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0년도 더 전의 일이다. 우습게도 처음 스마트폰을 만들면서 내가 가장 기대했던 기능은 인터넷뱅킹도 메신저도 티비 시청도 메일 확인도 아닌 바로 지하철과 버스 시간 안내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우스운 일이다. 시골 출신인 나는 학교에서 집까지 바로 가는 버스가 55분에 한 대 있던 곳에서 자랐다. 그래서 처음 서울에서 대학 생활을 시작하면서 친구들이 시간표를 확인하지 않고 버스를 타러 간다는 게 마냥 신기하기만 했었는데 불과 10년도 안 되어 그 문화에 적응한 것인지, 스마트폰을 개통할 때쯤엔 버스나 지하철 도착 시간을 맞추어 나가면 시간을 더 절약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렇게 아낀 시간을 어디에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작년인지 올해인지 내년인지 모르겠지만 한 해를 나타내는 단어 가운데 하나로 '분초사회'가 뽑혔다는 기사를 본 것 같다. 처음 스마트폰을 개통하고 내가 가장 먼저 깐 어플은 국민 메신저였고, 바로 그다음으로 깐 어플이 지하철과 버스 어플이었다. 그 뒤로 나의 시간표는 무척 달라졌는데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 10분 아니 5분 단위도 아니라 1분 단위로 시간을 보고 나가서 교통수단을 이용하게 된 것이다. 참으로 이상하지 않은가. 지하철이 이 시간에 온다고. 음, 그럼 1시 13분에 나가면 되겠군. 버스가 이때쯤 도착한다고? 음, 그럼 나는 5시 37분에 나가야지.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실제로도 그렇게 행동하면서 살았다. 버스 시간은 지하철처럼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저렇게 1분 단위로 잡고 나가는 일은 없었지만, 버스 어플에는 버스의 예상 도착시간이 나오기 때문에 실제로 버스를 타러 출발하는 시간은 정말 저런 식이었다. 지금도 모르겠다. 왜 그랬는지.
돌아보면 내가 다닌 대학은 6호선 라인에 있어서,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그때만 해도 지하철이 가장 드문드문 다니는 편에 속했다. 승객이 너무 적어서 노선을 잘못 깔았다고 이야기하는 선배도 있었다. 평시에는 8분 단위로 운행했던 것 같은데, 생각해 보면 8분이 그리 긴 시간도 아닌데 뭔가 예전에는 그 시간을 길다고 느꼈었나 보다. 물론 항상 그 시간표를 지킬 수는 없다. 사람들과 같이 있다가, '어, 이제 나는 시간이 되어서 8분 전에 일어나야 하니깐 지금 일어날께' 할 수는 없는 법 아닌가. 그런데 돌이켜 보면 스마트폰을 사용한 뒤로 나는 어쩔 수 없이 지하철과 버스를 그냥 보내기는 했지만, 그 시간은 늘 확인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아, 지금쯤 가면 딱 좋은데' 이런 생각을 헤어질 무렵에는 하지 않았던가 싶다.
지금 다니는 회사는 처음 입사했을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유연근무제를 도입하면서 근무시간을 분 단위로 체크하고 있다. 아침에 출근해서 '출근' 버튼을 누르면 그때부터 근무시간이 더해지고, 퇴근할 때 '퇴근' 버튼을 누르면 그때까지의 근무시간이 산정되어 그날의 근무시간이 계산되는 시스템이다. 매일매일의 근무시간은 그렇게 분 단위로 확인하지만, 우리 회사는 한 달 단위로 근무시간을 정산하는데, 그때는 10분 단위로 나누어 자른다. 쉽게 말해서 이번 달에 평일이 21일이어서 168시간을 근무해야 하는데, 168시간 9분을 근무하면 그 9분은 그냥 사라지는 셈이다. 반면 168시간 10분을 근무하면 10분 더 근무한 것에 대해서는 인정받을 수 있다. 지하철 어플은 시간표도 알려 주지만 항상 실시간 지하철 위치를 안내해 준다. 그렇다 보니 나는 항상 퇴근할 때엔 지하철이 4정거장쯤 전에 있을 때 사무실을 나서는데, 그렇게 매일매일 비슷하더라도 조금씩 1, 2분의 차이는 나는 분단위 근무를 하고 있다. 출근할 때도 마찬가지다. 아침에 집에서 나서기 전에 집 근처 지하철역 시간표를 확인하고 그에 맞추어서 집을 나선다. 이때의 시간 단위 계산이 1분 단위임은 물론이다. 뭣하러 이렇게까지 하는 건지.
이게 항상 좋지만은 않다. 대개는 거의 낭비하는 시간 없이 전철을 타거나 버스를 타게 되긴 하는데, 가끔씩은 시간 여유를 두지 않고 너무 1분 단위로 시간을 짜다 보니 눈앞에서 전철을 놓치거나 버스를 보내버리는 일도 부지기수다. 기껏 아낀 시간을 그렇게 한 번에 낭비하게 됨은 물론이고, 실은 내가 그렇게 아끼는 시간을 과연 잘 활용하고 있나 생각해 보면 그것 또한 별로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냥 이제는 그렇게 습관이 들어 버렸다.
오늘도 퇴근하는데 결국 눈앞에서 전철 한 대를 그냥 보내버리고 말았다. 실은 지하철 시간표를 확인했을 때, 이미 4정거장 전에 있어서 출발시간이 늦기도 했다. 그래서 전철역까지 서두른다고 서둘렀지만 눈앞에서 출발하는 지하철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 바람에 우연히 모회사의 직원을 만나서 즐겁게(?) 대화를 나누며 중간까지 함께 왔다. 제 시간에 맞추어 지하철을 탔다면 그렇지 못했을텐데. 심지어 제 시간에 맞추어 전철을 탔다 해도, 갈아타는 역에서 그냥 2분 더 기다리는 데 그치고 말았을 것이다.
요즘 운전을 할 때는 여유를 갖자는 생각을 많이 한다. 운전하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이 나온다는 말이 있는데, 과속하는 것까진 괜찮지만(내가 해서 그런가) 다른 차와 경쟁하듯 달리고, 아무런 마음의 여유 없이 차를 모는 모습은 별로 좋지 않은 것 같다. 그것이 또한 평소 생활태도의 반영일테니 더욱 그렇고. 빨리 가야 1, 2분일테니 그냥 여유를 가지고 운전하려고 하는 편이다.(물론 그럼에도 얌체처럼 껴드는 차에게는 잘 양보해 주려고 하지 않는다.) 같은 태도를 지하철이나 버스를 탈 때도 가지면 좋을 것 같은데, 이게 한 번 습관이 들고 나니 고치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습관을 고치면 돌아오는 메리트라도 있어야 하는데, 근무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서 계산하다 보니까 오히려 매번 1분 1초에 더 얽매이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 보자. 그렇게 아끼는 근무시간이 한 달 단위로 하면 얼마나 될까.
의지가 없는 건지 부족한 건지 고쳐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는데 쉬이 고쳐지진 않고, 오히려 습관이 된 탓에 점점 더 1분 1초에 매어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같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그리고 내가 그렇게까지 해야 할 사람이기는 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