 4일이라는 시간은 정말 금방 가기도 한다. 그렇지만 처음 들어갔을 때의 그 외롭고 괴로운 마음은 굳이 다시 내가 돈을 지불해 가면서까지 겪고 싶진 않다.




무상사에서는 그간 경험한 다른 템플스테이들과는 다르게 승복을 입고 지냈다. 내가 승복을 다 입어 보다니. 놀라운 경험이기도 했고, 무상사에서 지낸 시간은 그렇게 비록 3박 4일이지만 템플스테이 같은 체험이 아니라 실제로 출가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이미 위에도 적었지만 다른 템플스테이들이 프로그램을 할 시간에 이곳에서는 온전히 참선만 했다. 물론 그 참선도 프로그램이라고 하면 프로그램일 수 있겠지만. 그렇다면 단일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아주 독특한 템플스테이인 셈이 된다.


실제 스님처럼 지내는 것이, 정말 수행자처럼 지낸다는 것이 별로이기도 했지만 의미 있었다. 어느 절을 가든 밥을 남기지 말라는 이야기를 듣고 실제로 템플스테이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각자 먹을 만큼만 떠서 음식을 남기는 일은 흔치 않긴 하다. 그런데 매번 그런 궁금증이 들었다. 수십 명의 사람이 먹을 음식인데 각자는 남기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조리한 음식조차 남지 않을 수는 없다. 그걸 어떻게 처리하는 건가. 결국에는 음식물쓰레기는 다시 생기는 것 아닌가 하는. 다른 절에서는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무상사는 남은 음식을 다시 조리해서 다음 끼니에 내놓았다. 이 점이 정말 신선했다. 밥으로 예를 들어보자. 외국인 수행자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절이라 다른 절처럼 아침, 점심, 저녁 밥이 나오지 않았다. 새 밥은 점심에만 하는 것 같았다. 점심에 밥을 먹고, 남은 밥이 저녁에도 나온다.(먹던 밥이 나온다는 건 아니다.) 그러고도 남은 밥에 다른 것을 섞어 죽을 만들어서 아침엔 그렇게 죽을 주었다. 둘째 날 점심엔 국수를 주어서 반가웠는데 면을 너무 많이 삶은 거 아닌가 싶었다. 그랬더니 저녁엔 비빔국수가 나왔다. 점심에 남은 면으로 비빔국수를 만들어 준 것이다. 이런 식의 식사 운영이 무척 신선했다. 아쉽게도 밥이 입맛에 맞진 않았다. 아무래도 외국인 스님들께서 식사하시기 편하도록 되어 있는 편이어서 요즘엔 '사찰 음식 맛집'처럼 여겨지는 다른 템플스테이들처럼 맛있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의미 있는 식단이었다. 중간에 꽈리고추고기볶음도 나왔다. '절에 웬 고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한 입 먹는 순간 바로 알았다. 콩으로 만든 고기라는 걸. 그치만 그래도 맛은 좋았다. 정말 실제로 고기를 먹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당당하게 고기 반찬도 내놓을 수 있는 것이다. 이제는 많이 타락한 우리 수행자들과 비교해 외국인들이 정말 진정한 수행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많이 했다. 음식도 다른 사찰들과는 달리 외부에서 보살님들께서 와서 해 주시는 것 같지 않았다. 실제로 절에 머무는 사람들이 각자 역할을 분담해서 하고 있는 듯했다. 이게 정말 참수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 좌선을 각각 2시간, 3시간, 2시간 하는데 초보 수행자가 2시간 내내 같은 자세로 앉아 있는다는 게 과연 가당키나 한 이야기일까. 그래서 좌선 중간에 쉬는 시간이 있다. 좌선을 하다가 죽비를 내려치는 소리가 들리면 쉬는시간이라는 뜻이다. 그러면 참선하는 수행공간을 계속 돌며 걸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사람은 참으로 적응의 동물이고, 또 비교하게 되는 동물이라 계속 앉아 있자니 답답했는데 그렇게 천천히, 비록 묵언이지만 움직인다는 게 정말 좋았다. 하루 중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 아마도 그 좌선 중간에 일어나 수행공간을 걸며 도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밖에 있었다면 그 시간이 뭐 그리 신났겠는가. 그런데 안에서는 다른 즐거움이 없으니 그 시간이 유독 더 기다려졌던 것이다. 사람이란 동물이 참 그렇다. 40분 짧으면 30분 이어서 좌선을 하고 10분을 돈다. 그리고 좌선시간 중간엔 지도하시는 스님이 중간쯤 한 번 조는 사람들의 어깨를 죽비로 치셨다. 실은 나는 단 한 번도 졸지 않았지만(이건 정말이다) 매번 스님께 죽비로 쳐달라고 고개를 숙였다.(이게 정말 시원했다. ㅎㅎ)




세상에 108번뇌가 있다면, 나의 머릿속에는 10만 8천 번뇌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처음에는 외롭고 괴롭고 힘들기도 했고, 머릿속에서 멈추지 않는 생각으로 인해 오랜만에 가만히 앉아서 주르르 눈물을 흘려보기도 했다. 그래도 그렇게 오랜 시간 참선한 끝에 덕분에 나올 때는 무언가 충만한 느낌을 얻어 올 수 있었다. 어설픈 경험이 아닌, 진지한 출가 체험이라서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지난 두 번의 템플스테이에서 '출가하면 어떻겠느냐'는 권유를 받았었는데, 이번엔 회주 스님께 아예 '이밍아웃'을 해 버렸다. 덕분에 출가하란 이야기는 듣지 않을 수 있었지만, 다른 분들께 도력이 남다른 것 같다는 소리를 들었다. 도력이 남다른 건 도대체 어떤 것인지 궁금하기도 한데 아무튼 참 범상치는 않은가 보다. 이 또한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나는 여전히 괜찮지 않았다. 절에 있으면서 의사 선생님과 상담사 선생님 생각도 많이 났고, 그분들을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해야지 하고 떠올리기도 했다. 그래도 그렇게 깨달았으니 되었다. 지금 나는 괜찮지만, 괜찮지 않기도 하다. 조금씩 더 괜찮아지면 좋겠고, 또 그럴 수 있겠지. 나에 대해 또 한번 많은 것을 알게 깨우쳐 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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