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출근길이었다. '이번에 표창 받네?'라는 회사 동료의 연락에 '당연하죠. 알고 있었어요. 저 이번에 근속 10주년이잖아요'라고 답장을 보냈다. 그러나 내심 나는 표창을 2개 받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회사에서 돌아가면서 받는 표창인데 3년 전엔 팀장이, 재작년과 작년엔 우리 팀의 다른 팀원들이 표창을 받았다. 이번엔 내가 받을 차례였다. 그런데 차마 내가 공적 표창을 받게 될 거란 말은 할 수 없어서 저렇게 말한 것이었다. 실제로 이번에 내가 근속 10주년 표창 대상자이기도 하고.
그런데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정말 나는 근속 10주년 표창만 받는 것이었다. '어라? 이게 아닌데?' 회사와 거의 등을 지고 사는 나라서 표창을 받지 못해도 할 말은 없다. 그리고 겉으로는 늘 '나는 그런 것에서 아예 열외시켜 줬으면' 하고 말하고 다닌다. 그래도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기실 나는 표창을 받더라도 회사 창립기념식에 참석할 생각 자체가 없었다. 회사의 그런 모든 행사에 참석하지 않은 게 벌써 2년이다. 아마 다들 내가 참석하지 않을 걸 알텐데 그래서 주지 않아도 할 말이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당연히 내 차례인 줄 알았는데 아니라니 내심 기분이 좋지 않았다.
더구나 이 회사는 정기인사가 1월 1일과 7월 1일에 있는데 지난 1월 1일에 승진이 있었어서 그런지 7월을 앞두고는 잠잠했다. 거의 포기 상태라고 말은 하고 있었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실은 회사의 특이한 인력구조로 인해 조급한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다. 그래서 지난 첫 번째 승진 누락 때 그렇게 분노했던 것이다. 회사는 직급이 5단계로 나누어져 있는데, 특이하게 상위 3단계 50%, 하위 2단계 50%의 정원제를 실시한다. 문제는 회사의 인력구조가 엉망이라 지금 상위직급이 거의 다 찼다는 거다. 내년 6월에 한 분이 퇴직하고 나면 다음 퇴직자가 생길 때까지 대략 5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그럼 중간에 자발적 퇴직이 없는 이상 결국 승진이 불가능하단 얘기가 된다. 이런 인력구조를 나는 진즉부터 알고 있었고, 그래서 상위직급 안에서 승진은 상관없지만 하위직급에서 상위직급은 문이 닫히기 전에 승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번, 두 번, 세 번 떨어졌고 그 사이에 내가 한 차례의 승진을 한 뒤에 입사한 직원조차 나를 뛰어넘어 먼저 상위직급으로 올라갔다. 상위직급이 문은 거의 닫혀 가고 있었다.
월요일에 퇴근하는데 기분이 무척 좋지 않았다. 승진심사를 위해서는 인사위원회가 열려야 하는데 딱히 인사위원회가 있는 분위기도 아니었고, 당연히 받을 줄 았았던 직원 표창에서도 제외되었다. 나는 이 회사를 만 10년 넘게 다녔는데 '10년 동안 겨우 승진 한 번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매우 씁쓸했다. 물론 몸도 편하고, 내 마음대로 하면서 회사를 다닐 수 있다는 장점도 있긴 하다. 그래서 아마 그만두지 못하고 있는 거겠지.
그러나 사람 마음이 또 다 그렇게 좋은 점만 보며 살게 되진 않지 않던가.
이 회사에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회사를 지금처럼 소 닭 보듯 한 건 아니었다. 물론 첫 직장과 비교하면 거의 동네 구멍가게 수준으로 작은 회사이지만, 중간에 난 다른 회사를 한 번 거쳤다. 그 회사는 직원이 열 명도 안 되어 지금 회사보다도 1/3 규모도 안 되는 더 작은 회사였다. 아마 첫 회사에서 바로 지금 회사로 옮겼다면 처음부터 썩 만족하지 못했을텐데, 난 중간에 아주 작은 회사를 다니다 옮겨온 터라 처음 이 회사에 들어왔을 때는 비교적 만족스럽게 다니는 편이었다. 사람들과 사이도 나쁘지 않았고. 첫 승진도 나는 빠른 편이었다. 아마 입사하고 3년 2개월만에 승진했던 것 같다. 그때만 해도 사람들이 '이렇게 빨리 승진한 적이 있었나?' 하고 얘기할 정도였고, 작은 회사를 다니는 덕분에 앞으로의 회사생활은 탄탄대로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처음엔 그랬다.
회사와 사이가 틀어진 건 두 번째로 받게 된 성과급 때문이었다. 첫 번째로 받은 성과급에서 나는 보통을 받았는데 보수적인 회사 원칙상 1년 만근이 아니라 11개월을 다녔기 때문에 무조건 중간으로 평가한다는 규정 때문이었다. 다들 그게 속편하다고 말했지만 내심 나는 만근으로 평가했다면 결과가 좋았을 거라고 여겼기에 크게 상관은 없었다. 그런데 그다음 해에 사단이 났다. 1년 만근을 하고 처음 받게 된 평가에서 난 B등급을 받고 말았다. S, A, B, C의 4등급을 8명이 나눠 받는 거였는데 아마도 나는 5, 6등 정도였을 것이다. 납득할 수가 없었고 회사가 생기고 처음으로 성과평가 때문에 대표 면담까지 한 직원이 되었다. 어디나 그렇겠지만, 이런 결과를 피평가자에게 납득할 수 있는 회사가 얼마나 있겠는가. 특히 동네 구멍가게라면 더 그렇다. 평가한 사람들 모두 말도 안 되는 변명만 늘어놓았고, 결국 결과는 바꾸지 못했지만 나는 대표에게 면담결과지를 내가 부르는 대로 쓰라고 했다. 그 내용은 '피평가자는 결과에 납득하지 못했고, 평가내용의 공정성은 확인하기 어렵지만, 피평가자가 대승적인 차원에서 수용하기로 함'. 그리고 몇 달 뒤엔 나와 한마디의 상의도 없이 지금의 팀으로 인사발령이 있었고, 그렇게 회사와 나는 한 발짝 한 발짝씩 멀어졌다.
2년 전 첫 승진 때의 결과는 실은 내가 예상했던 대로였다. 팀장과 우리 팀의 먼저 승진한 다른 분과의 관계를 짐작했을 때 난 지금 팀장이 팀장이 될 때부터 내게 엄청난 인사불이익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 팀장이 오기 전에 어떻게든 이 팀을 탈출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결과는 실패였고, 결국 다른 분에게 내가 승진에서 밀리는 결과를 맞고 말았다. 그때가 생각난다. 아내에게도 얘기했던 것 같은데 내 예상과 달리 만약 팀장이 나를 먼저 승진시킨다면 내가 팀장을 오해한 것에 대해서 얼마나 마음속으로 미안하고 곤란하게 될지에 대해 말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내가 사람을 잘못 보는 일은 없었고 그런 일은 생겨나지 않았다. 오히려 난 승진에 불복하여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소청까지 넣었는데 그 과정에서 팀장이 부임하고 했던 인사평가결과를 모두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의 팀장 부임 전에는 내가 승진후보자 1순위였는데 불과 1년만에 나는 꼴찌로 내려앉고 말았다. 그럼에도 소청에서 이기기란 쉽지 않았다. 승진은 회사의 재량이 크게 인정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질 줄 알면서도 싸웠던 거다.
아마도 팀장은 내가 아닌 다른 직원을 승진시키기 위해 내 평가를 엄청 박하게 했던 것 같고, 그걸 만회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연초에 있었던 승진에서도 나는 낙방하고 말았다. 마음을 고쳐먹었기 때문에 연초에는 처음 승진에 탈락했을 때처럼 크게 상심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속상한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내가 한 번 승진을 한 상태에서 입사한 직원들이 두 번 승진하는 동안 나는 계속 제자리였던 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정기적으로 인사를 하는 회사의 특성상 연초에 승진을 시킨다면 다음에는 언제 승진이 있을지 짐작이 가지 않기도 했다. 그래도 잘 버텼다.
예상치도 못하게 화요일에 출근하는데 인사 담당 팀장으로부터 승진 축하한다는 메시지가 왔다. 최근 회사에서 인사위원회를 연다거나 그런 움직임이 없었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었기에 무척 당황했지만 좋지 않은 건 아니었다. 다른 직원도 몇몇 축하한다고 인사를 건넸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그렇게 답하고 싶었다. '남들은 진작에 다한 걸 이제서야 겨우 하는 건데 이게 뭐 축하할 일인가요'라고 따지고 싶었지만,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좋은 마음으로 인사한 사람들에게 차마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다만 속으로 팀장이 생색낸다면 그땐 분명히 저런 식으로 얘기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였다. 뭐, 팀장이 크게 생색내는 일은 없었지만.
현재 우리 회사 직원은 모두 31명이다. 상위 3개 직급에 나를 포함해서 14명이 있고, 하위 2개 직급에 17명이 있다. 상위직급에 추가로 승진할 수 있는 사람은 1명밖에 남지 않은 셈이다. 내년 이맘 때 퇴직하는 분이 계셔서 2자리가 있는 것 같지만, 회사의 인력구조가 엉망이라 비슷한 시기에 승진한 사람, 그래서 비슷하게 승진해야 할 사람이 엄청나게 모여 있다. 그 가운데 한둘은 운 좋게 상위직급의 문을 닫고 들어오겠지만 다른 직원들은 언제 승진할 수 있을지 기약이 없다. 만약 이런 상태에서 혹여 정년연장이라도 된다면 더욱 끔찍하다.
첫 승진은 가장 빨리했는지 모르지만 두 번째 승진을 하기까지 7년 3개월이 걸렸다. 10년 동안 승진을 한 번밖에 못했다는 생각으로부터는 벗어난 셈이지만 이제서야 겨우 승진한 게 억울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런데 나는 참 보수적인 사람이라서 한편으로는 안도감이 먼저 든다. 일단 상위직급에 들어섰다는. 정말 이번에도 승진하지 못했다면 영영 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당장은 문이 닫히기 전에 승진해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생긴다.
참, 특이한 일이 하나 더 있다. 이번에 회사에서는 전 직원 중에서 나만 승진했다. 이 회사에서 별로 튀고 싶지 않은데. 이건 뭐지. 그래서 더 눈에 뜨였나 보다. 어쨌든 뭐, 승진했으니 되었다. 지금의 팀에서 지금의 팀장 아래에 있는 이상 다음 승진도 쉽지 않겠지만, 당장은 마음 편안히 즐기자. 다음 달부터는 월급이 오른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