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와 업무에 대한 애정에 관하여
오늘부터 사흘간 자유다. 회사 내 거의 모든 직원이 제주도로 2박 3일간 워크숍을 떠났다. 나는 안 떠났냐고? 안 떠났기 때문에 자유다. 몇몇 직원이 출근하긴 했지만, 우리 팀엔 나 혼자 있다.
회사 행사에 참여하지 않은지는 몇 년 되었다. 이제는 마지막으로 참석했던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다. 오죽하면 작년에 모(母)회사 대표가 우리 회사 창립기념식에 와서 공식 인사말을 하는데 자기는 이런 자리에 오면 honest가 있는지 없는지부터 가장 먼저 확인한다고 했을까. 임기를 얼마 남기지 않아서인지 이번 워크숍엔 모회사 대표도 동행했는데 여전히 난 가지 않았다. 뭐라고 하고 있으려나.
제주도를 워낙 좋아하는 나이기에 실은 이번엔 나도 가야 하나 하는 고민을 조금은 했다. 어쨌든 회사 워크숍으로 가면 왕복 항공권 비용은 제공되는 셈이니. 더구나 지금은 날씨가 정말 좋을 때다. 그렇게 많이 갔던 제주도이지만 새로 가고 싶은 곳도 생겼고. 그래도 결론은 가지 않는 쪽이었다. 내가 돈이 없나 가오가 없지. 고작 돈 몇 푼 때문에 그동안 가지 않던 워크숍에 쩨쩨하게 참석하는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부터 자유다.
지난주 월요일엔 팀 회의가 있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처음부터 나는 들어가고 싶지도 않았다. 어차피 결론은 다 나 있는 셈인데 내가 들어가서 뭐하나. 시간만 아깝다는 생각이었다. 그래도 뭐 어쩌겠나. 조직원으로서 사적인 관계는 가지지 않더라도 해야 할 건 해야 한다.
우리 팀의 일을 지원해 주시던 분이 최근에 크게 편찮으시게 되면서 한동안 상당한 변화가 있을 모양이었다. 대강은 나도 건너건너 들어 알고 있었는데,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편찮으신 듯했다. 회사는 앞으로 몇 달을 쉬실지 알 수 없고, 돌아오셔도 원래 하시던 우리 팀 지원 업무는 하실 수 없으시다고. 당장 그분이 우리 팀 업무의 마케팅과 영업을 담당해 주고 계셨기 때문에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상당히 난감한 상황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그분에게 많은 지원을 받았는데 그분이 안 계신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흠. 쉽게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다.
팀장은 이런 말 저런 말을 계속 늘어놓았다. 그리고 몇 달 전부터인 것 같은데 우리 팀의 실적을 더 올려야 한다면서 계속해서 그 문제를 부각한다. 안 그래도 실적을 올려야 하는데 영업과 마케팅 담당자가 없다면 어떠려나. 그냥 내가 아주 잠깐 생각해도 매출이 급전직하할 것이라는 건 명약관화한 일이다. 실적을 더 올려야 할 상황에 오히려 더 안 좋은 상황에 빠져 버렸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팀장은 아마도 새로운 직원을 뽑고 싶은 모양이다. 내 생각에도 그럴 것 같다. 별로 사이가 좋지 않은 팀장이지만 그 상황은 이해가 된다. 본인이 팀장이 된지도 벌써 한 4년째 정도는 되는 것 같은데 정작 본인이 뽑은 팀원은 한 명도 없다. 처음 구상은 원래 팀장이 나가고 그냥 지금 팀장과 나와 다른 분과 셋이서만 팀을 운영할 계획이었는데 의도치 않게 회사에서 직원 한 명을 추가로 떠넘겼다. 아마 본인은 그런 상황이라면 차라리 직원을 뽑고 싶었으리라. 그렇게 의도하지 않은 직원들과만 같이 일하다가 자신이 직접 직원을 뽑을 수 있는 상황이 왔다. 심지어 명분도 있다. 신나지 않을까.
크게 티를 내진 않았지만 나는 심드렁했다. 팀장은 항상 비용은 회사에서 별로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매출만 늘면 된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새로 직원을 한 명 뽑는다면 이를테면 연봉이 5천만 원이라면 거기에 회사에서 부담해야 할 4대 보험료와 각종 비용 등을 고려하면 실제로 나가는 돈은 1억이 된다. 근데 과연 우리가 그만큼 매출을 더 올릴 수 있을까? 물론 2억 이상의 몫을 해 내는 직원이 들어올 수도 있지만 냉정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직원에게 나가는 1억 원은 그만큼의 순수익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단순히 매출이 2억 늘었다고 해서 5천만 원을 주고 직원을 뽑는 게 꼭 남는 장사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무슨 대책이 있을 것이냐. 이 점에 대해서는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근데 그건 뭐 팀장 너가 고민할 일이고.
이 날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해 보았다. '내가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게 맞나'. 팀장이 매출과 관련한 고민을 한지는 꽤 되었고 요즘은 회의 때마다 그 말을 한다. 그러면 나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솔직한 나의 심정을 이야기하면 그렇다. 내가 아는 팀장의 사람됨이 매출이 늘면 분명히 본인의 공으로 돌릴 사람이고, 본인의 능력으로 그렇게 되었다고 할 사람이다. 나는 그 점이 매우 고깝다. 본인의 공이고 본인의 능력으로 그렇게 될 일이었다면 본인의 힘으로 그렇게 하면 된다. 왜 내가 굳이 나에게는 생색도 나지 않을 일을 팀장을 위해 해야 한단 말인가. 내가 팀장을 인간적으로 좋아하고 신뢰한다면 모르겠지만 우리 사이에는 전혀 그런 게 없는데. 아니 도리어 적대관계에 가까울텐데.
회사에서 월급을 받는 월급쟁이로서 나도 내가 해야 할 몫은 한다. 예전엔 월급 받는 몫보다 더 많이 한다고 생각했는데 솔직히 이제는 그런 장담은 못하겠다. 그렇게까지 일을 하고 싶지도 않고. 다만 안타까운 점은 나는 스스로도 알고 있다. 충분히 나는 이것보다 더 잘할 수 있고 열심히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 이것은 게으름이나 태만의 영역과는 다르다. 한편으로는 체념? 한편으로는 냉소? 이런 영역에 가깝다. 물론 나는 주어진 여건하에서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 덕분에 연초에도 정부에서 2천5백만 원 정도의 수입을 얻어냈다.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진실로 그렇다. 그러나 곰곰이 한 번 생각해 보자. 신청할 수 있는 사업에서 내가 최선을 다한 건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내가 좀 더 노력하고 최선을 다한다면 좀 더 많은 사업을 신청할 수 있게끔 미리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당연한 말이지만 처음부터 이러지는 않았다. 처음 이 회사에 들어왔을 때는 나름대로 만족해서 정말 최선을 다해 일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없는 일조차 찾아서 했고, 남이 시키지도 않은 일을 더 맡아서 할 정도였다. 그때 아꼈던 돈도 따져 보면 꽤 될 것 같다.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서 짧게 요약하면) 그러나 내게 돌아온 건 사전협의조차 없었던 타 부서로의 일방적 인사발령이었고, 일방적 인사발령이었음에도 나는 새로운 팀에서 다른 사람들이 하던 일의 120%, 130%가 넘게 소화해 냈지만 결국 돌아온 것은 세 번의 승진누락뿐이었다.(브런치에 두 번이라고 썼는데 나도 몰랐는데 한 번의 승진이 더 있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상당히 분노해서 회사와 다투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지금의 팀장과 사이가 많이 틀어졌는데, 이후로 나는 깨달았다. 어차피 그렇게 화내고 분노해 봤자 바뀌는 것도 없고, 바꿀 수도 없다. 그냥 내 정신건강에는 체념과 냉소와 같이 이 회사를 다니는 게 좋다는 사실을.
그리고 실제로도 그러고 있다.
귀중한 시간을 그렇게 허비한다는 점에서 나는 나에게 너무 미안하고 스스로가 안타깝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이건 아마 변명이겠지만) 사람이 점차 보수적으로 변해서 새로운 도전을 꺼리게 된 부분도 있고, 실제로 회사가 익숙해지면서 편하고 쉬워진 부분 또한 있다. 처음 시작하는 부분에 적었듯 나는 이제 회사의 모든 행사에 열외하는데 그런다고 해서 뭐라고 하는 사람도 하나 없다. 이 또한 너무 편하고, 원래 일을 빨리하기도 하지만 익숙해진 것도 있어서 냉철하게 따져 보았을 때 실제로 내가 하루에 일하는 시간을 더하면 아마 4시간도 되지 않을 것 같다.(사무직이야 뭐 다 그렇겠지만) 다만 내 경우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나은 게 눈치껏 인터넷도 섞어 하면서 4시간 일하는 것과 달리, 나는 남는 시간에 대놓고 책을 읽거나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는 점이다. 이런 여유로움 속에 결국 나도 나태해져 회사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그날 처음으로 반대편의 입장에서 '내가 팀장이어도 나와 일하기 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을 잘하는지의 유무는 제쳐 두고, 팀의 업무와 성과를 내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과 함께 일해야 팀장도 좋지 않을까. 내가 보았을 때 나를 제외한 두 명의 팀원은 한 명은 팀장만큼이나 그렇게 생각할 거고, 다른 한 명도 아마 나보다는 나을 것 같다.(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일을 잘하는지의 여부는 제쳐 두고) 그들은 그래도 팀 업무와 성과에 대한 애정이 있다. 반면 나는 좋은 성과가 나면 도리어 늘 씁쓸하다. '분명히 팀장이 지가 잘해서 이렇게 됐다고 생색 내겠지'라는 생각부터 먼저 들기 때문이다.
직원에 대한 동기부여나 이런 내용은 따로 한 편의 글로 써도 부족할 만큼 큰 주제이기 때문에 여기서도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지만 과연 내가 처음 이 회사에 입사했을 때처럼, 아니면 이 팀에 처음 왔을 때처럼 열의를 가지고 일하는 날이 올까? 하는 생각을 해 보면 역시 부정적이게 된다. 세 번이나 승진에 누락했는데, 네 번째에 겨우 했다고(그조차도 장담할 수 없지만) '아, 이제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열심히 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까.(분명히 팀장은 그렇게 기대하겠지만) 모르겠다. 그다음 승진에서 발탁이 되거나 다른 사람들을 모두 추월해서 내게 남다른 책임감이 부여된다면.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거란 걸.
(나는 시간이 아까웠지만) 긴 회의 끝에 결국 결론은 팀장이 바라던 대로 새로운 사람을 뽑는 쪽으로 해 보자고 결론이 내려졌다.(난 이래서 회의에 들어가기가 싫다.) 팀장은 새로운 사람은 팀과 회사와 자신을 한몸으로 여기고 매출 증대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사람을 뽑고 싶은 모양인데, 나도 그런 사람이 들어왔으면 좋겠지만 솔직히 나는 믿음이 없다.
그게 네 덕분이라고 할 사람들 같니?
그래도 그런 사람을 뽑는 게 회사에 좋겠지. 처음으로 내가 경영자여도 나를 뽑지 않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동기부여만 잘 된다면 더할나위 없는 직원이었겠지만.